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의 말(파리에서 밥을 짓다 글을 지었다) - 목수정



87쪽
누군가 제 손을 써서 마늘을 다듬고, 제 손에 빨간 고춧가루를 묻히며 절인 배추를 버무리지 않는 한, 김치라는 음식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 누군가 침대 시트를 부지런히 갈아내지 않는 한, 보송한 침구 위에서 늘 잠들 수 없다는 사실. 외투 속 주머니에 콩알만 한 구멍이 생기면 바늘에 실을 꿰어 구멍을 메워야만 외투가 제구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살림은 낱낱이 깨닫게 해준다. 
밥이 하기 싫으면 전화로 주문을 하거나 나가 사 먹으면 되겠지만 그 또한 나 대신 누군가의 손이 움직여 만들어낸 음식이며 음식의 재료 또한 농부의 손에서 일궈졌고, 누군가 배달이라는 노동을 통해 내게 전달되어질 때 내 뱃속으로 들어갈 생명의 원천인 한 끼가 완성된다. 1차적인 인간의 노동 없이 세상은 결코 형성되지 않을 거란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그 1차 노동이 나로부터 점점 멀어질 때 우린 괴물이 되어갈 거란 걸 직감한다.

121쪽
두 사람 사이에서 한 쪽이 주로 돈을, 한쪽은 주로 노동력이나 감정을 제공하는 관계가 되면 건강한 분업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그 관계 속에는 필연적으로 지배와 종속의 속성이 자리 잡게 되기 때문이다. (......) 달달할 수 있는 지배와 종속의 관계는 없다는 사실. 돈을 받는 쪽이, 하는 일이 아무리 위대해도 그것을 주는 사람의 권력 하에 종속된다는 사실. 그 뼈아픈 현실에 부딪혀 좌절하지 않으려면 서로가 재정적 책임의 영역, 가사노동의 영역 안에서의 담당 구역을 나눠 역할을 함께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남자들을 부엌에 끌어들이고 쓰레기 처리를 전담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성들도 가정에 조금 보태는 수준을 넘어 제가 온전히 담당하는 재정의 한 영역이 있어야 온전히 평등한 관계가 만들어진다.

201쪽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가진 최고의 미덕은 호기심과 생명체에 대한 애정이다. 그는 아무 편견 없이 대상을 향해 다가가, 이해하고자 스케치한다. 겉뿐 아니라 내면까지. 그에게 그림은 대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호기심을 갖고 관찰하고,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원리를 파악한다. 그렇게 하여 파악한 식물들, 동물들에 대한 이해는 그의 예술과 건축, 발명품, 의학 지식과 요리에 모두 공통으로 적용된다. 그에게 세상은 온전히 하나로 연결된 것이었다.
(......) 
그의 과학적 지식과 인문주의자로서의 자각, 예술적 감각은 서로의 영역에 경계를 긋지 않고 통섭의 세계에서 만난다. 그에겐 요리 역시 과학이고, 의학이었으며, 예술이었다. 혼외자로 태어나 동성애자, 왼손잡이, 채식주의자로 살았고, 동물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들과 인간에게 같은 의미를 부여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철저하게 소수자의 정체성을 지녔으나 당대에서뿐 아니라 사후에도 오랫동안 인류에게 사랑받아온 인간이다.

217쪽
자폐증은 미국에서 점점 더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질병으로, 이 질병을 앓는 아이들의 수는 1960~1970년대에 5만 명당 1명에서 2014년엔 50명당 1명으로 늘었다. 학자들의 예측에 따르면 지금의 속도가 지속될 경우, 이 수치는 2050년에는 12명당 1명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 프랑스의 저널리스트, 마리-모니크 로뱅의 저서 <에코 사이드>(시대의창, 2020) 중에서 가장 몸이 후들거렸던 대목이다.
(......) 이 단체의 성원들은 식품으로 인해 발생하는 뮨제의 주범으로 유전자 조작 식품과 글리포세이트를 지목하고 있다.

 

 

[네이버 책] 밥상의 말 - 목수정

 

밥상의 말

냉철한 이성과 통찰력 있는 사고로, 한국과 파리의 두 밥상을 넘나들며 그 속에 들어앉은 삶의 작동을 들여다본 목수정이 벼린, 동서양을 아우르는 밥상에 관한 생각들. 밥 한 끼 속에 담긴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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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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