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생각 - 개똥철학 - 쏘리와 땡큐
'미안하다'에 회의적이라고 해서 사과를 할 필요가 없다거나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미안하다는 한마디로 가볍게 넘겨 버리려는 안이한 생각을 버리라는 얘기다. 중한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에 맞는 대가를 치룰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잘못에 대한 대가는 섭리상 마땅히 치르게 될 테지만, A에게 잘못했다고 해서 A로부터 딱 그만큼의 해를 입는 건 아니다. 당연히 당시 해를 끼친 A에게는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
그때 쓸 수 있는 말이 '잘못했다'다. 똑같이 사과의 표현이지만 좀 더 진중하고 진솔한 어감이다. 본인의 잘못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뜻일 뿐 아니라, 다시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고의적이든 우발적이든 모든 잘못에 두루 쓰이는 '미안하다'에 비해, 어느 정도 고의성이 있는 경우에만 쓰인다는 점에서 화자의 결연한 의지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이 '미안하다면 다야?'보다 '잘못했다면 다야?'라는 말이 덜 익숙한 이유, 내가 '미안하다'보다 '잘못했다'를 더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황을 가정해 보자. 김 군이 시험을 봤는데 부모가 기대했던 결과에 영 못 미친다. 최선을 다해 공부했기 때문에 본인도 내심 높은 점수를 기대한 시험이었다. 이유는 차차 알아봐야겠지만, 일단 부모에게 결과를 알려야 한다. 이때 김 군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당연히 잘못했다고 할 필요는 없다.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에, 과정상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분명 그는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미안하다(죄송하다)고는 할 수 있다. 부모가 만족할 만한 성적을 받지 못해 실망시켰으니 그 점에 대해서만큼은 사과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상황이다. 김 군이 시험을 봤는데 부모가 기대했던 결과에 영 못 미친다. 사실 예상했던 일이다. 그동안 도서관, 학원에서 공부한다고 속이고는 PC방에서 게임에 빠져 있었다. 부모가 학원비로 쥐어 준 돈은 죄 PC방 사장님 주머니로 들어갔다. 이때 김 군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당연히 잘못했다고 싹싹 빌어야 한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그날부로 매일같이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죄송하다'는 말은 아예 안 꺼내는 게 낫다.
위의 두 가지 상황을 통해 '미안하다'와 '잘못했다'의 분명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잘못했다'는 결과보다 과정에, 우발보다 고의에 더 무게를 둔 표현이다. '미안하다'는 그 반대. 따라서 '미안하다'를 남발하는 사람일수록 신뢰할 만하지 못하다, 자주 오가는 관계 혹은 조직일수록 진중함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미안하다'를 양심이나 친절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예의나 격식과는 어느 정도 관련이 있지만, 양심이나 친절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내 개똥철학은 가장 먼저 남편에게 전해진다. '미안하다'에 대해서도 이미 세뇌시켰다. 이후 우리 사이에선 그 말이 거의 오가지 않는다. 단순히 능청스레 농담을 주고받을 때나 쓰는 말이다. 남은 고기 한 점을 홀랑 집어먹으면서 '미안!', 동시에 화장실로 달려가면서 변기에 먼저 앉는 임자가 '쏘리!' 이런 식이다. 고의로 저지르는 잘못도 없고 상대가 꺼리는 걸 알면서 반복하는 짓도 없다면, 미안하다는 말은 가까운 사이에서 거의 쓸 일이 없다.
'쏘리' 대신 우리가 자주 주고받는 말은 '땡큐'다. 물을 떠다 줘도 '땡큐', 얘길 들어 줘도 '땡큐', 약을 챙겨 줘도 '땡큐'다. 사실 심심하면 '땡큐'다. 가만히 있다가도 고맙다고 말한다. 같이 살아 줘서, 결혼해 줘서, 태어나 줘서, 고마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안하다'가 불미스런 일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라면, '고맙다'는 훈훈한 일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다. '고맙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도 감사할 줄 알기 때문에 당연히 흐뭇하고 즐거울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행복한 사람인 것이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에게 득이 되는 일을 자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훈훈하고 바람직한 관계라고 볼 수 있다.
감사할 일이 수두룩한 삶, 하루하루가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싶다면, 우주의 섭리를 떠올리고 사람과 상황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 된다. 그러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느낄 수 있다. 정 안되면 다른 방법이 하나 더 있다. '감사합니다', '고맙다', '땡큐'를 입에 달고 사는 것이다. 말에는 묘한 힘이 있다. 저주를 퍼부으면 일이 틀어지고, 칭찬을 계속하면 승승장구한다. 수시로 고맙다는 말을 입에 올리면 어느새 생각은 긍정적으로, 마음은 훈훈하게 바뀌어 있을 것이다.
미친 사람처럼 혼잣말로 중얼거리라는 게 아니라, 웬만한 경우엔 감사 인사로 통일하란 얘기다. 택시에서 내리면서 기사에게,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원에게, 주문한 음식을 내온 직원에게 '감사합니다' 를 연발해 보자. 밥을 차려 준 마누라에게, 오늘도 돈 버느라 고생하고 들어온 남편에게, 건강하게 자라 준 아이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 보자. 이를 의식적으로 반복하다 보면, 긍정적인 마인드는 금세 퍼질 뿐 아니라 중독성도 강해서 스스로는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사소한 일에도 서로에게 고마워하는 훈훈한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종교인들이 심적으로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이유도 신에게 늘 감사하기 때문이다. '섭리교'를 신앙처럼 믿고 따르는 나는 신이 아닌 '힘'에 대해 감사한다. 우주의 섭리가 세상을 다스리는 '힘', 일을 돌아가게 하는 '원리'에 감사하는 것이다. 감사할 대상이 늘어난다는 점에서 섭리교는 무교보다 가치 있다. 가까스로 교통사고를 면해서, 사지가 멀쩡해서, 밥이 맛있어서, 스마트폰이 있어서, 에어컨이 있어서, 따뜻한 물이 나와서 등등 매사가 감사할 거리 투성이다. 감사할 대상은 하나가 추가되지만 사유는 수만 가지로 늘어난다. 생각해 보면 거창한 행운보다 일상적인 것들에서 더 많은 감사를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인식하지 않을 뿐이지 기본적인 것들이야말로 정말 소중하고 필수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행복계발 시트콤 MONZ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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