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불평등 기원론 - 장 자크 루소


들어가는 말 - 고봉만

10쪽
생산 수단의 사유화가 인간을 소외시키고, 인간을 소유에 종속시켰다. 루소가 볼 때 사유 재산제도야말로 인간 불평등의 뿌리이며 불행의 근원이다. 

11쪽
소외된 사람들은 잃은 것을 되찾기 위해서나 남보다 더 많은 것을 다시 얻기 위해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힘 있는 자나 말 잘하는 자나 모두 불행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약삭빠른 사람들은 묘안을 찾아냈다. 자신들에게 유리하면서도 남들은 잘 알아차리지 못할 조건으로 계약을 맺어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사회는 점차 안정되어가는 반면 유리한 조건을 차지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불평등이 제도적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인간의 불평등은 이렇게 고비고비마다 더욱 인위적으로 제도화되면서 고착되어왔다.결국 국가라는 제도가 생기면서 불평등은 매우 견고한 모습을 갖추어서 더 이상 누구도 거역하거나 도전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머리말

38쪽
그리고 더욱 견디기 어려운 것은, 인류의 모든 진보가 인간을 끊임없이 원시 상태에서 멀어지게 하기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지식을 축적할수록 모든 지식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획득하는 수단이 상실된다는 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을 연구했기 때문에 인간을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말이다. 

인간 사이의 불평등의 기원과 근거들에 대한 논문

50쪽
그렇다면 대체 이 논문에서는 정확히 말해서 무엇이 문제인가? 그것은 바로 사물이 진보하는 가운데 폭력에 이어 권리가 생기고 자연이 법에 굴복한 시기를 지적하는 일이다. 그리고 어떠한 기적의 연쇄로 인해 강자가 약자에게 봉사하고, 인민이 현실의 행복을 대가로 하여 관념 속에서 안식을 찾기로 결심했는가를 설명하는 일이다.

53쪽
내가 이제부터 서술하는 것은 거짓말쟁이인 그대의 동포들이 쓴 책 속에서가 아니라,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자연 속에서 내가 읽었다고 믿는 그대로의 그대의 역사이다. 자연에서 비롯된 것은 모두가 진실한 것이다. 거짓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본의 아니게 나의 견해를 거기에 섞었기 때문일 것이다. 

63쪽
말이나 고양이, 황소, 심지어 당나귀조차 집에 있을 때보다는 숲속에 있을 때 대체로 키가 크고 체격이 좋고 기운차며 힘도 세고 용맹스럽다. 그러나 가축이 되면 이러한 장점의 절반은 잃고 만다. 그리고 이 동물들을 소중히 돌보며 키우려는 우리의 모든 노력은 오히려 그들을 퇴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회화하고 노예화한 인간은 연약하고 겁이 많아지며 비굴해진다. 

67쪽
즉 동물은 본능에 따라, 인간은 자유로운 행위에 따라 취사 선택을 하게 된다. 이로 말미암아 동물은 자기에게 정해진 규칙에서 벗어나는 것이 자기에게 아무리 유리해도 그렇게 할 수 없으나 인간은 자신에게 해로워도 종종 그 규칙을 벗어나 행동한다. 그리하여 비둘기는 제일 좋은 고기가 가득 담긴 그릇 옆에서도 굶어 죽기 일쑤고 ...... 먹을 엄두만 내면 그들이 경멸하는 음식으로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을 텐데도 말이다. 이와 달리 방종한 인간은 절제하지 못한 탓에 열병이나 죽음에 이르게 된다. 

110쪽
처음으로 거처를 마련하고 그것을 스스로 지킬 힘이 있다고 느낀 것은 가장 강한 자들 쪽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약자들은 그들을 몰아내느니 흉내 내는 편이 오히려 더 빠르고 확실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이미 오두막을 갖고 있던 자들 중 어느 누구도 이웃의 오두막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삼으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자기에게 소용이 없고 그것을 빼앗으려면 그곳에 살고 있는 가족들과 큰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인간의 마음에 최초의 변화가 생겨난 것은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자식이 공동의 거처에서 함께 사는 새로운 상황의 결과였다. 함께 생활하는 습관은 인간이 체험한 가장 감미로운 감정이라 할 수 있는 부부애와 부성애를 낳았다. 

111쪽
더구나 그 편리함은 습관이 되자 매력을 상실하고 그들의 실제적 욕구로 변질되어버렸다. 따라서 그것이 없는 고통은 그것이 있을 때 즐거웠던 만큼이나 극심한 것이 되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편리함을 누려도 행복하지 않은 반면에 그것을 잃으면 몹시 불행해지게 되었다. 

113쪽
서로 자주 만나는 동안 사람들은 이제 서로 만나지 않고서는 살지 못할 지경이 된다. 정신 속에 일종의 부드럽고 달콤한 감정이 스며들고, 사소한 반대에 부딪쳐도 심한 분노가 느껴진다. 사랑과 함께 질투가 싹튼다. ...... 저마다 남을 주목하고 자신도 남에게 주목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하나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 이러한 최초의 선호選好에서 한편으로는 허영심과 경멸이 태어났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치심과 부러움이 생겨났다. ...... 누구나 자기가 받은 모욕만큼 상대에게 벌을 가했으므로 복수는 더욱 끔찍해지고 인간은 살생까지 저지를 정도로 잔인해졌다. ...... 많은 이들이 여러 가지 관념들을 충분히 구별하지 못하고 또 이들 민족이 이미 최초의 자연 상태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가를 알아차리지 못하여, 인간은 본래 사악하므로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규제와 단속이 필요하다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런데 원시 상태의 사람들만큼 온순한 자들은 없었으니 ...... 남에게 피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상대방을 해칠 마음이 들지 않았다. 

 

100쪽
그들에게는 굴종과 지배가 무엇인지 이해시키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어떤 사람이 남이 따온 과일이나 남이 사냥한 고기, 또는 남의 은신처인 동굴을 빼앗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어떻게 남들을 복종시킬 수 있겠는가? 게다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어떤 종속의 쇠사슬이 있을 수 있겠는가? 만일 누가 나를 어떤 나무에서 쫓아낸다면 다른 나무로 옮겨가면 그만이다. 

116쪽
...... 요컨대 그들이 혼자 할 수 있는 작업과 다른 사람의 협력이 필요 없는 기술에 전념하는 동안, 그들의 본성이 허용하는 만큼 자유롭고 건전하고 선량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며, 계속해서 상호간에 독립적인 상태에서 교류의 평온함을 누렸다. 그러나 인간이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한 순간부터, 그리고 혼자서 두 사람 몫의 양식을 차지하는 것이 유리함을 알아차리게 되자마자, 평등은 사라지고 소유가 도입되고 노동이 필요하게 되었다. 광대한 숲은 인간의 땀으로 적셔야 할 들판으로 변했으며, 머지않아 그 들판에서는 수확과 더불어 예속과 비참이 싹트고 증가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125쪽
그들이 그 횡령에 어떤 외양을 부여하든 그것은 단지 불확실하고 부당한 권리를 내세우고 있는 데 불과하며, 또 그 횡령은 오직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그것을 다시 힘에 의해 빼앗긴다 해도 아무 할 말이 없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 마침내 부자는 절박한 필요에 따라 인간의 정신 속에 일찍이 스며든 적이 없는 가장 교묘한 계획을 생각해냈다. ...... 이와 같은 의도에서, 부자는 그의 이웃 사람들에게 모두가 서로에 대해 무장하고 그들의 소유를 그들의 욕구와 마찬가지로 부담스럽게 하며 가난하든 부유하든 자신들의 안전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의 두려움을 설명했다. ...... "약자를 억압에서 보호하고 야심가를 제지하며 각자에게 소유를 보장해주기 위해 단결합시다. 정의와 평화를 가져다주는 규칙을 정합시다. ...... 현명한 법률에 따라 우리를 다스리고, 사회의 모든 성원을 보호하고 방위하며, 공동의 적을 물리치고, 영원히 우리를 단합시키는 권력에 집중시킵시다!" ...... 누구나 자신의 자유를 확보할 심산으로 자신의 쇠사슬을 향해 달려갔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치 제도의 이점을 느낄 만한 이성은 갖고 있었지만 거기에 따르는 위험을 내다볼 정도로 충분한 경험을 갖고 있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 게다가 현명한 사람들까지도 마치 부상자가 신체의 나머지 부분을 구하기 위해 팔을 잘라내게 하듯이 자기들이 갖고 있는 자유의 일부를 다른 부분을 보존하기 위해 희생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 이 사회와 법률은 약자에게는 새로운 구속을 부여하고 부자에게는 새로운 힘을 부여해 자연적 자유를 영원히 파괴해버리는가 하면, 소유와 불평등의 법률을 영구히 고정시키고 교활한 횡령을 당연한 권리로 확립시켜 그 후 온 인류를 몇몇 야심가들의 이익을 위해 노동과 예속과 비참에 복종시킨 것이다. 

143쪽
이러한 모든 변천 가운데서 불평등의 진행을 따라가보면, 법과 소유권의 설정이 제1단계이고 행정 권력의 제도화가 제2단계이며 합법적인 권력에서 독단적인 권력으로 변화하는 것이 제3단계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부자와 빈자의 상태는 첫 번째 시대에 의해, 강자와 약자의 상태는 두 번째 시대에 의해, 주인과 노예의 상태는 세 번째 시대에 의해 성립되었다. 

144쪽
인간으로 하여금 사회 제도를 필요로 하게 만드는 악덕은 사회 제도의 남용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악덕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 아무도 법망에서 벗어나지 않고 행정관의 직분을 남용하지도 않는 나라는 행정관도 법률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어렵지 않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144쪽
정치상의 차별은 필연적으로 시민들 간의 차별을 가져온다. 인민과 통치자들 사이에 증가되어가는 불평등은 이윽고 개인들 사이에서도 느껴지게 되며, 정념이나 재능에 따라, 그리고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바뀐다.  

146쪽
일반적으로 부, 신분이나 지위, 권력, 개인적인 장점이 주요한 구분 기준이 되며 여기에 따라 사회 속에서 개인들이 위치를 차지하므로, 나는 이들 서로 다른 세력의 조화나 충돌이 국가의 구성이 좋은가 그렇지 못한가를 판단하는 가장 확실한 지표임을 증명할 수 있다. 

148쪽
많은 사람들이 외부의 위협에 대비하여 애쓴 결과 오히려 내부에서 억압을 당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149쪽
함께 모인 사람들을 갈라놓아 약하게 만들 수 있다면, 겉으로는 조화를 이루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분열의 씨가 뿌려질 수 있다면, 또한 권리나 이해의 대립을 통해 상호간에 불신과 증오를 불어넣어 여러 계급을 억압하는 권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를 조장하는 통치자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152쪽
미개인은 안식과 자유만을 추구하고 한가로이 지내기를 바랄 뿐이다. 스토아 학파의 아타락시아도 미개인의 다른 모든 것에 대한 깊은 무관심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와 반대로 문명인은 항상 활동하면서 땀을 흘리고 불안해하며 더욱더 힘든 일을 찾아 끊임없이 번민한다. 

152쪽
그는 죽을 때까지 일을 하고, 때때로 살아 있는 상태에 놓여 있기 위해 죽음으로 내달리며, 불멸을 찾아 생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이 증오하는 세력가와 자신이 경멸하는 부자들에게 아부하며, 그들에게 봉사하는 영예를 얻기 위해서라면 아무것도 아끼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비굴과 그들의 보호를 거만하게 자랑한다. 자신의 노예 상태에 자부심을 느끼는 그는 그 노예 상태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경멸감을 가지고 얘기한다. 

153쪽
즉 미개인은 자기 자신 속에서 살고 있는데, 사회인은 언제나 자기 밖에 존재하며 타인의 의견 속에서만 살아간다. 말하자면 자기가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타인의 판단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다. 

153쪽
즉 미덕 없는 명예, 지혜 없는 이성, 행복 없는 쾌락만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따지는 것은 나의 주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다만 그것은 결코 인간의 본원적인 상태가 아니며, 이와 같이 우리의 자연적인 성향을 모두 변화시키고 변질시키는 것은 오로지 사회의 정신과 사회가 낳은 불평등이라는 것을 입증하기만 하면 된다. ...... 불평등은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므로 인간 능력의 발달과 정신의 진보에 따라 성장하고 강화되며 소유권과 법률의 제정에 따라 안정되고 합법화된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해제

167쪽
루소의 탐구는 역사적이라기보다 가설적인 것으로서, 사물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지 그 실제 기원을 탐구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 <인간 불평등 기원론>의 목적은 인류의 보편사를 더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형태 속에 투영된 인간 본성 이론을 탐구하는 데 있다. 

171쪽
서로의 차이에 대한 비교 의식과 자신의 우월성을 대중적으로 확인받고 싶어 하는 욕구들이 소유욕과 결합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 개인의 가치는 존재에서 소유로 바뀌게 된다. 마침내 상속의 작용에 의하여 토지 전체가 특정한 인간들의 사유물이 되면 약하고 능란하지 못하고 앞날을 예측하지 못한 사람들은 예전에는 공동의 재산이었던 것을 완전히 박탈당하게 된다. 

173쪽
부자들은 법률과 경찰력에 의해 처방되는 치안 질서 유지를 강력하게 희망하게 되었다. 반면 빈자들은 자신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해 부자들의 재산을 공유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했다. 그리하여 재주 많고 웅변 잘하는 자들이 '교묘한 횡령을 당연한 권리'로 바꾸어놓은 기만을 통해 부자의 특권은 확고해지고 불평등은 제도적 가치로 바꾸게 된다. 가난한 자들은 영원한 노동과 비참과 예속으로 몰리게 되었고, 소유와 권력으로부터 추방당했다. 
사회적 질서의 확립이라는 이 결정적 단계를 넘어선 후 인간들은 각종 정부 형태 - 군주제, 귀족제, 민주제 - 를 채택한다. 그러나 각 정부 형태는 도덕적 구분은 합법화하고 그런 구분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므로, 어떤 것이든 부자의 지배를 강화하고 빈자의 의무를 증강시키는 양상을 밟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사회 내의 인간 관계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변모되어버린다. 처음에는 합의에 의해 정립된 제도가 자의적인 권력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176쪽
루소는 나중에 자기 자신과의 대화록인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본성은 결코 후퇴하지 않으며" 한번 잃어버린 순수성은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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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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