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콤비 - 강약의 하모니 - 가사 분담
우린 남편과 아내로서의 역할을 못 박아 두지 않았다. 애초부터 '가장' 또는 '내조'의 역할을 기대하고 결혼에 합의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을 성(性)에 따라 분담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기준은 오직 하나, 각자의 강점과 약점이다. 청소, 빨래, 설거지, 밥은 내가 맡는다. 반찬, 요리, 식재료 장 보기는 남편의 몫이다. 처음부터 역할을 구분한 것은 아니다. 그저 각자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레 자리가 잡혔을 뿐이다. 마구잡이식 가사 분담 같지만 분명한 기준이 숨어 있다.
청소, 빨래, 설거지, 밥은 일종의 준비 또는 완료에 해당한다. 준비와 완료는 상반된 개념이지만, 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집안일의 경우에는 완료가 곧 준비다. 쓰레기통 비우기는 쌓인 쓰레기를 종량제 봉투에 담아 지정된 장소에 버리는 마지막 작업이다. 동시에 쓰레기를 통에 버릴 수 있도록 쓰레기통을 사용 가능한 상태로 준비해 두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맡고 있는 가사는 전부 준비 및 완료와 관련된 작업이다. 언제든 요리를 할 수 있게 그릇을 씻어 두고, 필요한 물건을 찾아 쓰기 쉽게 정리한다.
밥과 물은 항상 전기밥솥과 냉장고에 준비되어 있다. 떨어지는 꼴을 못 봐서, 필요할 때 없는 걸 참을 수 없어서, 즉 내 필요에 의해서 하는 일이다. 정수기에서 끓여 먹는 차로 식수를 바꾼 뒤로, 나는 성실하게 물을 끓이고 식혀 냉장고에 넣어 둔다. 공백은 없다. 한결같은 준비성이다. 우리 부부에게 '쌀밥'은 식사 때에 맞춰서 하는 음식과 다르다. 떨어지기 무섭게 끓여 두는 식수처럼 항상 준비해 둬야 하는 것이다. 나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거나 시간을 내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하게 되는 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을 맡고 있다. 강점, 준비성을 살린 가사 분담이다.
그가 맡고 있는 가사는 음식을 만드는 데 관련된 것들로, 준비나 완료와는 다른 '판 벌이기'다. 요리에 필요한 주 재료는 그가 장을 보지만, 늘상 쓰는 간장, 식용유, 소금, 파, 마늘 등은 내가 사다 놓는다. 밥과 물처럼 준비해 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음식과 그 외의 것으로 역할을 나눈 것이 아니라 시작과 완료로 구분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설거지를 상대적으로 싫어하는 이유는 기능의 영역이 다르기 때문이다. 판을 벌이는 데서 재미와 보람을 느끼는 사람은 준비나 완료 작업이 번거롭고 귀찮을 수밖에 없다. 심리적인 강점과 약점으로 접근하면 당연한 이치다.
스스로 알아서 한 일에 대해서는 누구도 불평불만을 갖지 않는다. 본인의 필요에 의해 어렵지 않게 한 일로 유세를 부리는 이는 없다. 남이 시켜서, 억지로, 의무적으로 할 때 상대방으로부터 감사 인사를 바란다거나 보상을 기대한다. 실제로 우리는 자기가 맡고 있는 가사에 대해 보잘 것 없는, 별것 아닌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상대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그럴 듯하고 대단한 것으로 생각한다. 레시피를 봐도 꼭 필요한 재료와 기호에 따라 선택 가능한 재료를 구분하지 못하는 나. 메뉴가 정해지면 마트에서 척척 재료들을 선별하는 그의 재주에 경의를 표할 정도다. 물이 얼만큼 남았는지, 얼마나 남았을 때 또 물을 끓여야 하는지 감도 없고 관심도 없는 그. 시원한 물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나의 준비성에 감탄한다.
강점에 기초한 역할 분담이라 해도, 공정하게 나누어 맡은 집안일이라고 해도, 사람은 누구나 하기 싫을 때가 있다. 그 일이 의무시 되었을 땐 더욱 그렇다. 청소의 필요성을 거의 못 느끼는 그는 나에게 청소를 의무화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에게 요리를 강요하지 않는다. 취미 생활로 즐기는 술판은 시켜 먹거나 나가 먹으면 그만이다. 내가 못하는 걸 상대에게 요구하는 건 이기적인 처사다. 상대의 강점은 내가 못하기 때문에 요구할 수 없고, 알아서 잘 하기 때문에 요구할 필요가 없다. 약점 또한 마찬가지다. 서로가 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못하는 것은 그저 대수롭지 않은 것, 혹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저 잘하는 무언가에 대해 고맙고 다행스러울 뿐이다. 이렇듯 가사 분담에 강점과 약점을 적용하면, 자연스럽게 배역이 결정되고 잡음 없이 집안이 굴러간다.
그와 나의 강점을 합한다고 해서 모든 면이 완벽해지는 건 아니다. 둘 다 젬병인 것도 있다. 누군가는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돈 관리다. '잘살자'보다 '행복하자'고 외치는 부부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서로 돈을 관리하려는 부부를 보면 아리송하다. 그 귀찮고 머리 아픈 일을 왜 서로 하겠다고 나서는지 이해할 수 없다. 돈을 모으고 불리는 데 별 관심이 없는 그와, 돈을 세는 현실적이고 계산적인 작업이 즐겁지 않은 나. 애석하게도 내가 졌다. '아뿔싸'다.
역시 물 흐르듯 결정돼 버렸다. 처음에는 각자 번 돈을 각자 관리하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더 어렵다는 걸 알았다. 철저히 계산적인 부부라면, 또는 둘의 수입이 엄청나게 많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우리에게 한 푼 두 푼 따지고 드는 일은 좀스럽고 쩨쩨한 일일 뿐이다. 그가 먼저 발을 뺐다. 자연스레 돈 관리는 내 몫이 됐다. 결과는 예상대로다. 역할을 훌륭히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무언가에 집중하다 보면 까먹고 빼먹기 일쑤다. 남편도 이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구박하거나 나무라진 않는다. 본인이라면 더 못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제대로 해내면, 공과금 몇 번 제대로 내면,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해낸 것처럼 존경의 눈빛을 보낸다. 둘이서 참 잘들 논다.
또 하나의 공동 약점. 길눈이 어둡다는 것이다. 주차한 차를 찾느라 애먹는 경우, 둘이 신나게 떠들다가 반대 방향 지하철에 올라타는 경우, 네비게이션을 켜고도 길을 잘못 드는 경우 등 어두운 길눈 탓에 실수는 아예 일상이 됐다. 그러면서도 나아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길눈이 밝은 것도 재능이다. 우리 둘에겐 그 재능이 없다. 길눈이 어두운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감한다. 길눈만큼 신비로운 능력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 문제로 서로를 탓하진 않는다. 본인은 못하면서 상대에게만 잘하기를 요구할 순 없다. 형평성에 어긋나는, 지극히 비논리적인 짓이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타고난 길치를 탓한다고 나아지는 것도, 노력한다고 좋아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게 상책이다. 서른 중반의 어엿한 성인이 시골에서 올라온 할머니 할아버지들처럼 지하철 하나 제대로 못 타서 이리저리 헤맨다? 꽤 코믹한 상황이다. 둘 모두의 무능도 우린 최대한 즐기고 본다. 충분히 웃어넘길 수 있는 에피소드다.
행복계발 시트콤 MONZ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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