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쪽
나는 책방 운영을 일종의 실험이라 여기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의 부담이 한풀 꺾이는 듯했다. 실험에는 실패가 없고 오직 데이터와 경험만이 남을 테니까. / 송은정 - 단 한 사람을 위한 책상
44쪽
물기 마음 그릇과 컵, 커트러리를 제자리에 돌려놓는 행위는 내게 무척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다. 기껏 말려둔 식기에 다시 물이 튀는 게 꺼림직하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제자리에 되돌려둠으로써 얻는 '오늘'의 감각이 좋다. 일종의 리셋 버튼이랄까. 어제의 일이야 어찌 되었든 오늘은 오늘을 살겠다는 의지가 생겨나는 것만 같다. / 송은정 - 단 한 사람을 위한 책상
94쪽
'글과 실이 지나간 자리를 사랑한다'라는 문장이 그 심장에 새겨졌다. 멀다고 믿었던 두 세계가 한 문장 안에 나란히 엮였다. 탄탄하고 아름다웠다. 오래 전에 내가 꿈꿨던 그런 모습은 아니지만, 무엇이 되지 않은 채로도 글과 함께할 수 있었다. / 고운 - 가장 작은 방에서 짓는 것들
103쪽
나는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공간의 크기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그 크기는 생각보다 넓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곧 뒤따라온다. / 휘리 - 열린 문, 한 뼘의 틈
181쪽
우리 삶에서 이뤄지는 많은 선택 중 어떤 것은 살아내기 위해 부득이 해야 하는 것임을, 각박한 세상에서 이상적인 신념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환경이 받쳐준다는 증명 혹은 권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도시 밖 변두리에 오고 나서 알게 됐다. ...... 식물 그리는 일을 하며 식물만이 아니라 식물 가까이에서 인간이 사는 모습을 함께 들여다보게 된다. 도시 밖 풍경을 마주하는 동안 자연스레 이동권 문제가 여성에게 더욱 공평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 이소영 - 홀로 살아갈 수 없다
184쪽
사실 친구와 나는 식물과 관련된 직종에 종사한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 취향도 성격도 다르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는 서로를 다 안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고, 서로를 재단하지도 않는다. 이 점이 우리의 관계를 더욱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겠지. / 이소영 - 홀로 살아갈 수 없다
186쪽
생존력이란 생존하는 데에 필요한 힘 이전에 스스로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다. 이 사랑에 의해 생물은 본능적으로 생존할 만한 길을 선택하고 행동한다. 시련을 이겨낸 이들이 흔히 말하는 '죽으란 법은 없다'는 세상의 법칙이 아닌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부른 생존력의 힘에 관한 말이다. ...... 생물에게 스스로에 대한 사랑보다 더 큰 힘과 가치는 없다. 오래 살고 아는 게 많아질수록 자기 안의 본능이나 진정 원하는 것에서 멀어져 스스로를 품격, 우아함, 도덕 같은 사회적 시선과 기대에 가두기 쉽고, 더욱이 여성들에게 그 족쇄는 강하게 작용하곤 한다. ...... 나이가 들수록 투명하고, 솔직하고, 편견 없는 마음을 사랑하게 된다. 그냥 좋다는 감각, 그냥 신나는 감각, 이런 원초적인 감각의 가치를 떠올린다. / 이소영 - 홀로 살아갈 수 없다
191쪽
거울을 볼 때 나는 잠시 내가 아니다. 나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이다. ...... 일도 생활도 혼자 하는 사람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냐 누가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타인의 시선이라 답할 것이다. 나를 내 밖에서 보아줄 눈이 없다는 것은 자주 나를 고립시키고 방만하게 만들며 때로 외롭게 한다. ...... 혼자인 나는 비타민이나 철분제를 먹듯 거울을 본다. 거울 속의 내 안색과 자세를 살피고 표정을 조금 정돈한다. 그뿐이다. 그런데 이 사소한 행위가 몸과 마음에 가끔 환기가 된다. 인간은 본래 그런 존재라서 자각 없는 모든 순간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에 둔다. 그러나 거울을 볼 때 나는 내가 잠깐 그 고정된 장소에서 한 발짝 비켜서는 것 같다. / 무루 - 나에게로 이르는 길
195쪽
내가 가장 잘 지내고 싶은 사람은 다른 누구보다도 나다. 이상한 말이지만 혼자인 사람에게는 스스로를 너무 싫어하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 ...... 가진 허물을 속속들이 알고도 자신을 좋아하기까지 바라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 다만 조금이라도 덜 싫은 사람, 혹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순간을 노력해서 만들어볼 수는 있다. 그런 시간을 되도록 자주 경험하는 것이 내가 아는, 나와 잘 지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 무루 - 나에게로 이르는 길
200쪽
나이 드는 일이란 나를 잃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게로 이르는 것이었나. ...... 한 사람을 규정할 수 있는 실체는 결국 반복되는 행위에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단출해진 중년의 삶이란 어쩌면 형식을 만들어보기 딱 좋지 않은가. 그 모양이 조금이라도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본다. / 무루 - 나에게로 이르는 길
204쪽
이런 상상을 하는 동안 잠시 기대가 불안을 압도했다. ...... 불안은 길고 안도는 짧다. / 무루 - 나에게로 이르는 길
[네이버 책] 자기만의 방으로 - 안희연, 송은정, 서수연, 고운, 휘리, 박세미, 신지혜, 신예희, 이소영, 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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