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생각 - 모야모야 2
나는 극단적인 데서 쾌감을 얻는다. 단순하고 명쾌한 것이 더 좋고, 무엇이든 치열하게 해야 직성이 풀린다. 울거나 웃을 때, 싸울 때, 먹을 때, 오락할 때, 일할 때, 심지어 잠잘 때까지도 당시의 감정이나 하고 있는 무언가에 충실한다. 감정이 일면 이는 대로 느끼고 표현한다. 굳이 냉정을 되찾으려고 애쓰거나 아닌 척 가장하지 않는다. 잘 때는 업어 가도 모르게 자고, 잠에서 깨면 곧바로 하루를 시작한다. 다이어트는 몇 달에 걸쳐 단계적으로 꾸준히 하는 것보다 일주일을 혹독하게 하는 쪽을 선호한다. 주 40시간 근무에 일주일 휴가보다 주 60시간 근무에 한 달 휴가가 더 좋다.
이토록 중간을 모르는 인간이 어중간한 병에 걸리고 말았다. 단순하고 명쾌한 걸 좋아하는 내가 막연한 가능성들로 똘똘 뭉친 놈, 모야모야를 만난 것이다. 이렇다 할 통계치도, 확률도 없다. 증상은 천차만별. 어떤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지는 닥쳐 봐야 안다. 뇌출혈, 반신불수 등 무시무시한 얘기가 동원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가능성이다. 평소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다. 불편할 것도 없다. 가끔 일어나는 손발 마비는 30분이면 회복된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높은 가능성을 안고 살아 갈 뿐이다.
사실 가능성이란 누구에게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심장마비로 운명을 달리할 수도 있고, 사고로 신체 일부를 못 쓰게 될 수도 있다. 뇌경색, 뇌출혈, 마비, 간질 등 모야모야로 인한 증상도 다 마찬가지다. 건강을 자부하는 사람에게도 가능성은 존재한다. 일어나지 않을 거라 가정할 뿐이다. 내가 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저 덮어놓고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것. 늘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 때때로 발생하는 두통, 팔다리 마비 증세만으로도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다.
내일 당장 한쪽 팔다리가 마비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오늘이나마 멀쩡한 사지가 꽤 감사해진다. 하루하루, 순간순간이 소중하다. 그전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그땐 현재보다 미래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내일을 위해서라면 오늘쯤은 희생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 머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게 된 이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여전히 미래를 중시하지만, 오늘 역시 내일을 위한 희생양이 아닌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모야모야가 내게 준 선물이다.
지금의 생각에 이르기까지 내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나는 도인이 아니다. 모든 걸 감사히 받아들이는 독실한 신자도 아니다. 낙천적이거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타고나지도 않았다. 다만 '양면성'과 '다양성'을 뼛속 깊이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한때는 영 나와 궁합이 맞지 않는 병이란 생각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국물이란 자고로 맵고 짜고 뜨거워야 제맛이다. 짬뽕, 라면, 쌀국수를 즐겨 먹는데, 이런 음식을 먹을 때면 마비가 도지곤 한다. 화가 나면 분에 못 이겨 펑펑 울거나 어떻게든 매듭을 짓기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끝을 보는데, 이러고 나면 손발이 말을 듣지 않는다. '서른 살에 연봉 일억 원!'을 목표로 삼을 만큼 치열하게 일에 매달려야 직성이 풀리는데, 체력이 달려도 여지없이 증세가 나타난다. 사사건건 태클이 들어오는 것이다.
뭐든지 적당히, 조심조심하라고 경고하는 모야모야란 놈에게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도무지 뭘 해 보지를 못하게 자꾸만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지도 말라, 마음껏 먹지도 말라, 격한 감정에 휩싸이지도 말라며 시도 때도 없이 적신호를 울려 댄다. 목욕탕, 찜질방도 출입 금지다. 살 날이 6개월, 1년으로 정해진 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하지 말고 침대에 드러누워 있으란 말인가? 불만은 극에 달했다. 도대체 살라는 건가, 말라는 건가!
타고난 성향은 바뀌지 않는 법이다. 놈이 원하는 삶의 방식은 영 내 성미에 맞지 않는다. 그렇게 사는 건 의미가 없다. 병에 못 이겨 의미 없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감정을 추스리고 분석에 들어갔다. 놈과 내가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서부터 다시 시작했다. 가능성 덩어리인 모야모야. 놈과 나는 정말 불협화음일까? 신은 믿지 않지만, 세상의 섭리를 믿는다. 모든 일에는 나쁜 점이 있으면 동시에 좋은 점도 있다. 놈에게도 분명 긍정적인 면이 있을 것이다. 놈의 이로운 구석을 찾아내는 게 관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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