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콤비 - 결혼의 목적 - 동거와 결혼식, 그리고 혼인신고

 

결혼이란 남자와 여자가 법적, 사실적으로 부부 관계를 맺는 것을 뜻한다. 참 단순하고도 명쾌한 의미다. 하지만 그 목적은 생각보다 다양하고 복잡하다. 시대 및 문화는 물론, 같은 시공간 안에서도 개인에 따라 결혼의 목적은 제각각이다. 단 하나의 목적으로 성사되는 결혼 또한 없기 때문에, 여러 목적들 간의 우선순위까지 고려하면 엄청난 경우의 수가 생긴다. 두 사람 이상이 모인 조직 및 사회에서는 언제나 우선순위가 갈등의 시초가 된다. 한 나라의 법을 제정할 때도, 가족의 여행지를 정할 때도, 목적의 우선순위가 다를 때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결혼의 목적은 부부 사이에서도 이후의 행복 여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2011 KBS <다큐시대> '마리아 윤의 50번째 결혼식, 결혼이 뭐길래' 편에서 사랑을 전제로 한 결혼이 늘면서 이혼율 또한 높아졌다는 아이러니한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빅토리아 여왕(Alexandrina Victoria Hanover, 1819-05-24~1901-01-22)과 알버트 왕자(Prince Albert of Saxe-Coburg and Gotha, 1819-08-26~1861-12-24)가 최초의 연애 결혼 당사자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 이후 연애 결혼이 유행처럼 번졌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은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 사랑 이외의 것을 이유 또는 목적으로 하는 결혼은 불순하고 불온한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연애 결혼과 이혼율의 직접적인 비례관계를 밝히고자 한 방송은 아니었지만, 결혼의 목적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하는 이야기임에는 틀림없다.

 

사람들은 결혼의 목적이 대부분 두 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경제적 수준, 사회적 지위 향상 등을 목적으로 하는 '이해(利害)'와 서로를 향한 마음 때문에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하는 '사랑'이다. 현실에서는 이 두 가지 못지 않게 많은 이들의 결혼을 결정 짓는 제3, 4의 목적이 있다'임신'도 그중 하나. 임신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많은 연인들이 부부의 연을 맺기로 결심한다. '기혼' 사실 자체에 목적을 두는 경우도 있다. 부모가 바라기 때문에, 나이가 찼기 때문에, 자녀를 갖기 위해서, 안정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 기혼자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특혜를 누리기 위해서 등등. 수많은 이유로 결혼 자체에 목적을 두기도 한다. 이해와 사랑만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결혼의 결정적인 요인들이다.

 

당연히 결혼에는 여러 가지 이유와 목적이 동시에 작용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결정적인 이유, 궁극적인 목적이다. 각자의 생각과 생활방식이 아무리 달라도 목적만 같다면 행복한 결혼 생활과 더불어 각자가 행복한 인생을 누릴 수 있다. 우리 부부는 각자의 행복 함께하는 행복 ③ 필요충분조건 만족 떳떳한 동거 순으로 결혼의 목적이 일치한다. 기본적인 목적이 같기 때문에 싸우는 일은 아예 없다.

 

우리는 동거 중에 결혼을 결심했다. 목동 누나 집에서 강남 사무실로 출퇴근하던 그. 회식이 늦어져 목동까지의 퇴근이나 다음날 출근이 부담스러울 때면 비교적 가까운 내 원룸에서 몇 시간 눈을 붙이곤 했다. 당시 내 원룸 위치는 신림. 목동에 비하면 신림은 거리상으로 아주 바람직한 숙소다. 게다가 누나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 예민한 직업으로 손꼽히는 의사 매형에 이제 막 태어난 조카까지. 1~2년 차의 사회 초년생에겐 여간 부담스러운 곳이 아니었다. 미묘한 남녀 사이의 감정 따위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던 내 원룸이 그에겐 훨씬 더 드나들기 만만한 곳이었다. 나 역시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10시에 출근해 12시에 퇴근하는 나에게 내가 자는 사이 잠시 들렀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친구가 불편할 리 없었다. 내가 가진 것으로 한 친구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스럽고 기뻤다. 횟수가 거듭되면서 나는 아예 그에게 열쇠 하나를 쥐어 줬고, 그 이후로는 문을 열어 줘야 하는 번거로움도 사라졌다. 이성이 아닌 인간적으로 서로 믿고 아끼는 친구였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의 회식 날에만 있었던 동침 아닌 동침은 나의 요구로 빈도가 늘기 시작했다. 의류 매장 근무의 특성상 퇴근 시간이 상당히 늦은 데다가 당시 일이 가장 중요했던 나는 무리하면서까지 번화가를 누비며 친구들을 만날 의향이 없었다. 주로 퇴근 후에 즐기는 소주 한잔으로 적성에 맞지도 않는 판매직의 스트레스를 풀 때였다. 할 줄 아는 건 라면과 밥이 전부. 안주는 늘 편의점 가공식품 나부랭이였다. 근처 술집에서 편안히 먹으려면 여자든 남자든 동행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각자 이제 막 입사한 회사에 적응하느라 바쁜 20대 중반. 내 퇴근 시간에 ''할 수 있는 친구는 흔치 않았다. 다행히도 그는 목동까지 오가는 시간과 노력을 절약하는 대신에 나와 갖는 술자리를 반겼다. 퇴근이 이른 날엔 누나네 집앞에서 혼자 쭈꾸미에 소주 한잔을 기울이곤 했던 그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일행이 필요했던 나, 가깝고 편한 숙소가 필요했던 그. 우린 하늘이 맺어 준 공생관계라며 주 4~5일 동거를 만끽했다.

 

당시 나는 그와의 동거가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스스로 죄의식에 사로잡힐 이유도 없었다. 각자 자기가 가진 것을 공유함으로써 가지지 못한 것, 필요한 것을 상대로부터 조달 받는 조화로운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 동안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시시콜콜 그에게 이야기하며 풀고, 이로써 직장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사는 술을 함께 마시며 얘기를 들어 주고 회사에서 보다 가까운 곳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잠자리를 보장 받았다. 서로에게 더 많은 무언가를 바라지도 않았고, 스스로 당당한 만큼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애써 동거 사실을 감추려고도 하지 않았다.

 

문제는 부모였다. 부모는 우리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만 떳떳하다면 주위에서 아무리 수군거려도 개의치 않는 편이지만, 부모는 뒷말을 일삼는 그들처럼 무시해 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합리적이고 만족스러운 관계가 부모에게 노출되면서 돌연 위기를 맞은 것이다.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임을 직감했다. 앞서 '배우자의 조건'에서 내 인생의 중요한 몇 가지를 소개했다. ① 주체적으로 설계하는 인생, ② 내가 가진 능력의 발휘, ③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의지의 실현, ④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 ⑤ 자유로운 의사 결정권. 나는 그와 1년 여의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우리가 각자의 행복을 첫째로, 함께하는 행복을 그 다음으로 중시한다는 것을 알았다.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는 대등한 관계 또한 친구나 동거 사이이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의 확고한 가치관이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다. 이는 그와의 평생 동거가 내 행복에 보탬이 될 거라는 확신을 갖게 한 계기가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떳떳하지 못하면 불편하기 마련이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이렇게 평생 같이 노는 건 어떻겠냐고.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결정했고, 떳떳한 관계로 거듭났다.

 

떳떳하기 위해 결혼이라는 절차를 감행했기 때문에 혼인신고 역시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즉시 마쳤다. 상대에게 내 논리를 설명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피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는 매 순간 떳떳하고자 한다. 일종의 신념이다.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사는 삶이라면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존중 받을 가치가 있고 원하는 대로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 결혼이나 동거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다. 결혼, 동거, 임신이나 출산한 사실이 있다면 그 사실을 숨기지 말고 당당히 있는 그대로를 밝힐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절대적인 옳고 그름을 떠나, 당시 본인의 결정이 제반 여건을 고려할 때 충분히 타당성 있는 결정이었다면 전혀 부끄러울 이유가 없다. 오히려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밑거름이고 지금의 모습을 가능하게 한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에, 그 일을 숨기고 맺은 관계는 온전하다고 볼 수 없다.

 

부모님 및 지인들의 입장을 배려해 상견례, 결혼식, 혼인신고를 치뤘다. 부모의 뜻에 따라 일반적인 절차와 사회적인 체계를 거치긴 했지만, 목적은 오직 '떳떳하게 같이 사는 것'뿐이었다. 우리와 부모가 조금씩 양보한 덕분에 시간과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결혼식은 동거가 부모에게 들통난 지 한 달 만에 해치워 버렸다. 축의금을 감안하면 비용은 제로, 시간은 딱 한 달이 걸린 것이다. 형식 때문에 본질을 훼손할 순 없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각자의 행복, 내 경우 당시 다니던 직장생활에 누가 되는 결혼식은 용납할 수 없었다. 7~8월에 20일 간 주어지는 여름 휴가 기간. 나는 그 안에 모든 절차를 마치고 평소처럼 회사에 복귀, 그와의 일상을 전과 똑같이 즐겼다.

 

같은 목적으로 맺어진 친구, 동거 사이는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생의 목적이 같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이 평생을 함께하기로 마음 먹은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다. 결혼식과 혼인신고는 떳떳함을 위해서였고, 1~2회의 동거는 서로의 편의를 위해서였다. 5~6회의 동거로 발전시키고 평생을 동거하듯 친구처럼 연인처럼 살기로 한 결정은 '함께하는 행복을 더해 각자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였다. 같은 목적은 상당 부분 과정의 합의에 도움이 된다. 과정에 대한 의견이 다를지라도 목적이 같으면 마음을 다칠 일이 없다.

 

목적에 비하면 사랑은 뜬구름 같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설레임, ()적 만족, 상대에 대한 환상을 가리킨다. 사랑이 변하는 이유는 설레임이 줄고, 성적 만족감을 다른 이가 더 훌륭히 대신하고, 상대에 대한 환상이 깨지기 때문이다. 이는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한쪽의 변심으로 다른 한쪽이 상처 받고 배신감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종류의 사랑을 전제로 연인 및 부부의 관계를 맺은 경우 발생한다. 최초로 연애 결혼에 골인한 19세기 빅토리아와 알버트가 죽음이 그들을 갈라 놓을 때까지 좋은 부부상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뜬구름 같은 사랑이 아닌 서로의 마인드를 지지하는 신뢰와 의리를 바탕으로 부부의 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이성 간의 불 같은 사랑보다 더 넓은 의미의 사랑을 결혼의 이유와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다.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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