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쪽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공간과 시설은 참 많은데, 사는 의미를 찾고 의미를 교환할 수 있는 공간과 시설은 너무나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는 나름의 해석을 하는 제자도 있었습니다.
79쪽
그래서 니은서점은 도서관식 책 분류가 아니라 니은서점만의 고유한 맥락으로 서가를 구성했지요. 책은 맥락별로 분류되어 있지만 중간중간 인물별로 분류되어 있기도 합니다. 저는 나름 그 분류 방식을 '니은서점 명예의 전당'이라고 부르는데요. 그 인물들은 제가 좋아하고 닮고 싶은,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들입니다. 지그문트 바우만, 한나 아렌트, 테오도르 아도르노, 칼 마르크스, 에리히 프롬, 발터 빈야민, 수전 손택, 강상중, 우치다 다쓰루 다치바나 다카시가 명예의 전당에 오른 분들입니다. 문학쪽에서는 제발트, 수가 아쓰코, 오에 겐자부로, 조지 오웰, 오노레 드 발자크, 줄리언 반스, 레이먼드 카버, 베른하르트 슐링크, 필립 로스, 주제 사라마구, 프리모 레비, 나쓰메 소세키, 박완서, 슈테판 츠바이크가 니은서점이 사랑하는 작가이지요.
163쪽
상점이 있는 곳엔 불행하게도 바람직하지 않은 손님, 호의를 베풀면 그걸 권리로 착각하는 이른바 '진상'이 있습니다. ...... 서점도 가게이니까 마찬가지입니다.
178쪽
이렇듯 책 읽기는 가장 정적인 활동처럼 보이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역동적인 활동입니다. 책 읽은 시간이 많았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만큼 역동적인 두뇌 활동에 시간을 투자했다는 뜻이 됩니다. ...... 그 결과는 책 읽은 사람의 몸에 스며들지요. 책 읽는 사람의 몸으로 스며든 '책 읽은 티'는 그 사람이 사용하는 단어의 정확성으로, 배려 있는 말투로, 설득력 있는 어조로, 쓴 글의 논리성으로, 기교를 부리지 않았지만 읽는 사람에게 감정이 전달되는 전파력으로 '티'가 나지요.
183쪽
그런데 그런 실용적 목적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꼭 베스트셀러를 읽어야 할 필요는 없거든요. 자신만의 세계 구축이 더 필요한 사람에게 유행은 고려 사항이 아닐 거예요.
185쪽
실패 없이 성공에 바로 도달하려 하기에 사람들은 이른바 필독서 리스트에 영향을 받기도 하는데요. 자신을 믿지 못하는 거죠. 이건 '읽는 사람'의 자세가 아닙니다. '읽는 사람'은 자신을 믿습니다.
186쪽
서점은 일종의 편집숍입니다. 서점에 전시되어 있는 책은 세상의 모든 책이 아니에요. ...... 베스트 드레서에게 잘 어울리는 편집숍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우리가 독서계의 베스트 트레서가 되려면 좋은 편집 서점이 도움이 될 거예요.
203쪽
우리는 온종일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있기에 정말 많은 텍스트를 접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텍스트를 읽지 않아요. 대신 스캔하죠. 우리는 이렇게 읽기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 채로 디지털 스캐닝의 태도를 갖고 책상에 앉아 있으니 독서가 제대로 될 리 없습니다.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참을 수가 없어요. 왜 책은 인터넷 기사처럼 결론이 빨리 등장하지 않는 건가요! 자꾸 화가 납니다.
221쪽
그들은 자신을 '츤도쿠'라 부릅니다. '읽어낼 수 있는 책보다 더 많은 책을 사는 습관'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는 츤도쿠는 오타쿠처럼 일본에서 유래하여 전세계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단어인데요. ...... 츤도쿠는 인스타그램과 스마트폰이 전세계를 장악한 듯한 요즘에도 전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암약하고 있었던 것이죠.
252쪽
전국의 수많은 독립 서점은 행정 용어로는 영세 자영업자로 분류될 것입니다. 자본의 규모가 크지 않다는 뜻이고, 돈을 출자한 사람과 운영하는 사람과 일하는 사람이 동일하다는 뜻이지요. ......
영세 자영업자는 자본의 크기, 고용의 형태, 매장의 면적만을 드러낼 뿐이지, 독립 서점 속 영세 자영업자의 '정신'을 담아내지는 못합니다. 2년 동안 저는 영세 자영업자로 세상물정을 익혔지만, 동시에 독립 업자로 걸아가야 할 미래를 구체적으로 생각할 기회도 얻었습니다. ......
그 모든 서점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영세 자영업자라는 경제적 정의가 아니라 독립이라는 정신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출세지상주의로부터의 독립, 시장만능주의로부터의 독립을 지향하며 새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독립 서점의 정신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네이버 책] 이러다 잘될지도 몰라. 니은서점 - 노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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