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생각 - 모야모야 3

 

시간이 흐르고 반복되는 증상을 경험하면서 몇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오래 살거나 뇌출혈의 위험성을 최대한 낮추는 걸 인생의 목표로 삼을 순 없다. 따라서 나는 불쑥불쑥 마비가 일어나도 앞으로도 쭉 나답게, 내 방식대로 살아 가야 한다. 사고의 가능성에 벌벌 떨면서 아무것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사느니, 내일 곧 비극이 벌어진다고 해도 오늘 하루 만끽하는 편이 낫다. 어차피 조심해도 가능성은 도사리고 있다. 직성이 풀릴 만큼 무언가에 몰두하면서, 맛있는 걸 마음껏 먹으면서, 울고 싶을 땐 분이 풀릴 때까지 울면서, 그렇게 순간순간을 만끽하기로 마음 먹었다.

 

내 본래 성향을 스스로 존중하고 방식을 고수했더니, 놈의 이로운 구석이 보였다. 내일 못지 않게 오늘도 소중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오늘을 내일의 희생양으로 생각할 때는 주어진 상황을 즐기지 못했다. 목표 달성을 방해한다거나 목표와 무관한 것에 대해서는 하찮은 것, 시간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라 여겼다. 목표 중심적인 성향 때문이다. 생산성 없는 수다, 남는 것 없는 개그 프로그램 등에 대해서는 지금도 같은 생각이지만, 더 이상 목적을 위한 수단만으로 치부하지 않는 것들이 생겼다. 밥을 먹는 건 배고픔을 가시게 하기 위한, 끼니를 때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루 중 먹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다. 운전은 단순히 이동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남편과의 데이트를 즐길 수 있는 또 다른 행복한 시간이다.

 

놈의 좋은 점은 또 있었다. 나다움을 버리지 않고 순간순간을 내 방식대로 즐기다 보니, 사사건건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다. 기독교 교리 중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대목이 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 감사는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감정 중 하나다.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에는 세 가지가 있다. 감사히 여기거나 불만을 갖거나, 혹은 당연지사로 생각하는 것이다. 불만투성이는 당연히 불행하다. 만사를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은 불행하진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다. 남들이 당연히 여기는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같은 상황에서도 본인만큼은 한껏 행복할 수 있다.

 

쌀국수를 먹으면서도 나는 두 배로 행복하다. 쌀국수를 많이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다. 만 원만 내면 당연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 나에게 허락된 감사한 순간이어서다. 놈은 여전히 마비 증세로 종종 경고등을 울리지만, 아직까지는 양손에 숟가락, 젓가락을 들고 한 그릇을 너끈히 비울 수 있도록 시간을 허락해 주고 있다. 놈과 하늘의 배려 덕분에 누릴 수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하면, 쌀국수를 먹으면서도 '맛있다'에 그치지 않고 '행복하다'고 외칠 수 있다.

 

내가 선택한 결혼이지만 남편의 요모조모는 매 순간 감사거리를 제공한다. 작은 키, 새까만 머리카락, 나와 비슷한 발 사이즈, 얇은 손톱, 허물처럼 벗어 놓는 옷, 권위적이지 않은 태도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사소한 것일수록 더 감사하다.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결혼했기 때문에 고스란히 내 실수로 남을 수 있었던 것까지 호감형으로 갖추고 있으니, 당연히 감사할 수밖에. 지금의 행복한 결혼 생활이 가능할 수 있었던 데에는 모야모야란 놈의 역할이 컸다. 나답게 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우쳐 준 덕분이다.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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