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쪽
사람들은 과학이 발견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학을 하거나 과학에 대해 읽는 행위의 즐거움은 해답에 있지 않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질문에 있다. 발효주를 만들고 증류하는 모든 단계에는 심오한 과학이 있고 많은 과학자가 이를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34쪽
증류는 뭔가를 줄임으로써 더 강력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농축하는 과정이고 초점을 맞추는 과정이다.
141쪽
오늘날 영어에서 'al-'로 시작하는 단어는 어원상으로 아랍에서 왔다고 봐도 무방하다. algebra(대수학)도 그런 예다. 좀 더 관계가 있는 예로는 훗날 이집트인들이 마리아의 장비를 써서 화장품과 다른 분말제품을 만들 떄 이를 al-kohl이라고 불렀고 여기서 'alcohol(알코올)'이 나왔다.
187쪽
통 안에 담긴 액체에서는 필수적인 분자의 구조조차 바뀐다. 에탄올은 물과 접촉하게 되면 에탄올 분자들끼리 서로 뭉친다. 시간이 지날수록 에탄올 무리의 숫자가 늘어나기 대문에 최종 제품에서 에탄올이 덜 느껴진다. 또 에탄올 무리는 몇몇 휘발성 분자를 붙잡을 수 있어서 휘발성을 떨어뜨려 증류주의 향기에서 그 성분이 덜 느껴지게 만든다. 사람들이 숙성된 술이 "잘 넘어간다"고 말하는 건 이런 맛 때문이다.
222쪽
한편 미뢰는 우리가 어릴 때 배웠을 혀지도에 따라 분포하는 게 아니다. 네 가지 기본맛-신맛, 짠맛, 단맛, 쓴맛-은 혀 전체에서 감지될 뿐 아니라 어떤 세포는 다섯 번째 기본맛인 감칠맛을 감지한다. 그리고 어떤 미각 연구자들은 기본맛이 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런 후보 가운데 하나가 코쿠미kokumi, 즉 지방맛이다.
225쪽
몸에 있는 다른 모든 감각은 간접적으로 작용한다. 시각의 경우 빛이 망막에 부딪힌다. ...... 청각의 경우 특정 파장의 소리가 고막을 두드리면 그 정보가 일련의 작은 뼈를 통해 신경으로 전달된다. ......
하지만 후각은 다르다. 우리가 어떤 냄새를 맡는다는 건 대상에서 뭔가가 떨어져 나가 공기를 타고 코속으로 흘러들어와 뇌와 연결된 뉴런에 닿았다는 말이다. 후각은 직접적인 감각으로 냄새를 지닌 분자와 냄새의 지각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 후각은 가장 내밀한 감각이다.
226쪽
어떤 분자는 물에 녹지 않지만 에탄올에는 녹아 미각세포에 닿기 쉽게 되고 입안의 온기로 휘발돼 후각상피로 날아간다.
226쪽
냄새와 맛이 관련된 곳에서 에탄올은 연구자들이 '식후효과postingestive effect'라고 부르는 이상한 느낌을 유발해 일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동물들은 이 효과를 맛과 연관 짓는 경향이 있다. 향미는 거부감이 들지만 효과는 끌린다.
230쪽
사람들은 끔찍한 술맛을 좋게 만들기 위해 늘 설탕이나 비슷한 뭔가를 첨가했다. 바흐마노프에 따르면 보드카를 제외한 모든 술은 우리가 핵심 성분의 맛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한 꼼수가 들어있는 액체일 뿐이다.
234쪽
자유와 실험정신이 넘치는 작은 증류회사들은 각종 진귀한 곡물들로 증류를 시도하고 있다. 법적으로 스카치위스키는 보리만 써야 한다. 버번위스키는 옥수수와 보리, 밀, 호밀만 써야 한다. 반면 이런 작은 회사들은 청옥수수, 수수, 스펠트밀, 기장, 퀴노아, 테프로 실험을 한다.
235쪽
보드카는 향미 과학에서 미지의 경계를 잘 보여주는 예다. 어떤 재료를 써도 상관이 없지만-곡류나 포도 또는 감자-법적으로 보드카는 물과 에탄올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술이다. 증류업자는 둘의 비율만 조절할 수 있을 뿐이다.
237쪽
보통 증류회사에서 마스터블렌더의 역할은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즉 제품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블렌딩에 쓰이는 싱글몰트위스키들이 달라져도 10년 전과 같은 향미를 유지할 수 있다. 스카치위스키연구소에서는 주관적인 분석과 경험, 마스터블렌더의 감각기억이 고성능액체 크로마토그래피와 기체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기로 대체되고 있다.
237쪽
"우리가 규명할 수 있는 화합물이 향기가 있는 거라면 이상적이죠." 스틸의 말이다. "그런데 미스터리하게도 향기는 있는데 화합물을 못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의 코는 질량분석기보다도 민감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린 기계가 감지하지 못하는 분자도 알아차린다.
246쪽
거기에는 영국 통계학자 조지 E. P. 박스George E. P. Box의 경구가 깔끔한 산세리프체로 적혀 있었다. "통계학자는 예술가처럼 자신들의 모델과 사랑에 빠지는 나쁜 습관이 있다."
249쪽
앨런 말라트Alan Marlatt는 이를 균형 잡힌 위약 설정이라고 불렀고, 연구자들은 처음으로 참가자들에게 음료의 알코올 함유 여부를 속여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볼 수 있게 됐다. ...... 예상, 즉 자신이 음료를 마실 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지각이 에탄올 효과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알코올에 대한 사람들의 행동을 유발하는 건 향이나 맛의 존재-또는 그 부재-가 아니다. 오히려 음악이 흐르는 어두운 실내에서 의자에 앉아 있을 때 일어나는 사회활동이다.
...... 요약하자면 알코올이 우리 마음의 상태에 영향을 주는 것만큼 우리의 마음 상태도 알코올의 작용에 영향을 준다.
254쪽
이 수준-연구자들은 '적절한 범위'라고 부른-에서 혈중알코올농도는 0.04~0.05 정도다. 사회적인 음주 용어에 따르면 이 지점은 '맥주 한 잔 더 주세요'와 '이제 그만. 계산서를 주세요'의 사이다. 음주의 대부분은 이 수준이지만 연구는 가장 안 됐다. 황당한 일이다.
259쪽
술을 한 모금 마시면서부터 몸은 작업에 들어간다. 에탄올은 산화되고 깨어져 좀 더 유용한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 에탄올의 형태로 혈류에 남아있는 동안에는 에탄올의 효과를 느끼게 된다. 변환과정이 얼마나 걸리는가는 많은 요인에 달려있다. 에탄올은 위와 소장에서 바로 흡수되므로 음식물이 있다면 흡수가 늦춰진다. 술을 빨리 마시면 흡수도 어느 정도까지는 빨라진다. 도수가 높은 술은 위장관에 진정제로 작용해 생리적 반응을 느리게 하고 흡수를 지연시킨다. 또 자극제가 될 수도 있는데, 위가 점액을 분비하게 해서 생리적 반응을 더 늦춘다.
264쪽
뇌는 기분을 좋게 하는 회로의 한 부분으로 엔케팔린enkephalins이라는 내인성아편류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 헤로인과 모르핀, 아편이 이 메커니즘에 작용한다. 그렇다면 마리화나(대마초)는? 역시 마찬가지다. ......
하지만 알코올은 아니다. "진실은 분자 수준에서 알코올이 어디에 달라붙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밝혀진 게 없어요." ......
이 문제는 상당히 난해한 것으로 뇌가 처음 어떻게 작동하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273쪽
소프트웨어는 혈중알코올농도가 높을수록(0.08 이상에서) 정확도가 높아졌다. 적절한 범위 아래에선 성능이 떨어졌다. 누군가가 술에 취한 상태인지 가늠하는 데는 여전히 사람이 더 뛰어나다. ...... 바텐더가 단골손님이 술을 그만 마셔야 할 시점을 아는 이유다.
274쪽
데킬라를 마시면 성질이 고약해지고 레드와인을 마시면 두통으로 고생한다는 말은 사실 술에 들어 있는 착향료congener를 탓하는 것으로, 술 종류에 따라 착향료의 양과 유형이 다르다. 착향료는 뇌와 몸에 다르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279쪽
요약하자면 설사 에탄올 함량이 같더라도 술에 따라 사람에 따라 시간대에 따라 다르게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이런 사실이 놀랍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이런 관찰이 분자 또는 신경회로 접근법과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른 남용 약물들은 작동 양식이 명확하고 유발하는 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술은 그렇지 않다. 둘 다 확실하지 않다.
318쪽
스타벅스가 장악하기 전에는 바가 제3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 상표 연구가는 바에 '의식의 한계 공간', '중간 휴식', '대체 현실' 등의 이름을 붙여줬는데, 우리가 술과 음주에 대해 얘기할 때 쓰는 용어와 같은 종류다.
319쪽
2010년 오하이오주립대학의 연구원 세 사람은 해외전쟁퇴역군인회 회관에서 일하는 바텐더들을 조사했는데, 바텐더야말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있는 퇴역군인들이 정신건강에 대한 정보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매개체라고 결론 내렸다.
326쪽
사람들은 각자 술맛을 조금 다르게 느끼고 술의 효과도 각자의 방식대로 느낀다. 거시적인 문화의 관점에 따를 뿐 아니라 어린 시절의 경험-술이 부모와의 유대를 강화시켰는지 아니면 위험한 남용의 원천이었는지-에 좌우되기도 한다. 술은 기념할 만한 것일 수도 있고 위험한 것일 수도 있고 그 사이의 모든 경험일 수도 있다.
[네이버 책] 프루프 술의 과학 - 아담 로저스
'몽자크의 책갈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잡기-2022-038] 우리가 사랑하는 이상한 사람들 - 김별아 - 별 넷 - 0720 (0) | 2022.07.20 |
---|---|
[책잡기-2022-037] 18세상 - 김성윤 - 별 셋 - 0716 (0) | 2022.07.16 |
[책잡기-2022-035] 나는 '나쁜' 장애인이고 싶다 - 김창엽 외 - 별 둘 - 0629 (0) | 2022.06.29 |
[책잡기-2022-034] 길 위에서 만나는 신뢰의 즐거움 - 알폰소 링기스 - 별 둘 - 0625 (0) | 2022.06.25 |
[책잡기-2022-033]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 노명우 - 별 둘 - 0622 (0) | 2022.06.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