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콤비 - 결혼의 목적 - 수단과 목적

 

배우자를 수단으로 생각하면 자연스레 일정 수준 이상의 기대치를 품게 된다. 생계 수단, 살림 수단, 생식 수단, 양육 수단, 내조 수단, 성적 만족감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 재테크 수단 등등. 수단에 대한 기대 심리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과도 같다. 한도 끝도 없이 계속해서 치솟아서 만족을 경험하기 어렵다. 상대가 한쪽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경우 불거지는 부부 갈등. 상대를 일종의 수단으로 여기면 매일같이 행복이 아닌 불평불만을 키울 수밖에 없다.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상대방의 기대치를 만족시키기란 애초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배우자를 수단으로 여긴다? 위에 열거한 각종 수단을 노골적인 표현으로 접하고 보니 여간 민망하고 거슬리는 게 아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보통의 부부들이 생각하는 바를 그저 직접적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매달 생활비를 벌어 오는 일, 청소하고 빨래하고 식사 준비를 도맡는 일, 자녀를 출산함으로써 대를 잇는 일, 아이들을 번듯하게 키워 내는 일, 학부모 간의 신속한 정보력으로 자녀의 교육 수준을 높이는 일, 아이들 건강을 관리하는 일, 원할 때면 성관계에 응해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 벌어 온 돈을 투자 및 저축으로 한껏 불리는 일. 같은 의미를 풀어썼을 뿐인데 공감도의 차이는 상당하다. 많은 부부들이 서로에게 가지는 일상적인 기대이자 자연스러운 역할이다. 수단이라는 표현 역시 기대 및 역할과 어감만 다를 뿐, 똑같은 의미다. 많은 부부들이 이토록 거북스러운 부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에게 지우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일부 기능을 담당하는 수단'으로 보면 갈등과 불화가 생기기 마련이다. 상대방의 존재 자체를 '결혼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해야 원만한 부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럴 때 비로소 상대는 기대치 이상의 만족감을 선사하는 훌륭한 배우자가 된다. 우리 부부가 결혼한 목적은 행복하기 위해서다. 따로 또 같이 누리는 행복. 서로는 그저 이를 위한 수단이면 족하다. 우리 부부에게 있어, 같이 누리는 행복에 우선하는 것은 각자의 행복이다. 상대를 곤란하게 하거나 무리한 걸 요구하면서까지 자기 행복을 욕심내지는 않는다. 함께하는 행복 역시 각자의 행복에 도움이 될 때, 서로가 흔쾌히 합의했을 때에만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목적의 우선순위를 혼동하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와는 영 딴판인 그의 재능, 외모, 생활 습관 등은 그 자체로 내 행복을 키우는 수단이 된다. 요리 솜씨에서부터 다른 사람들과의 친화력, 유러피언 이목구비, 작은 체구, 긍정적인 사고방식, 임의적인 생활 습관, 어눌한 말투까지. 전부 나를 유쾌하게 하거나 의외의 매력 발산으로 재미를 돋구는 것들이다. 핵심은 '있는 그대로의 그'에게서 얻는 쾌감이라는 데 있다. 사랑하기 때문에, 나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혹은 본인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 아니다. 애써 꾸미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을 그 본연의 모습이 주는 행복이다. 가만히 있어도 상대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건 둘 모두에게 감사하고 기분 좋은 일이다.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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