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닦고 스피노자 - 신승철

28쪽
단단한 껍질을 가진 존재일수록 수동적으로 외부 상황이 다가오는 것을 스트레스로 받아들여서 때로는 불안을 느끼고 걱정하고 초조해할 수 있습니다. ...... 외부의 영향을 받으면 받을수록 오히려 신체나 정신의 역능이 성장합니다. 외부의 영향은 불안의 촉매제가 아니라 변용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36쪽
마음을 열고 낯선 상황 속으로 온 몸을 던져 뛰어들어 뒤섞이고 혼합된다면 어떨까요? 나뿐만 아니라 낯선 상황마저도 처음과 달리 아주 색다른 무언가가 되어 있겠지요? 이 과정에서 외부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자기 안에서 발견한다면, 그때 비로소 불안증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것이 진정한 미래겠지요. 이렇게 미래는 낯선 현실과 뒤섞여서 생성됩니다.

60쪽
지금 드릴 수 있는 답은 기쁨을 가져다주는 관계를 위해서 실천하고, 슬픔을 갖게 만드는 관계를 멀리하라는 말입니다. ...... 둘 사이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고, 새로운 상상이 떠오르고, 색다른 무엇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기쁨의 관계를 만들어 보세요. ...... 기쁨의 관계는 민주적이고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는 긍정과 생성의 관계입니다. ​

77쪽
우리가 갖고 있는 사랑과 욕망의 힘도 역능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초월적인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진정 원하고 느끼고 사랑하는 원리에 의해서 움직이는 힘입니다. ...... 자신이 권력의 논리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망상을 갖게 되면 자신이 진정 원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사랑과 욕망을 사소하고 비루한 것으로 취급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88쪽
감시당한다는 망상보다 더 강력한 사랑과 욕망의 힘이 존재해야지만 그 사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죠.

88쪽
초월자가 막강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초월자의 힘이, 사실은 거기에 사로잡힌 자기 자신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더 이상 초월적 힘은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 그것이 바로 자기원인의 내재적 역능인 것입니다.

89쪽
우리는 무의미라고 여겨졌던 영역에 더 주목해야 합니다.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대부분 초월적 권력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 우리는 초월적 권력자와 똑같은 시선을 가질 것이 아니라 사랑과 변용의 독특한 움직임에 따라야 합니다.

106쪽
관계에 초월적 중심이 잡히면 안정감이 생기게 됩니다. 이 중심은 내 욕망이 되도록이면 현실에서 작동하지 못하도록 만들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107쪽
물론 가족은 어찌 보면 공동체이지만, 그 존재 자체만으로 관계가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는 혈통적 망상으로 구성된 예속 집단의 성격이 강합니다. 가족이 공동체의 역할을 하려면, 예속 집단의 성격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162쪽
역사는 영웅이나 주체나 개인이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역에 있는 공동체적 관계망이 만듭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역사 속에서 업적을 남겼다'는 것은 공동체를 전제하고 있지요. 개인이 공동체에 영향을 주는 것은 외부에서 초월적 지위를 갖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내부에서 특이성을 통해서 관계망과 배치를 바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197쪽
인간의 욕망을 긍정한다는 것은 자신의 유한함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욕망이 공동체와의 접속 속에서 무한히 변용되는 미래로 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260쪽
이성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이성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욕망을 억압하고 욕망을 충동과 같은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지요. ...... 이 이성은 욕망과 반대편에서 작동하고 억압하기 댸문에 오히려 욕망을 맹목적인 충동으로 만들어버리지요. 이러한 초월적 이성을 작동시키는 사람들은 욕망을 거스르고 자신의 내재적인 지평으로 존재하는 욕망을 배반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강력한 충동에 시달리며, 스스로 그것을 조절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283쪽
가령 우리가 몽둥이로 맞아서 머리가 아픈 경우에 원인을 몽둥이의 가격으로 봐야지 두뇌 속의 아픔을 느끼는 물질로 봐서는 안 됩니다.

308쪽
후대에 칼 마르크스라는 사람이 감성적 실천 없는 의식이 얼마나 현학적인가에 대해서 얘기했던 것과 맥락이 닿는 것 같네요. ...... 데카르트와 같이 사유를 하나의 실체로 본 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며, 오만한 사고방식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를테면 단순히 내가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장악하고 자신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사유를 실체로 본 결과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일종의 이성을 가장한 관계 망상입니다. ...... 신, 즉 자연이라는 실체 속의 하나의 양태로 자신을 인정해야겠지요. 자신이 자연의 일부이며 변용의 양태로서 존재할 뿐, 실체 자체가 아니라는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344쪽
모든 광기의 내부에는 욕망이 있다. 광기가 되기 이전에 그것은 한 떨기 소박한 욕망이었다. 너무나 순수해서 상처받기 쉬웠던 그 욕망은 초월적 권력이 휘두르는 폭력에 의해 갈가리 찢기고 만다. 혼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길 잃은 영혼이 된 것이다.

364쪽
공포 없는 희망은 없으며, 희망 없는 공포는 없습니다.

376쪽
신, 즉 자연이 지닌 질서를 이해하는 자는, 신을 사랑할 수 있을 뿐 결코 복종할 수 없다.

378쪽
희망은 우리들이 그 결과에 관하여 의심하는 미래나 과거의 사물의 표상상에서 생기는 불확실한 기쁨일 뿐이다. 이에 반하여 공포는 마찬가지로 의심되는 사물의 표상상에서 생기는 불확실한 슬픔이다. 그런데 만일 이들 정서에서 의심이 제거되면 희망은 안도가 되고 공포는 절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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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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