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생각 - 모야모야 4

 

처음부터 끝까지 적당히 흥겨운 노래보다 분명한 클라이맥스가 존재하는 노래가 더 좋다. 꾸준히 잔잔한 재미와 감동을 주는 책보다 조용한 서막으로 절정의 순간을 살리고 이내 막을 내리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내 취향에 맞는다. 기쁨도 슬픔도 없는 무난, 무탈한 삶보다 크고 작은 기쁨과 슬픔이 어우러진 삶이 더 살맛 나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모야모야는 일상에서의 긴장감을 고조시켜 더욱 나를 살맛 나게 만들어 준 기발한 놈이기도 하다.

 

내가 가진 굳은 신념 중 하나는 '본인의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일만 택한다면 누구나 행복한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내 생활에 그대로 반영된다. 서른 살에 연봉 일억 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는 현실 감각 없다는 핀찬을 부르기도 했지만, 사실 전혀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었다. 25살에 입사한 회사는 배당이라는 시스템으로 5~10% 가량의 직원에게 연봉 1억 원을 지급하고 있었다. 50명 내외의 직원 중 대표를 제외하면 모두 20~30. 회사 설립이 1998, 내가 입사한 해가 2004년이었으니까 당시 최장 경력자도 끽해야 6년이었다. 나라고 5% 안에 못 들 이유가 없어 보였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꿈이지만, 실제 꿈을 이룰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결과는 5천에서 그쳤다. 모야모야 때문은 아니다. 입사한 지 1년 만에 마비 증세와 수술로 두어 달을 쉬어야 하긴 했지만, 이내 복귀했고 일에도 큰 지장이 없었다. 그렇게 18개월을 더 일했고, 여름 휴가 기간에 결혼식을 올렸다. 휴가가 끝나고 3개월쯤 지났을 때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 사지가 마비될지, 뇌출혈로 거동조차 힘들어질지 모르는데 연봉 1억이 다 무슨 소용인가! 멀쩡할 때 내 인생의 동반자인 그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다!' 목표를 수정했다. 모야모야 덕분에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연봉 1억 원이란 목표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3개월 뒤, 2007 12 31일부로 나는 회사를 그만뒀다.

 

빡세게 일하고 마음껏 즐기자는 생각에서 택한 일이었다. 연봉 1억 원이 가능했던 일인 만큼 근무 조건도 남달랐다. 추석, 설 당일과 일요일, 한 달에 한 번 주어지는 월차를 제외하고는 휴일이 없다. 대신 여름 휴가가 20일이지만, 평소에는 남편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정해진 근무 시간만 11시간인 데다가 그가 요리를 시작하기 전이기 때문에 시간대도 맞지 않았다. 우리가 집에 같이 있는 시간은 하루에 고작 예닐곱 시간. 잘 때뿐이었다. 연봉보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 가치 있고 시급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극단적인 발상이 스쳤다. 같이 회사를 그만두고 1 365일을 붙어 있자는 계획이었다. 결국 2008 2, 그와 나는 백수 부부가 되었다.

 

번 돈을 단숨에 써 버리면 계획에 차질이 생긴다. 365, 24시간을 붙어 있을 수 없게 된다.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함께 누리자는 본래 취지에 맞게, 계획도 목적지도 없이 소박한 여행을 시작했다. 그때그때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을 찾아 행선지를 정하며 전국을 누비기로 한 것이다. 수목원에서 퍼붓는 비를 쫄딱 맞으며 좋아서 방방 뛰기도 하고, 대구까지 가서는 모텔에 방을 잡아 놓고 마치 그곳에 사는 사람인 양 천연덕스럽게 돼지갈비를 뜯기도 했다. 담양 시장에서 비빔국수에 막걸리를 얼큰하게 걸치고, 둑가에서 배낭을 베개 삼아 낮잠을 자기도 했다. 별다른 이벤트나 구경거리가 필요 없었다. 둘이 붙어 있는 것 자체가 소중한 경험이자 추억이었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특별하고 유쾌했다.

 

3년간의 짧은 직장 생활이었지만, 단순하기 짝이 없는 성격 탓에 나는 한 치의 여유도 없이 일에만 매달렸다. 일요일엔 백화점에 시장 조사를 나가고, 월차 땐 회사 직영인 다른 매장을 돌며 디스플레이를 연구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래야 마음이 편해서였다. 날씨 좋은 공휴일에 일해 본 사람들은 안다. 남들 다 노는 날, 일터에 처박혀 있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거창하고 화려한 관광보다 근처 공원에서 돗자리 펴고 먹는 김밥이 더 사무치게 그립다. 그토록 평범한 여행을 이토록 기분 좋게 추억할 수 있는 데에는 빡센 직장 생활과 완벽한 남편, 그리고 모야모야 병의 공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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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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