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생각 - 개똥철학 - 오락과 철학

 

즐겨 하는 인터넷 게임이 있다. '사천성'이다. 팠다 하면 한 우물만 파는 성미라 즐기는 오락이라곤 사천성이 유일하다. 물론 킬링 타임용 취미지만, 막상 오락을 하다 보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게임의 특성상 대여섯 명이 한 방에서 대결을 벌이는 시스템인지라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사회의 구조 및 체계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치는 것이다. 오락에서 철학을 배우는 셈이다. 사실 그 재미가 반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게임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겠다. 내가 이용하는 사이트는 게이머들을 열 개의 등급으로 나눈다. 그리고 각 등급에 해당하는 사람들만 입장할 수 있는 채널 10, 등급에 관계없이 즐길 수 있는 채널 1개를 두고 있다. 방식은 단순하다. '', '', '' 자 모양으로 연결되는 두 개의 패를 연속 클릭해서 패를 전부 없애면 승. 누군가가 가장 먼저 모든 패를 제거하면 그 이후 10초만 더 주어지기 때문에, 제한 시간이 있긴 하지만 별 의미는 없다. 1등이 한 판을 마치는 시간이 곧 제한 시간인 셈이다. 등수는 그때까지 남아 있는 패 수, 즉 패를 없애는 속도에 따라 갈린다.

 

운동경기에서 체급을 나누듯 게임에도 등급이 있다. 비슷한 수준의 실력을 가진 사람들끼리 겨루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사천성은 1등에서 6등까지, 그러니까 꼴등을 해도 가산점이 주어진다. 그 점수만 다를 뿐, 일단 판에 참여만 하면 점수가 올라간다. 승률이 아닌 점수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게임을 많이 하면 할수록 등급이 높아진다. 정확히 말해서 사천성은 실력이 비슷한 사람들이 아닌, 게임에 참여한 횟수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맞붙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초보자와 경력자보다 같은 등급끼리가 실력이 비슷할 확률이 높기는 하다. 하지만 같은 등급 중에서도 실력의 차이는 분명 있다. 여기서 여러 가지 일화가 생긴다. 한 사람이 계속해서 1등을 할 때가 있다. 결과를 보면, 전체 여섯 명 중 1등을 제외한 다섯은 실력이 고만고만하다. 전체 패 수가 100장이라고 할 때 1등이 100장을 다 없애는 동안 다섯은 끽해야 50, 절반밖에 못 없앴다. 1등의 실력이 나머지 다섯의 두 배 수준인 것이다.

 

한 번쯤은 그럴 수 있다. 도중에 입장해도 얼마든지 그때부터 게임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중반에 시작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차례가 있는 게임이 아니어서 계속해서 자리에 붙어 있지 않아도 된다. 해서 누군가 중간에 자리를 떴을 수도 있다. 게다가 집중할 필요도 없다. 딴짓과 게임을 동시에 하느라 하다 말다 하는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다. 두 판을 더 두고본다. 연이어 세 판. 같은 놈이 계속해서 독주하고 있다. 나는 '추방 투표'를 신청한다. 1등을 제외하고는 다섯 명이 매 게임을 반밖에 못하고 있으니, 1등만 나가면 다섯이서 더 재미나게 게임을 즐길 수 있어서다. 보통 99%는 내쫓긴다. 다들 같은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한 번은 이런 코멘트를 남긴 이가 있었다. '추방이 웬 말이냐, 유치하게! 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는 쏜살같이 도망쳐 버렸다. '유치하다'의 말뜻을 모르는, 진정 유치한 놈이었다. 내가 1등이어도 당연히 똑같이 한다. 그 방에서 나란 존재는 게임의 진행을 방해하는 것밖에 안 되기 때문에 알아서 퇴장한다. 당연하고 정당한 퇴장이다. 

 

여섯 명의 사람들이 그저 심심풀이로 모여 있는 방이지만 꼭 실제 사회를 연상케 한다. 관리자가 등급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경쟁하도록 체계를 잡아 놓은 것처럼, 정부가 교육, 복지, 세금 등으로 강자의 횡포를 막고 약자의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법과 정책을 세운다. 하지만 시스템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여전히 불공평한 처사가 빈번하다. 영 대책이 없는 건 아니다. 구성원들이 약자를 배려하는 강자의 양심, 대결이란 공정해야 한다는 올바른 가치관만 가지고 있다면 얼마든지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다수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강자는 소수, 약자는 다수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내가 연이어 앞도적인 차이로 1등을 차지해도 스스로 퇴장하는 건 사실 양심 때문만은 아니다. 재미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수준이 현저히 다른 사람들과 하는 게임은 실력이 막상막하인 사람들과 하는 게임보다 훨씬 재미가 덜하다. 대결이란 자고로 엎치락뒤치락하는 맛이 있어야 한다. 근소한 차이로 승패가 갈릴 때, 순간순간 순위가 엇갈리는 접전을 벌일 때 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혼자 계속해서 앞서나가는 게임은 재미도 없고 스릴도 없다. 일등이든 꼴등이든 마찬가지다. 너 나 할 것 없이 재미대가리도 없는 게임. 굳이 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

 

다 같이 재미없는 인생도 굳이 살 필요가 없다. 불쌍한 건 약자만이 아니다. 강자에게 약자를 배려하라고 요구하는 이유는 약자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강자 본인을 위해서다. 강자와 약자는 행복, 불행과 전혀 관련이 없다.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렇다. 무언가를 빼앗기면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지만, 빼앗은 쪽은 무조건 불행하다. '때린 놈은 다릴 못 뻗고 자도 맞은 놈은 다릴 뻗고 잔다'는 속담이 있다. 가진 자가 행복해지는 방법은 간단하다. 나누면 된다. 봉사나 기부를 멈출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로부터 얻는 기쁨이 실로 대단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다는 걸 모르고 하나라도 더 가지면 행복해질 거라 착각하는 강자들을 보면 안타깝고 불쌍하기 짝이 없다. 약자의 등골을 빼먹지 못해 안달하는 대신 베푸는 기쁨을 깨닫는다면, 강자든 약자든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을 텐데 말이다.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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