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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과 외면

 

주문의 효과

 

'주님의 배신'을 당하기 전, 신애는 교회를 다니며 한동안 마음의 평정을 찾은 듯 보인다. 동네 아줌마들과 웃으며 수다도 떨고, 그 와중에 틈틈이 '교회에 나오면 즐거워진다'며 전도에 열을 올린다. 이웃집에서 구역 예배도 드리고, 역앞에서 연신 찬양도 함께한다. 종찬도 덩달아 신도가 됐다. 신애가 가는 덴 다 따라다닌다. 그녀는 진정, 주님 덕분에 슬픔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걸까?

 

밥때가 되어 주방에 들어선 신애. 싱크대에 반찬 몇 개만 꺼내 두고, 한 손에 밥그릇을 올린다. 대충 끼니를 때울 참이다. 아들이 떠나고 난 후다. 보기 좋게 상을 차릴 이유가 없어졌단 얘기다. 하지만 열심히 먹는다. 그런데, 갑자기 가슴에서 뭔가가 치밀어오른다. 밥이 안 넘어간다. 참아 본다. 눈물까지 터지려 한다. 주기도문을 왼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덜컥. 문소리가 들린다. 준이다! 마루에 책가방을 벗어 던지고 화장실로 직행한다. 오줌 싸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까지의 일이 꿈만 같다. 준이 돌아온 거다. 화장실 문을 조심히 열어 본다. 변기를 향해 신애를 등지고 서 있는 아이. 딱 봐도 준이다. 아들 이름을 불러 본다. 돌아본 아이는, 동네 꼬마다.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주기도문'인지 '주문'인지 모를 무언가를 읊어 대던 신애. 안타깝게도 그녀는 슬픔을 외면하고 있었을 뿐, 이겨내진 못했다. 본인이 생각할 때나 남들이 볼 때, 그녀는 분명 어느 정도 시련을 극복한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밥을 먹다가도 느닷없이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수도 없이 머리는 평화를 '지시'했지만, 마음은 차마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한동안 그녀가 웃어 보일 수 있었던 건 '주님이 주신 마음의 평화' 때문이 아니다. 신애는 '주기도문'을 외던 중 잠시나마 준이 돌아왔다고 '착각'했다. '자기 최면에 의한 현실 도피''시련 극복'으로 착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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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의 시작

 

신애는 스스로 주문 따위를 외며 최면에 빠져야만 했다. '착각' '유지'해야 했던 것이다. '착각'의 시작점으로 되돌아가 보자. 신애는 준의 사망신고를 하러 주민센터로 간다. 자신의 주민번호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무시무시한 현실. 숨이 막힌다. 그 순간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넋이 나간 채, 교회로 향한다. 싸한 음악이 흐른다. 양손을 치켜든 사람, 눈물을 토해 내는 사람, 있는 대로 인상을 찌푸린 사람, 하나같이 눈을 질끈 감고 기도 중이다. 마음 속 고통을 가누지 못하던 신애는 그들이 꼭 자기 같다. 다들 한이 깊어 보인다. 경계심을 풀자 순식간에 분위기에 휩쓸린다. 터지기 시작한 통곡은 멈출 줄 모른다. 목사가 다가와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점차 설움이 잦아든다.

 

'착각'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신애는 최악의 상황에서의 경험을 '얼빠진 착각'이 아닌 '주님의 능력'이라 믿고 싶었다. 그녀의 무의식이 생존 본능에 따라 의식을 지배한 것이다. 목사의 손이 머리에 닿았을 때, 다소 감정이 가라앉는 '놀라운' 경험을 한 신애. 분명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문제는 그 현상의 해석상에 있다. 아들이 사망신고를 마친 그녀가 통곡한다. 한 많은 사람들이 '아멘'으로 연신 화답하던 이 모임의 지도자. 그가 신애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그녀가 경험한 건 '주님의 능력'이 아니었다. '신성해 보이는 한 사람의 터치'였을 뿐이다. '주님의 능력'은 교회 안 사람들이 바깥 사람들을 안으로 끌어들일 요량으로 쓰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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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메시지 MONZAQ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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