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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선물

 

용서에 대한 복수

 

뻔뻔함이 좌르르 흐르는 얼굴로 범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치자. "처음부터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 근본이 틀려먹은 나쁜놈은 아니다. 여기서나 나가서나 행복하게 잘먹고 잘살 거다." 적어도 신애가 그토록 배신감에 치를 떨진 않았을 거다. 아들이 사체로 발견됐을 때보다 신의 배신을 경험했을 때 신애는 더 큰 상처를 받았다. 신에 대한 믿음으로 아들을 잃고도 행복하다며 웃고 다녔다. 신은 절대적이고 완전하고 올바르다 믿었기 때문이다. 신의 기준은 무엇인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주님의 큰 뜻'으로 보기엔 한 치의 정의도 없어 보인다.

 

살인마저 흔쾌히 용서하고 살인자에게마저 마음의 평온을 주는 신. 신애는 보란 듯이 삐뚤어지기로 마음 먹는다. 어떤 죄를 짓든지 아이를 유괴해 살인한 죄보다 더할까. 신의 배신은 삶의 의미와 신념을 묵살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떠난 아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다. 자해는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한 신에 대한 복수이자, 그 신을 믿고 따른 자신에 대한 응징이다. 범인에 대한 증오는 신에 대한 분노보단 덜 아프다. 그놈의 평안한 얼굴이 소름 끼친다.

 

교회 안 사람들

 

교회를 성역시하는 '교회 안 사람들'은 가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한다. 피아노학원 맞은편에 위치한 약국. 약사 부부는 '교회 안 사람들'이다. 여약사가 지나가는 신애를 불러들인다. 줄 선물이 있단다. 원장님, 원장님, 참 깍듯도 하다. 개봉 박두! 불행한 일 당하고 밀양에 내려왔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그녀가 건넨 '선물' '하나님 말씀이 담겨 있는 정말 소중한' 선물! 난감한 신애. 지나가는 신애를 불러 세운 게 선물이 있어서라는 것도 어리둥절한데, 그 선물의 정체는 더 기가 막히다. 선물을 주는 이유는 또 어떤가.

 

'교회 안 사람들'의 오류를 다섯 가지만 지적한다. ① 철저히 자기 입장에서 선물한다. 선물은 상대의 가던 길을 막아서고 주는 게 아니다. ② 자기에게 의미 있는 것을 선물이라 칭한다. 선물은 상대에게 필요하고, 상대가 좋아할 만한 것으로 준비하는 게 기본이다. 소중한 선물인지 아닌지는 받는 이가 판단할 문제다. ③ 교회 밖 사람들을 멋대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원장님처럼 불행한 사람'이라 표현한 여약사. 대책 없다. ④ 비기독교인을 보이는 것만 믿고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열등한 사람으로 치부한다. 기독교인이 되어 놀라운 세계를 경험하는, 우월한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⑤ 상대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자기 할 말만 한다. "저 불행하지 않아요, 약사님." 신애의 말에 약사는 이렇게 답한다. "꼭 잃어보세요."

 

여약사와 신애의 대화는 개독교의 오류를 꼬집음과 동시에, 영화의 주요 갈등 요소를 암시한다. 개독교의 가장 큰 오류이기도 하다. 문밖까지 나와 길 건너 신애를 약국으로 불러들이는 약사. 준과 함께 귀가하던 신애는 피아노학원 앞에 준을 둔 채 '(약사 말대로) 잠시' 건너간다. 끝날 줄 모르는 약사의 선물 얘기. 대화 도중 뒤돌아보니 준이 없다. 건너편에 두고 온 아들이 안 보인다는데도 약사는 제 말만 계속한다. 선물이 정말 소중한가 보다. 아들보다도. 순간 장난기가 발동한 준. 마당 한 귀퉁이에 몸을 숨겼다. 결국 일상의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 약사의 부름 때문에, 약사가 준비한 선물 때문에, 신애는 준을 잃어버릴 뻔했다. 비극을 부를 기독교의 오만에 대한 예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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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메시지 MONZAQ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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