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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과 거짓
인간의 오류
아들의 이름을 딴 '준 피아노'. 신애가 밀양에서 연 피아노학원 이름이다. 학원은 소일거리다. 신애는 원생 수를 늘리는 데 열을 올리지도,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보려고 억척을 부리지도 않는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 뿐이다. 오지랖이 넓은 건지 딴 생각이 있는 건지, 그녀를 챙긴답시고 불쑥불쑥 나타나는 종찬. 한 날은 뭔가를 들고 들어오더니 드릴로 벽에 못을 박는다. 가져온 액자를 건다. 그는 통화중이다. 양해도 인사도 없다. 제집 드나들 듯, 학원에 뭔가를 걸어 두고 나갈 모양이다. 보다 못한 신애가 묻는다. 종찬은 '시골 피아노학원에 이런 거 하나 걸어 두면, 학생들도 많이 몰리고 학부모들도 신애를 그럴싸하게 볼 거'란다. 상장이다. 신애는 찜찜하다. 받은 사실도 없는 상장을 떡하니 학원에 걸어 놓는 것도, 청하지도 않은 도움을 자청하고 나서는 종찬도. 무엇보다, 소일거리에 불과한 학원 일에 '학력 위조'까지 동원하는 게 달갑지 않다. 종찬에게 불편함을 토로하고 선을 분명히 긋는다. 참 변죽도 좋다. 못 들은 척, 피아노를 치고 있는 동네 꼬마에게 말을 건다. "영미야, 피아노 재밌지? 선생님 피아노 잘 가르치시지?"
학력 위조는 범죄다. 거짓말도 나쁘지만, 본인의 이력을 사업장에 허위로 게시하는 건 법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난처하다. 쓴소리까지 내뱉은 마당에 액자까지 떼 버리는 건 너무 과한 반응이지 싶다. 그 소릴 다 듣고도 허허 웃어넘기는 못난 종찬. 순수한 건지 막 나가는 건지는 몰라도, 왠지 이 동네에서는 상장을 '두는' 것보다 '떼는' 게 더 문제가 될 것 같다. 앞뒤 없는 종찬을 순수하게 봐 넘기기로 한다. '거짓 상장'은 준 피아노에 그대로 걸려 있다. 상황에 따라 변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거짓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거다. '싫은' 게 아니라 '나쁜' 거다. 부족하기 짝이 없는 인간은 종종 남뿐만 아니라 자신도 속인다. 거짓으로 눈앞의 이익을 탐한다. 물론 '잘못'이다. 모든 인간은 불완전한 탓이다.
신의 오류
신은 인간과 다르다. 완전하고 숭고하다. 앞뒤 없이 경박하게 굴지도, 거짓으로 꾸미지도 않는다. 가히 독보적이다. 유일신을 주장하는 '한국 개신교'에서는 더욱 그렇다. 뭘 해도 '주님의 뜻'이다. 병에 걸려도 주님의 뜻, 차가 막혀도 주님의 뜻, 물난리가 나도, 건물이 무너져도, 부당 해고를 당해도 주님의 뜻이다. 남편이 죽고 애가 유괴·살해돼도 주님의 뜻이다. 이를 신이 완전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을까. 허점 투성인 인간이 '주님의 뜻'을 핑계로 모든 걸 합리화하려는 수작 아닐까. 현상을 바로 보자. 선행과 행운, 악행과 불운을 주님의 뜻으로 엮을 거면, 선행과 불운, 악행과 행운은 주님의 뜻으로 엮어선 안 된다. 이러나저러나 주님의 뜻이라는데, 참이든 거짓이든 주님 꼴리는 대로 조치한다는데, 착하게 살 필요가 뭐가 있겠나.
신을 빙자한 인간의 오류
종교의 교리가 법을 대신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사회적 법규범이 따로 있다. 바르고 정확한 규정이 필요했다. 막연하고 애매한 교리로는 인간사를 심판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부족한 인간이 만든 법은 허점 투성이다. 인간은 인간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다. 개인, 집단, 당국은 문제점이 드러날 때마다 이를 바로잡으려 노력한다. 사회, 문화, 시대에 맞게 끊임없이 새로 만들고, 수정하고, 폐지한다.
교회 안과 교회 밖으로 철저하게 영역을 구분짓는 교회. 한국의 기독교는 그들만의 법과 기준을 별도로 만들어 진정한 '주님의 뜻'이 아닌 '일부 기독교 내 기득권자들의 구미에 맞는, 변종된 뜻'을 전하고 있다. 무지몽매한 '국민'들이 선거 후보자의 그럴 듯한 '공약'에 홀딱 넘어가듯, '일반 교인'들은 고매하게 포장한 '그들의 뜻'에 매료된다. 더 이상 '그들의 뜻'과 '주님의 뜻'을 스스로 판단하기 어렵다. 판단은 '그들'의 몫이다. 교인은 그들의 뜻에 복종한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참회의 기도를 올린다. 기도를 들어 줄지 말지는 심판을 맡은 그들 손에 달렸다. 이쯤 되면 '그들'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들이 '그들'인지 '주님'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입으로는 '주님의 뜻'을 외치지만, 이를 빌미로 '자신의 뜻'을 내세운다. 이미 '합리화' 기술은 수준급이다. '성경 말씀과 맞지 않는다'는 교인의 질문엔 '미개한 인간이 어떻게 주님의 뜻을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한마디면 상황 종료다.
주님의 뜻은 사라지고 없다. 교인들도 가지각색. 믿는 방식도 다양하다. 일부 기득권자(목회자)들을 맹신하는 교인, 알고 보니 자기가 메시아였다며 이단을 세우는 교인, 교회 밖에서 거짓을 꾸며 대도 매주 교회에 출석만 하면 만사형통이라는 교인, 살인을 저지르고도 하나님을 만나 용서 받고 구원 받았다는 교인. 아이스크림 가게도 아니고 골라 먹고 섞어 먹고 난리다.
인간은 얼마든지 스스로를 용서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법의 심판은 따르되, 개인적인 주관으로 스스로를 판단할 수 있다. 요는, 그 판단이 주관에 따른 것임을 인정하라는 말이다. 신의 뜻을 빙자해 개인의 뜻을 퍼뜨리지 말라는 말이다. '뜻'의 '정체'를 분명히 해야 한다. '절대적이기에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아도 먹힌다'는 이유로 신의 뜻을 갖다 붙인다는 게 말이 되나. 그들의 신, 그들 자신, 눈먼 교인을 속이는 짓, 이젠 그만둘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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