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 정희진


14쪽
그렇다. 품위는 약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약자에게는 폭력이라는 자원이 없다. 이런 세상에서 나의 무기는 나에겐 '있되', '적'에겐 없는 것, 바로 글쓰기다. '적들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사고방식, 사회적 약자만 접근 가능한 대안적 사고, 새로운 글쓰기 방식, 저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내게만 보이는 세계를 드러내는 것. 내가 비록 능력이 부족하고 소심해서 주어진 지면조차 감당 못하는 일이 다반사이지만, 내 억울함을 한 번 더 생각하고 나보다 더 억울한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러면서 세상을 배워야 한다. 그것이 '품위 있게' 싸우는 방법글쓰기다.

16쪽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쓰려면, 나부터 '나쁜' 사람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과정나의 세계관, 인간관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나를 검열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33쪽
미디어란 무엇인가? 몸의 확장이다. ...... 미디어가 발달할수록, 즉 몸이 확장될수록 타인과 친밀해지는 대신 나는 누구인지 모르게 된다. 몸이 비대해졌기 때문이다. ...... 거대한 몸(미디어)이 타인의 노력과 진실을 간단히 앗아가고 있다.

38쪽
유신 정권이 기독교와 합작해 여호와의 증인을 이단으로 몰아 그들의 병역/집총 거부를 가혹하게 탄압한 부분이 빠진 점은 아쉽다.

43쪽
삶은 본질적으로 비극이다. ...... 슬픔과 우울은 소비의 적이다. 삶의 비극성에 대한 망각과 무관심이 우리를 자본주의를 향한 환호로 이끈다.

68쪽
호모포비아는 '자연의 섭리'도 '하느님의 말씀'도 아니다. 미국의 신학자 대니얼 헬미니악 신부의 <성서가 말하는 동성애>에 따르면, 성서는 인간의 섹슈얼리티에 어떤 단정도 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룻기'의 나오미와 룻의 이야기는 동성 간의 사랑을 긍정적으로 다룬 이야기로 유명하다. 

 

68쪽

노무현 정부가 사학의 투명성과 공공성을 위해 교계의 '돈줄'을 통제하는 사학 개혁을 시도하자, 이때부터 개신교는 본격적으로 동성애를 문제 삼기 시작했다. ...... '적'은 내부 비리를 은폐하고 결속시킨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해야 한다. 개신교는 동성애자를 '좋아하고'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75쪽
매일매일이 괴로운 뉴스다. 타락이 공기와 같고 언어도단이 일상이다. 욕망에 한계가 없어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부럽기까지 한' 이들.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사회가 그들 편이기 때문이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에게 '그만하라'고 한다. 천지가 그런 사람이니 '너만 다친다'는 것이다.

84쪽
연대(네트워킹)과 연줄의 차이는 무엇인가. ...... 연대와 연줄의 차이는 새로움에 있다. 기존의 관계를 활용하는가, 의식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가. 이것이 차이다.

90쪽
글을 쓴다는 것은 아프고 속상한 마음을 형상화하는 행위다. 이른바 발분저서! 분한 일을 당하고 나서 그것을 글로써 풀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연암이 주장한 글 짓는 목적이다.

93쪽
절망은 바라는 것을 끊은 상태, 희망은 뭔가 바라는 상태. 어느 쪽이 더 '희망적'인가? 

95쪽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인간은 무엇인가의 볼모가 된다.

104쪽
공부의 필요와 의미는 스스로 정하는 권리다. ...... 그러나 주부나 장애인이 공부하고자 할 때는 태도가 다르다. 이들은 사람이라기보다 '역할'(안마, 가사노동......)로 간주되기 때문에 그들 자신을 위하는 일은 사회에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간은 사회의 것이다.

107쪽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백인 남성의 인식이 쉽고 투명해 보이는 것은 실제로 쉬워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보편적인 언어로 군림해 왔기 때문이다. ...... 시인들이 그토록 외치지 않았던가. 꽃은 꽃이 아니라 꽃으로 간주될 뿐이라고.

107쪽
왜 어떤 사람의 말은 '사상'이고 '잠언'인데, 노인이나 원주민이 하는 말은 '지혜'라고 할까.

112쪽
사람이 싫어지면 삶은 끝이다.

114쪽
오랜 시간 찾아 헤매던 말이 정확하게 표현된 글을 읽을 때 살아 있는 기쁨을 느낀다.

115쪽
지식은 중간에서 나온다. 삶이 너무 안락하면 글을 쓸 이유가 없고 너무 고단하면 여력이 없다.

116쪽
거리 두기와 동일시는 자신을 이동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에서 동일하다. 반면, 자신을 변화시켜야만 가능한 공감과 연대는 어렵다.

128쪽
수전 손태그는 자신의 암이 다른 것으로 은유될 때, 사회적 낙인과 실제 고통이 무시되는 현실을 썼다.

129쪽
가정 폭력은 '험한 세상'에 나갈 수 없다는 두려움을 볼모로 작동한다.

132쪽
내가 서른 살에 단체 활동을 그만둔 이유는, 사람이 하는 일과 사람의 질은 반비례할 수도 있다는 현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35쪽
생각은 몸의 배신자. 늘 타인의 시선과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머리(희망 사항)만 '앞서'간다. 오히려, 사는 대로 생각해야 한다.

139쪽
평화?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 평화는 인간의 심장이 꺼질 때에야 찾아온다. 모든 이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모든 이의 평화도 가능하지 않다. 전통적인 국제정치학에서 전쟁과 평화는 같은 말이다. ...... 평화는 상태가 아니라 관계다. 아프고, 슬프고, 외롭고, '버림받은'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는 순간의 위로. 나는 그런 평화를 기원하고 믿는다. 이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평화다.

146쪽
나는 극복하는 사람이 정상으로 간주되는 사회가 더 끔찍하다.

148쪽
고통받는 사람에게 감정 이입하는 경청은 나도 당사자가 되는 '엄청난' 일이다. 감정 이입이란 자신의 테두리 밖으로 나와서 여행하는 과정, 자신의 범위를 확장하는 일이다. 감정 이입을 두려워한다면 성장할 수 없다.

160쪽
통증은 가장 소통이 어려운 인간관계의 영역이다. 

160쪽
이를테면 소설가 C. S. 루이스의 말 "지금 고통은 그때 행복의 일부이다(The pain now is part of the happiness then)."

162쪽
인간의 의미 중독자다. '자연'이라면 순리다. ...... 아프지 않기를 바라지 말고 아픈 사람을 루저로 대하지 말자. 어차피 우리는 자연에서 다시 만난다.

197쪽
상처 입히는 기쁨은 경쟁, 승리, 셀럽 숭배 시대의 인간관계 방식이다. 전통적인 의미의 기쁨인 자기 극복이 아니라 성공을 향한 맹렬한 욕망에 방해되는 모든 사회적 연계를 토막 내는 기쁨이다. 이 즐거움은 주도면밀하지만 보편적 생활 양식으로 인식되어 자연스럽게 보인다. 따라서 자각이 없다. 자각이 없기 때문에 수치심 없는 삶이 쏟아지는 것이다.

210쪽
'단식 투쟁'은 동어 반복이다. 먹고 자는 걱정을 극복하라는 부처의 말씀에 따르면 단식은 극복도 걷어찬, 그 자체로 투쟁이다.

213쪽
한국인들은 다른 약은 남용하면서 유독 신경정신과 처방전만은 '의지로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214쪽
체제는 적응형 인간을 정상으로 본다.

215쪽
한국 사회가 싫어하는 인간형은 진보나 여성주의 이런 쪽(?)이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222쪽

환상사지, 헛팔다리, 유령사지, 환상지. ...... 유령 팔다리 현상의 의미는 다양하다. 몸은 실체가 아니라 기억, 이미지, 희망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잃어버린 사지에 대한 몸 스스로의 애도이다. 없는 부위의 극심한 통증만큼 몸과 마음의 분리가 얼마나 허구인가를 증거하는 현상도 없다.

227쪽
자기 뜻은 분노가 아니라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27쪽
권력은 다수의 억울한 마음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멘토, 치유자를 자처하는 자들을 불러(?) 고결한 가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비열한 폭력인 용서와 화해 이데올로기로 약자의 상처를 짓이기고 미성숙한 인간이라는 죄의식과 자책까지 떠넘긴다. 그래서 우아함은 가진 자의 성품이요, 흥분과 분노는 약자의 행패가 되었다.

232쪽
아무리 위대한 사상도 인간의 실행에 불과하다.

235쪽
때린 사람은 우는 사람이 불편하기 마련이다. 가해자의 논리는 "(나는 가해자가 아닌데) 네가 우니까 내가 가해자가 된 것 같아 기분 나쁘다. 고로 네가 가해자."다.


[네이버 책]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 정희진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사회적 약자가 이 세상과‘품위 있게’ 싸우는 방법, 글쓰기죄의식 없이 누가 더 뻔뻔한가를 경쟁하고, ‘가해자’의 마음이 평화로운 사회.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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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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