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콤비 - 결혼의 목적 - 상식과 목적

 

부부 관계를 지속하게 하는 것으로 사람들은 몇 개의 상징적인 단어들을 떠올린다. 자식, , 사랑, 세 가지가 대표적이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결혼 후 10년쯤은 가슴 뛰는 사랑으로, 이후 20년쯤은 자식으로 얽혀서, 이후 30년쯤은 미운 정 고운 정으로 산다'고 말한다. 나는 '보다 넓은 의미의 사랑'을 우리 부부의 행복 요인으로 꼽는다. 결혼 전이나 7년 차인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보다 넓은 의미의 사랑'을 나는 종종 '우정'이라고 표현한다. 통상적인 사랑에 비해 우정이란 기대보다 신뢰가, 소유보다 배려가 우선하는 관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부부의 결혼 목적과도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다. 함께하는 행복을 더해 각자의 행복을 최대한 누리자는 게 우리 부부의 결혼 목적이자 일상이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하는 것이 결혼이라고 한다. 하고 후회하는 경우는 결혼에 뒤따르는 것들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서다. 우리 부부는 행복에 도움이 되는 것들만 수용한다. 행복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요소만 따르는, 지극히 합당한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일반적인 남편과 아내로서의 역할을 기대해 본 적이 없다. 현재 나는 돈 안 되는 블로그에 매진, 그는 일본 라멘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점장 역을 맡고 있다. 내가 돈벌이를 그만둔 지도 벌써 1. 하지만 우리 중 누구도 나를 주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집에서, 그는 직장에서, 각자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출퇴근, 당장의 돈벌이가 생산적인 일과 같은 의미는 아니다. 잘할 수 있는 일, 가치 있는 일을 즐기며 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좋은 업()은 없다는 게 우리 부부의 생각이다. 지금 하는 일이 오늘내일의 생계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쓸데없는 시간 낭비로 보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집에서 보내는 24시간은 주부의 사명이나마 다해야 하는, 놀고먹는 시간이 아니다. 1년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데에는 그의 입김이 더 크게 작용했다. 천직이 아니라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행복에 필요한 돈벌이 수단을 놓기까지는 수차례 고민을 거듭해야 했다. 나 혼자서든 그와 함께든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직장은 필요한 돈을 적당히 벌 수 있는 괜찮은 수단이었다. 문제는 같은 성과를 내기 위해 남들보다 두세 배나 많은 스트레스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 잘하는 분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던 것이다.

 

남편은 같은 노력으로 더 큰 성과를 올릴 수 있는, 내가 잘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일을 하기를 바랐다. 인생의 목적이 행복인데, 하루의 절반인 12시간을 행복에 필요한 돈 때문에 불행하게 보낸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것이었다.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지 말자, 우리의 목적은 행복이다!' 숱한 대화 끝에 내린 우리의 최종 결론이었다. 7년의 경력을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었던 건 단순하고도 명쾌한 '행복'이란 목적을 잊지 않고 있어서다. 1년 여가 지난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 결정은 상당히 현명하고 합당했다. 수입은 3분의 1로 줄었지만 우린 여전히 목적에 맞는 삶을 행복하게 누리고 있다.

 

우리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모아 놓은 돈 없이는 다달이 들어가는 공과금 및 생활비를 충당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직업을 바꾸는 일이 30대에 특히나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20대에는 부모의 도움으로, 40~50대에는 그간 모아 둔 돈으로 이직을 꾀하기도 한다. 하지만 30대에는 여자의 경우 출산과 육아로 어쩔 수 없이 이직 또는 퇴직하고, 남자의 경우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직장생활을 지속한다. 우리 부부는 결혼에 거의 자동적으로 뒤따르는 출산은 배제하고 서로의 경제력으로 상대의 이직을 뒷받침함으로써 우리의 구미에 맞는 요건만 받아들인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결혼한 30대에게는 흔지 않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이직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그가 대기업 영업직에서 아르바이트나마 조리직으로 전환할 수 있었던 것도 결혼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송 여사(그의 어머니이자 나의 시어머니, 이하 송 여사)는 공장 구내식당을 운영 중이다. 그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니까 올해로 21년째. 어릴 적부터 식당 주방을 드나들며 엄마의 일을 도왔던 그는 요리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지만, 정작 이를 극구 만류하는 엄마의 바람에 못 이겨 평범한 사무직을 택했다. 이전에 호텔에서 근무하던 송 여사는 아들이 주방 일을 업으로 삼는 것을 무지 꺼렸다. 본인은 수년을 주방에서 일해 왔지만 아들은 좀 더 그럴 듯한 직업에 종사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결혼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더 이상 누나와 함께 살지 않아 사생활이 부모의 귀에 들어갈 리 없었고, 결혼한 마당에 일일이 이직을 보고할 필요도 없었다. 이직에 대한 판단은 온전히 본인 스스로의 몫이었다. 부모가 아닌 배우자인 나하고만 합의를 보면 됐다.

 

잘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 행복한 인생의 기본 조건이라는 생각 아래, 나는 그의 이직을 적극 추천했다. 이직을 고려할 당시 요리만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 직업군을 놓고 심사숙고하고 있을 때, 그에게 요리를 권한 것은 오히려 내 쪽이었다. 서점에 가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는 패션 잡지를, 그는 요리책을 들여다봤다. 헤어샵에 가서 같은 잡지를 봐도 나는 패션란을, 그는 요리란을 들춰 보기 바빴다. 유심히 지켜본 결과, 그의 관심 분야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평소 그의 요리 실력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잘하는 일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좋아하는 일을 찾고 이에 대한 확신을 굳히는 것으로 가장 중요한 이직의 첫 단계를 완료했다.

 

다음 단계는 내가 지금 그로부터 받고 있는 것, 즉 지지와 후원이다. 한쪽의 경제력으로 다른쪽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뒷받침하는 것이다. 요리에 관한 경력도 자격증도, 학위도 없었던 그는 일개 아르바이트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당 오천 원의 비정규직. 하지만 문제될 건 없었다. 어차피 목적은 돈이 아닌 즐길 수 있는 일 자체에 있었기 때문이다. 직장 체계에 대한 회의감이 그리 짙지 않던 당시, 나는 얼마든지 그를 경제적, 심리적으로 지원할 수 있었다. 일에 대한 만족은 일상생활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배우자인 나로서도 박수 치며 환영할 일이었다. 발군의 손맛과 어깨너머로 배운, 요리 실력 못지 않게 중요한 식당에서의 타이밍 원리를 현명하게 적용한 결과, 그는 단 몇 개월 만에 정직원으로 승격, 이내 점장 자리를 꿰찼다. 대인 관계에서 발휘되는 타고난 친화력도 단단히 한 몫 했다. 그의 강점을 제대로 살린 이직 결정이었던 셈이다. 잘하는 일을 즐겁게 할 때 나타나는 효과란 이런 것이다.

 

남편은 돈을 벌고 아내는 맞벌이를 하거나 아이를 낳아 육아와 살림을 책임지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 지극히 상식적이고 일반적이지만 결코 합리적이지 않은 논리. 우리 부부는 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를 강력히 거부한다. 대신 목적에 부합하는 합당한 논리를 추구한다. 서로의 행복을 도모하는 능동적인 삶을 택함으로써 순간순간의 행복으로 인생 전반의 행복을 쌓아 가고자 하는 것이다. 목적에도 맞지 않는 가장으로서의 든든한 경제력, 안사람으로서의 살림살이를 기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꾸리고 대를 이을 자손을 보는 것이 목적인 부부에게는 상식적인 역할 부여가 필요할 수 있다. 우리 부부의 목적은 그들과 다르다. 각자의 역할과 함께하는 일상 역시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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