아름다운 용서 뒤에 숨은 지저분한 현실
인권에도 순서가 있다
다혜는 임 형사로부터 가해자 관련 자료를 받기 위해 경찰서를 찾는다. 그는 그녀와 생각이 좀 다르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고난을 자초하는 수녀의 노력이 가상하기는 하지만, 너무 가해자 편에만 서는 게 아닌가 싶다. '사형수에게도 인권이 있다'며 받아치는 다혜. 형사는 '인권에도 순서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살인자들에게 내려지는 처벌이 죄에 비해 가볍다고 생각한다. 고작 3~4년 수감에,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형이 결정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죄수의 90%는 가석방되는 데다가 재범율은 70%가 넘는다. 다혜는 놀랍기만 하다. 대부분이 갱생할 거란 예상은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다혜는 가해자의 출소 소식을 당연히 피해 당사자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 인터뷰 중 가해자의 출소 소식을 뒤늦게 알고 분노하는 유족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라'던 그녀였다. 가해자를 용서한 아름다운 피해자의 이야기만 듣다가 2차, 3차 피해에 노출된 피해자의 얘길 들으니 새삼 정신이 번쩍 든다. 탈옥해도 가르쳐 주지 않는 게 원칙이라는 임 형사의 말. 충격 그 자체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어디 사는지도 알 수 없다. 정책상 알려 줄 수 없게 돼 있다. 반면, 가해자는 피해자의 정보를 알 수 있다. 사죄를 하든 보복을 하든, 사회는 재범에 대한 '처벌'만 능사로 여긴다. 피해자의 신변은 보호되지 않는다. 임 형사는 그것이 '성 범죄를 포함한 여타 범죄의 신고를 꺼리는 이유'라고 지적한다. 다혜는 소년범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소년범의 경우, 피해자의 유족에게조차 얼굴은 물론 그 어떤 정보도 공개되지 않아서다. 피해자보다 더 철저히 보호 받는 가해자. 납득하기 어렵다.
섣부른 용서가 사회를 좀먹는다
용서는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를 위한 일이다. 그 목적 또한 양자의 입장에서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피해자에게는 마음의 평안을 주는 데 있다. 가해자에게는 남은 인생을 바르게 살 수 있도록 아량을 베풀고, 기회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피해자가 평안을 얻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가해자의 바른 삶이 선행되어야 한다. 가해자의 재범 및 보복은 피해자의 용서를 무색케 한다. 임 형사의 생각도 같다. 그는 '용서보다 중요한 건 가해자의 재범을 막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놈의 사회는 용서만 있고, 반성이 없다. 그게 바로 비극이 반복되는 이유다! 대책 없는 용서는 죄악이다."
신부는 말한다. 사람은 상대를 용서할 수 있을 뿐, 그가 반성하고 있는지를 궁금해할 자격이 없다고. 형사는 말한다. 대책 없는 용서는 죄악이라고. 지민은 말한다. 다혜는 진실을 마주하기 두려운 나머지 외면하고 있을 뿐이라고. 세 번째 유가족은 말한다. 가해자가 사죄하지 않는다면 용서는 헛된 일이 되고 만다고. 그럴 바엔 용서를 취소하겠다고.
다혜는 용기를 내 1년 전 담당형사를 찾는다. 소년의 소식을 묻기 위해서다. 진정한 용서를 하게 될 수도, 겉으로나마 한 용서를 가슴 치며 후회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실을 맞닥뜨리기로 한다. 오토바이로 상우를 죽게 한 소년범. 다혜는 그가 성실히 학교를 다니고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기대는 완전히 빗나간다. 소년은 사고 전 엄마를 칼로 찌른 적이 있었고, 사고 후에는 부모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 친구를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살해했다.
바른 길로 인도하겠다던 소년범의 부모. 다혜는 부모의 다짐을 믿었다. 배신 당한 느낌에 부모를 만나보고자 형사에게 주소지를 묻자, 형사는 다분히 원망 섞인 말투로 잘라 말한다. 가해자쪽 정보 유출은 금지 사항일 뿐 아니라, 소년범의 경우엔 더욱 엄격하다고. 이제 와서 탄원서를 무르기라도 할 거냐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뜬다. 어렵게 알아 낸 살해 당한 소년범 친구의 집. 노쇠한 아버지가 쓸쓸히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소년을 용서한 자신이 한스럽다.
시나리오 메시지 MONZ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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