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 사이토 미치오


38쪽
'베델의 집'에는 문제가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다툼이나 언쟁, 드잡이가 있고 위협을 하거나 위협을 당하는 틈틈이 환각과 망상이 왔다 갔다 하는 등 화제에 부족함을 느끼는 일은 없다. 어쨌든 문제투성이 사람들이 문제투성이 나날을 보내고 있으므로. 당연한 일이지만 '베델의 집' 사람들은 그러한 문제를 어떻게 하면 없앨 수 있을까라든가, 또는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고 문제가 일어났을 때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대처할까, 그러한 문제를 어떻게 살려나갈까, 그리고 또 거기에서 어떤 충돌과 만남을 전개해나갈까 하는 것을 여기서 묻고 있다. 그것이 '관리가 미치지 않는 곳'의 관례이고, '베델의 집'의 생활 방식인 것이다.

64쪽
예배 중 미야지마 목사가 쭉 훑어보면 얌전하게 앉아 있는 사람은 제일 앞줄 무카이야치 씨와 맨 뒷줄 목사 부인 정도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 두 사람도 피곤에 지쳐 졸고 있었다. 대체 이러고도 교회 예배라고 할 수 있을까? 그것은 "교회가 추궁받는" 장면이었다고 무카이야치 씨는 말한다. 
"조용하고 조신하며 잡다한 거리의 소음과는 멀었던 교회가 일변해 '고민하는 교회'로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만나온, 선남선녀가 모이는 금욕적인 결벽으로 가득 찬 교회도 아니고, 자유롭게 활달하게 교제하는 독실한 교회도 아닌며, 사람들이 약함을 인연으로 삼아 만나 함께 살아가려는 무리인 교회를 그곳에서 봤습니다.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을 묻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옛날부터 다녔던 교회 사람들 중에는 "이건 우리 교회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떠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게 교회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67쪽
교회가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아무나 출입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는 것이 '베델의 집'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교회는 그들이 있을 수 있는 물리적인 장소이면서 그들에게 계속해서 "여기에 있어도 된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안온한 장소였다. ...... 처음부터 그들을 전도하려고 하고 또 이전의 교회를 지키려고 했다면, 아마 그곳에 오는 정신병자나 알코올 중독자들은 이만큼의 안온한 메시지를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예배가 끝난 뒤 변변찮은 차를 즐기는 일도 교회에 머무는 일도 없었을 것이며, 애초에 미야지마 씨 들과의 '충돌과 만남'도 없었을 것이다.

68쪽
그러한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을 보았을 때 '베델의 집'에는, 또는 '베델의 집'에서 시작된 사람들의 관계 속에는 처음부터 변함없이 하나의 관점이 관철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기성의 개념에 매이지 않고 형식에 매이지 않고 세인의 이목에 집착하지 않고, 거기에 있는 사람들 자체를 보려고 하는 관점이었을 것이다. ...... 바로 그렇게 때문에 나날의 생활을 규칙으로 조이지 않고 거칠어진 환자를 가두지 않으며 교회에서 엄숙함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임시방편보다 더욱 깊이 파고든 지점에서 인간의 생활과 생활 방식을 생각하려는 발상이 나온 것임에 틀림없다.

71쪽
정신의료 세계에서는 일반적으로 병의 재발이나 재입원은 될수록 피해야 하는 일이라고 한다. 병이 재발하지 않도록 엄중하게 약을 관리하고 정확히 외래 진료를 다니며 스트레스가 없는 생활을 하도록 하라며, 환자를 종기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베델의 집'에서는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약을 먹을지 안 먹을지, 어디까지 견디고 버틸지, 그것은 모두 본인이 결정하고 선택하는 일이다. 그 결과 병이 재발한다고 해도 그것은 당연히 일어나는 일이며 예상된 일이니까, 라는 의미를 담아 "순조롭습니다"라는 말을 듣는다. 아무리 증상이 악화되어 재입원해도 비난받는 일은 없으며, 본인이 고민하고 생각한 끝에 빠져나오는 것은 "모두 순조로운" 것이다. 그것은 병에 대한 말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고생을 거듭한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77쪽
"하야사카 씨가 3분밖에 하지 못한다면 누군가 그 3분을 보충할 동료를 찾자, 그래서 한 동료가 배정되었어요. 그래도 역시 일을 해치우는 것은 어려웠어요. 그러면 또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동료를 늘리자, 그렇게 해서 한 사람이 두 사람이 되고, 두 사람이 세 사람이 되어 하청 받은 일이 점점 늘어갔어요."
결과적으로 보면 하야사카 씨가 3분밖에 일할 수 없어서 다른 동료까지 작업에 참가하게 되었다. ...... 그것이 '베델의 집' 작업장의 원형이었다. 하야사카 씨는 거기에서 자신의 약함을 비난받는 것이 아니라, 그 약함으로 "세 사람 분의 일을 낳은" 공로자로 인정받았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그것은 일자리 나누기겠지만, 일자리 나누기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모두가 일을 서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일을 하는, 즉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분명한 불평등이 관철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불평등을 담보하는 것은 그들 구성원의 생활 방식이 보여주는 정직함이고, 병이었다.

80쪽
그런데 고치라, 없애라, 이런 말을 듣는 그 병은 다름 아닌 정신병이다. 감기나 위염과 달리 간단히 고칠 수 있는 병이 아닌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평생 이 병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병을 고치라, 정상인이 되라, 이런 말을 계속해서 듣는 것은 그 사람이 평생 "지금의 당신이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을 계속 듣는 일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 병이 있든 없든 "그대로도 괜찮다"는 생활 방식도 있지 않을까? ...... '베델의 집'에 찾아왔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 자신이 자립과 사회 복귀, 정상인을 목표로 하는 것의 어려움, 그리고 그 성과가 없다는 것을 몸으로 알았을 것이다. 그것은 일부러 병을 내세운다는 의미가 아니다. 병자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떻게 살아갈까,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그것을 묻는 일이었다. 그 물음이 아직 윤곽을 드러내지 않은 무렵부터, '베델의 집'에서는 관리를 거부하고 자신의 마음을 말하려 하고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며, 문제가 있으면 사람들끼리 서로 부딪치면서 해결해나가려는 시도를 나날이 반복해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시도와 거의 같은 수의 실패를 거듭해왔다.

86쪽
충돌과 만남을 반복하면서 거기에는 어느새 느릿하고 불확실하며 변덕스럽지만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하나의 '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것은 결코 강고한 연대로 지탱된 장도, 명석한 이념으로 지탱된 장도 아니었다. 규칙이나 약정, 상하 관계에 의해 규정된 짐짓 꾸민 듯한 장도 아니었다. 그저 약한 사람이 그 약함을 유대로 연결된 장이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약하고 부와 지위와 권력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데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세속적인 가치와 힘이 전혀 없는 인간끼리의 유대였다. 
하지만 거기에는 누가 정한 것도 아니고 또 목표로 한 것도 아닌, 처음부터 변함없이 관통해온 하나의 원칙이 있었다. 결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었다. 뒤쳐진 채 따라갈 수 없는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는 생활 방식이다.

88쪽
'베델의 집'의 유명한 캐치프레이즈 가운데 하나는 "세 끼 밥보다 회의"라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모두가 모여 의논하고 모두 납득할 때까지 이야기를 나눈다. 그 전통은 초기부터 '베델의 집' 사람들 사이에 정착되어 있었다.

94쪽
가와무라 선생은 당시를 돌아보며, '베델의 집'에서는 모두가 "일을 한다기보다 잡담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일이 있다. 하지만 언뜻 쓸데없어 보이는 잡담이야말로 소중한 것이었다. 
"저는 작업하고 있는 현장에 가끔밖에 있어보지 않았지만, 거기서는 '좀 더 돈을 벌고 싶어'라든가 '돈을 벌면 뭘 할래?' 같은 말을 주고받습니다. 조용히 일한다면 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예를 들어 거기서 꿈이 말해졌다는 것, 그것이 더욱 중요했다고 생각해요."
고생하면서도 그렇게 꿈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을까? 그저 "일해, 일해"라는 말을 들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회에 복귀해야 한다, 병을 치료해야 한다는 말을 계속해서 들었다면 나오지 않을 발상이었다. 병에 걸렸어도 상관없고 그대로도 괜찮다. 그러나 거기서 뭔가 할 수 있는 건 없을까? 그것을 생각한 것이 '베델의 집'이라는 장이었고, 거기에서 '베델의 집'의 장사가 시작되었다.

95쪽
어쩌면 그것은 이른바 정상인의 사회에서는 결코 실현할 수 없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일할 수 없는 사람은 자고 있어도 괜찮다는 그런 불평등한 시스템을 일반 사회는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델의 집' 사람들은 알고 있다. 정신장애인 가운데는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병의 증상이 나타나면 일할 수 없게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그것을 인정해 안심하고 일에서 빠져도 된다고 보증해주었을 때,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로웠다. 그 자유와 안심이 마지막에는 장사로 이어졌다. 그 누구도 잘라버리지 않는다는 것과 이익을 낸다는 것은 결코 상반된 주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98쪽
'베델의 집' 회의에서는 사물의 시비를 분명히 가린다기보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중시된다. 그 결과 얻어진 결론이 꼭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거기서 중요한 것은 논의를 '끝까지 했'다는 사실이다. 혹은 끝까지 했다고 모두가 느끼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설령 결론에 반대했다고 해도 논의 과정은 받아들일 수 있다. 

108쪽
이것이 행정 주도의 '사회 복귀 사업'이었다면 사정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아주 번거로운 서류나 심사로, 이것도 하지 마라, 저것도 하지 마라, 이렇게 규제투성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 정신장애인의 작업장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반대 운동이 일어난다. 그래서 계획이 무산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작업장은 그런 반대에 부딪히면, 가족 모임이나 자원봉사자들 중심으로 관청이나 보건소에서 이러저러한 지원을 받아서 주변 주민과 회합을 거듭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설치된다. 그러나 '베델의 집'에는 가족 모임도 자원봉사자 조직도 없었다. 행정적인 보조도 받지 못했다. 지원도 규제도 없는 대신에 장사를 시작할 때 부담해야 하는 위험과 고생을 떠맡기도 했다. 이를테면 '베델의 집' 사람들은 마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고생을 하며 그들과 마찬가지로 살아보자고 한 것이다.

115쪽
병이 있어도, 아니 병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 그대로 살고 있다. 그렇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치장하고 젠체하며 일부러 자신을 꾸미려고 하면 어딘가에서 파탄이 나고 마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것은 마치 모든 겉치장을 없앤 뒤에 나타나는 인간의 원초적 모습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116쪽
눈앞에 있는 사람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그들 안에 있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편안함에 비해 자기 자신이 안고 있는 것은 그 얼마나 하찮고 불안한 균형인가. 그 차이는 대체 뭐란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한 순간, 방문자는 그곳에서 거울에 비추어지듯 자기 자신의 모습과 인생을 보고 만다. 자신은 병자와 만나러 온 것이 아니었나, 그런데 병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119쪽
'베델의 집'에 가면 저 자신이 안심하고 약함과 '있는 그대로'가 허용되는 안정감으로 가득 차는 경우가 있습니다.

121쪽
그래서 마음 사람들도 불러, 그 자리에서 모두가 정신장애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고 배우며 의견을 교환하자고 호소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열린 '마음의 모임'은 무엇보다도 부제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편견과 차별 대환영 집회 - 결코 규탄하지 않습니다"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정신장애에는 으레 편견과 차별이 따르게 마련이잖아요. 그 자리에서는 무슨 말을 하든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주민 여러분들께서는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해 정신장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겠습니까?" 하고 경쾌하고 재치 있게 호소한 집회는 마을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음에 틀림없다. "열다섯 명이라도 온다면 많이 오는 거"라는 고야마 씨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예순 명이나 모이는 대성황이었다.

132쪽
사람들은 '베델의 집' 같은 것을 접했을 때, 흔히 자기 안에서 오랫동안 짊어져온 무거운 짐을 풀어놓고 자신과 화해하게 된다.

139쪽
마쓰모토 히로시 씨도 있다. 정신분열병은 "친구들이 생기는 병"이라는, 자칭 "즐거운 분열병 환자"다. 이런 증상을 본 적이 있는 정신과 의사는 아마 없을 것이다. 헤아리자면 끝이 없다. 그만큼 '베델의 집'에는 정신분열병에 걸리는 것이 "뭔가의 끝"이 아니라, "거기서부터 뭔가 새롭게 시작되는 것"으로 이미지화할 수 있는 역할 모델이 빠짐없이 갖추어져 있다. 물론 그것은 보는 사람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에 달린 문제여서, 무슨 말을 하든 납득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156쪽
누군가 이야기할 때마다 반드시 박수로 끝나는 것에는 "뭐든지 좋으니까 이야기해보자"라든가, "잘 말해주었다, 고맙다"라는 단순하고 명쾌한 의미가 담겨 있다. ...... "그렇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할 수 있어서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상실되어가고 있던 인간관계가 여기서 일단 간신히 이어진 채 유지된다.

170쪽
예를 들어 '베델의 집' 회의는 이런 것이다. 
거기에는 화려한 드라마도 없고, 글로 썼을 때 특출한 이념이나 사상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베델의 집'에서는 이러한 모임이 날이면 날마나 아침이건 낮이건 저녁이건 반복된다.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 주고받는 단속적인 말, 시선의 교차, 대화와 웅성거림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축적되거나 겹쳐 쌓이고 일궈온 것이 있다. '충돌과 만남'이란 이러한 것이며, '약함을 유대로' 산다는 것은 이러한 것이라는 것을 '베델의 집' 사람들은 날마다 확인하고 있다. 그것은 그렇게 해서 확인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희미하게 사라지는 불확실하고 위태로운 인간의 유대인지도 모른다. 아니, 인간의 유대란 원래 그렇게 불확실하고 위태로운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건 '베델의 집' 사람들이 아닐까? 그것은 공생이나 연대라는 말을 쉽게 입에 담으면서 결코 거기에 이르지 못한 정상인들의 집단이 애당초 가질 수 없었던 인간의 유대이고, 하루하루 반복되는 확인 방법이 아닐까?

176쪽
"고생이 가득 차 있"는 '베델의 집' 사람들은 그 고생이 있기 때문에 활기가 있고 표정이 있으며, 살아가는 힘을 배워온 것이다.

177쪽
"...... 살아가는 고생이라든가 살기 힘든 것을 모두 제거해 가벼워지고 편하게 살고 싶다는 그런 결벽증 같은 바람이 질병처럼 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사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든, 얼마나 좋은 환경에 있든 분명히 고민하는 힘을 갖고 있어요. 인간이 그런 존재라는 것을 잊고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베델의 집' 사람들은 결벽적인 사람이 되려고 해도 될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또는 결벽적인 사람이 되려고 해서 병에 걸려버린 사람들이다.  ...... 고민하는 힘이 있기에 병을 고민하고, 병과 함께 살아가는 인생을 고민하고, 살아가는 것의 풍요로움을 발견할 수 있다. 가와무라 선생은 그것이야말로 '고민하는 일의 풍요로움'이라고 말하고, ......"
문제나 고생, 고민을 없애지 않는다.

199쪽
그것이 인생에 대해 포기한 결과가 아니라 납득한 결과라고 한다면, 그는 거기에서 자기 자신과 화해한 것이 될 것이다. ...... "나으면 곤란해요. 병이 나아서 예전처럼 끝까지 견디며 노력이라도 하면 어떻게 해요?" ...... 그것은 병을 이겨내려고 한다거나 극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고집스러움에서 벗어나 병을 자신의 생활 방식 안으로 접어넣으려는 '유연한 관계'의 표현인지도 모른다. 병과의 그러한 새로운 관계 방식이 '베델의 집'이라는 장소 안에는 확실하게 퍼져 있다.

223쪽
무카이야치 씨는 강연회에서 ...... "'베델의 집'은 결코 정신장애인을 이해하고, 정신장애인을 사회로 복귀시키는 데 힘쓰는 것이 아니라 ...... 이른바 '화해의 달인'인 '베델의 집'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안내와 지원, 그리고 도움으로 누구나 자신과 화해를 경험하는 장소이며, 자신을 회복하는 장소입니다. 이것이 '베델의 집'의 주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자기 자신과 화해할 수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과도 화해할 수 있습니다."

226쪽
그대로도 괜찮다는 것은 결코 그 사람을 내버려둔다거나 돌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사람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며, 또한 그 사람의 문제나 말썽거리, 사귀기 힘든 그 사람의 성격 등을 남김없이 모두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그것은 실로 성가신 일이다. 품이 드는 일인 것이다. 정상적인 사회에서라면 그런 일은 절대 불가능하다. 정상적인 사회는, 문제를 막고 말썽의 싹을 잘라버리며 불거져나온 부분을 억누르는 등 모든 것을 관리하기 쉽게 하려고 온갖 수단을 궁리해 쌓아올린다. 지금의 학교, 기업, 지역사회 대부분이 이러한 '건실함'으로 성립되었다. '베델의 집'은 그런 것과는 정반대 길을 걸어왔다. 그것도 20여년을. 그 결과 다른 데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 무리가 생겼고, 복잡한 인간 사회가 만들어졌다.
그 복잡한 사회를 낳은 것은, 사람이 사람을 관리하지 않고 그 누구도 누군가를 지배하지 않는다는 아주 단순한 생활 방식이었다. 
"모두들, 선생이나 정상인도 포함해 모두가 일렬횡대로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더욱 복잡해졌지요." ...... 어수선하긴 하지만 그곳에는 어딘가 안심할 수 있는 느낌이 있다. ...... 모두가 일렬횡대.

262쪽
무엇보다 우선 사람들이 "그대로도 괜찮다"고 말할 때, 오늘날의 정신의학은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정신병이어도 좋다. 병을 치료해주지 않아도 좋다. 그것보다 우리는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고생하며 살아보고 싶다. 그러한 과정에서 회복하고 싶다고 말할 때, 의학은 그에 대한 답을 줄 수 없다. 의학이란 증상을 기술하고 분류해 병명을 붙일 수는 있어도 그 의미를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분열병입니다 하고 말할 수는 있어도,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살피는 것은 의학의 책임 밖의 일인 것이다. 그러나 그 부분을 무시하는 한, 환자는 회복할 수 없다. 정신병은 결국 인간관계의 문제라는 부분이 상상 이상으로 크기 때문이다.

263쪽
정상적인 정신 상태와 광기를 엄격히 구별하고, 이성의 언어만 존재하는 데서 병과 마주한다고 해도, 아마 치료는 부분적인 성과밖에 올릴 수 없을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아무리 신통한 약을 개발해도 이 병이 완치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깊이 파고 들어가보면 정신병극히 인간적인 병이기 때문이다. 그 병을 없애려고 한다면 인간성 자체의 변경이라는, 있을 수 없는 본말전도를 불러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베델의 집'의 사람들이 이룩한 것은 '광기와의 교류'였다. 광기를 제압하거나 없애는 것을 포기한 끝에 이룬 전략으로서, 그들은 광기와 함께 살고 그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말을 걸고, 그 생활 방식에 어떤 때는 공명하고 또 어떤 때는 빠져나가면서, 결코 광기를 적으로 삼아 티 없이 맑은 세계에 대치시키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 비로소 정신병은 인간의 얼굴을 한 것이 아닐까? 정신병은 다른 세계에 있으면서 이성을 미치게 하는 지긋지긋한 병리가 아니라, 애초에 인간 존재의 일부라고 생각함으로써 그 본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265쪽
정신장애인이란 누구보다도 정밀도가 높은 센서를 가진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한편 정상인이라는 사람들은 그 센서의 감도가 낮은 것일까? 그 때문에 분발하고 마는 것일까? 아니면 감도가 낮아 인간관계를 애매하게 하고 얼버무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신장애'라는 꺼림칙한 병에는 인간 자신에 대한 심오한 메시지가 숨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272쪽
무카이야치 이쿠요시라는 사회복지사가 계속 관여하면서 '베델의 집'은 그 바탕을 만들고, 이념이 될 만한 사고방식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282쪽
만약 '베델의 집'이 절망이 아니라 희망에서 시작되었다면, 그 길은 전혀 다른 길이 되었을 것이다. ...... 하지만 절망에서 시작된 접근은 정반대 길을 걸으려고 한다. ...... 절망하는 것이 원조를 받고, 병이라는 것이 긍정되며, 그대로도 괜찮다는 생활 방식, 또는 그대로 있을 수박에 없다는 생활 방식이 제창된다. 신기하게 아니면 당연하게 그렇게 되는 것일까, 그 생활 방식은 너무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그 밖의 다른 어떤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의 좋은 표정, 깊은 안도감, 생각지도 못한 풍요로움을 낳고 있다.


[네이버 책]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 사이토 미치오

 

지금이대로도 괜찮아

유쾌한 정신장애인들의 공동체 '베델의 집' 이야기. 이 책은 일본에서 정신장애인 공동체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보여준 '베델의 집' 사람들의 회사 창업 성공기를 담고 있다.정신병, 알코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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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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