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다가 이혼할 뻔 - 엔조 도. 다나베 세이아

 

■ 엔조 도

 

34쪽
이 세상이 사리에 맞지 않고 어수선하며 혼돈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꽤나 최근 일이다(결혼하고 나서부터니까). 이 세상은 전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물리법칙, 논리, 정합성. 힘 좀 내봐! 얼빠진 것을 완벽히 지적질할 수 없을 정도로 태생이 얼빠진 우주에 살고 있다. 그런데도 멀쩡한 얼굴로 살 수 있는 것은 지적질에 지쳐서 머리가 마비됐기 때문이 아닐까.

35쪽
자신을 바보라고 말한다면 아직 바보가 아니다. 스스로 바보가 아니라고 진지한 얼굴로 말할 정도가 돼야 한다. 

133쪽
옛날에는 심각했다고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금도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깨닫는 일이 중요하다.

213쪽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긴 해도 어떠한 의견이 평범한지 아닌지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의 수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우연히 1 더하기 1은 2라고 믿는 사람이 많은 사회에서 살고 있을 뿐 여기에 필연성이 있는 건 아니다. 1 더하기 1이 2라는 점 자체는 달라지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사람이 1 더하기 1은 3이라고 생각하는 사회가 있을 수 있다. 극단적인 예지만 인간에게는 그런 기묘하고도 제멋대로인 부분이 있기에 "모두가 쉽게 착각해버리는 문제"가 있다. 확률을 둘러싼 퀴즈에 자주 속는 이유는 우리가 "그 문제를 착각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덧셈이라면 그래도 정답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으니 괜찮다. 그러나 세상에는 정답이 없는 문제가 있다. 이 사실은 철학자나 문학자에게 배우지 않더라도 분명하다. 따라서 사태는 점점 더 복잡해진다. 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다들 각자 자신만의 의견을 가진 채 자신을 다수파라고 생각하는 상황은 이상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222쪽
생각해봐도 아내와 맞는 부분이 잘 떠오르지 않지만, 분명 이런 점은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내가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 '지금의 나는 누군가가 꿈을 꾸고 있는 나', '지금 이 세상은 꿈?'과 같은 감각 말이다. 이건 의외로 실감할 수 있는 사람과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 '나는 누군가의 꿈이 아닐까' 같은 감각은 ...... 생각하는 즐거움을 불러오는 일이다.

234쪽
이 연재를 통해 뭔가 이런 부분에 있어 변화가 있었느냐 하면, 전등이 꺼져 있는 빈도와 문이 닫혀 있는 빈도가 조금 늘었다. 다만 같은 크기인 접시 두 개와 밥공기 두 개가 있을 때 접시, 밥공기, 접시, 밥공기 순으로 겹쳐진 입체 구조가 출현하는 이유는 뭘까? 혼자 서 있는 주걱을 굳이 옆으로 뉘어놓았을 때의 장점(위치 에너지의 절약?)은 뭔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이해하고는 있다. 이것이 개선될 일은 없겠구나, 적어도 이번 생에는. ...... 그래도 우리 부부가 그럭저럭 사이 좋은 이유는, 서로의 뭔가 쉽게 알 수 없는 이런 놀이를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억지로 이론을 만들어보기도 한다.​


● 다나베 세이아

 

42쪽
내가 좋아하는 영화 대사 중에 하나를 소개하겠다. 

"영화는 변하지 않는데 볼 때마다 다르게 보이는 것은 내가 변해서다." - <12몽키즈> 

자신의 변화와 마주하려면 몇 번이고 다시 즐길 수 있는 소설이나 영화가 있는 편이 좋다. 

 

243쪽
가령 남편의 어떤 부분에 내가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는지조차 아직 잘 모른다. 어렴풋이 이 사람과는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은 찻집에서 갈분떡을 먹는데 남편이 진지한 얼굴로 콩가루 위에 뿌린 흑설탕 시럽을 한 줄로 이어가며 장난치는 모습을 봤을 때였다.


■ 엔조 도


235쪽
있는 그대로 읽으면 그만인데 농담 섞인 진절머리로 읽히는 것에 대한 진절머리,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해야 된다고 말하는데 상대방은 얼굴에 웃음을 띠는 것에 대한 진절머리, 진절머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받지 못한다는 진절머리마저도 진절머리다.
​​
248쪽
'서로 다른, 다양한 의사가 소용돌이치는 세계'라는 말을 할 때, 나는 '다른' 부분이 신경 쓰이고 아내는 '다양한' 쪽에 신경을 쓴다고 봐야 할까. 

249쪽
실제로 나는 결혼한 뒤 예전까지는 별로 흥미가 없던 여러 가지 것에 흥미가 생겼다. 인간은 모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기에 흥미의 방향이 뒤틀리는 일을 고통스럽게 느낀다. 이렇게 다른 쪽에 흥미를 갖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일도 많다. 역시 소박하게 결혼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재미있다" 하면서도 "이상하네"라고 중얼거리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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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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