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하지만 약이 되는 이야기
영화 <보이A>(2007)는 진지하게 묻는다. 전과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사회적 성공과 가족의 안녕, 어른들이 키운 아이들의 폭력성. 영화가 요구하는 건 정답이 아니다.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자'는 거다.
줄거리
말썽 많던 사춘기 시절, 필립과 잭은 장난을 치다 그만 도를 넘고 만다. 또래 한 소녀를 살해한 것. 어린 나이에 필립은 자살을 하고, 잭은 죄값을 치르느라 성장기의 대부분을 교도소에서 보낸다. 영화 <보이A>는 잭의 출소를 격려하는 테리와 잭이 마주앉은 장면으로 시작한다. 테리는 잭의 출소 후 사회 생활을 관리하는 보호관찰관이다. 테리는 잭이 과거를 잊고 새롭게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돕는다.
잭은 테리의 지시에 따라 과거 사회적으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자신의 범죄 사실을 숨기고, 새로 지은 '잭 버리지'란 이름으로 일자리도 구하고 여자친구도 만난다. 근무 중 사고 차량 안의 한 어린이를 극적으로 구출하면서, 주위의 칭찬도 한몸에 받는다. 그렇게 밝은 인생이 펼쳐지려는 찰나,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다. 잭의 과거 범행 사실이 언론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난 것. 순식간에 돌변하는 사람들. 테리와도 연락이 닿지 않는다.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잭은 생각한다. '필립을 따라 이 세상을 떠나는 것만이 진정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인가.'
학교와 사회
아이들은 그저 본 대로 했을 뿐
영화 <보이A>는 학교 폭력에 대한 안타까움을 더한다. 학창 시절 잭의 환경은 열악했다. 암으로 몸져 누운 엄마는 잭을 돌볼 형편이 못된다. 무심하고 방탕한 아빠도 잭을 살피지 않았다. 부모의 손길이 필요했지만, 잭은 방치됐다. 집단 폭력을 당하고 멍투성이로 집에 들어서도 자초지종을 묻는 이 하나 없었다. 그런 잭에게 친구가 생겼다. 괴롭히는 놈들을 보란 듯이 한 방 먹인 필립. 무관심한 부모, 매번 맞기만 하는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원망이 일순간 사라지는 쾌감을 맛본다.
필립은 둘도 없는 친구이자 선망의 대상이 된다. 잭은 필립의 폭력성을 닮고 싶어 한다. 또래 남자들의 세계에서 난폭함은 종종 자신을 지켜내는 폼 나는 수단으로 거짓 포장된다. 학교 폭력의 근본적인 문제다. 강자와 약자, 그 중간은 없다. 약자가 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강자가 되어야만 한다고 느낀다. 망설일 틈도 없다. '양심'과 '대세' 사이에서 고민하는 순간, 약자로 전락한다. 서둘러 강자 편에 서야만 한다. '선악'과 '강약'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오류다. '바르고 행복한 삶'과 '잘먹고 잘사는 인생'을 혼동하는 어른들을 보고 배웠으니 오죽하겠나.
어른들이 개념을 상실한 탓
필립은 잭에게 위로가 되는 존재였다. 또래에게서 받은 몸의 상처, 가족에게서 받은 마음의 상처가 크지만 않았다면, 잭은 올바른 판단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필립의 위로는 고맙게 받아들이되, 그의 난폭함이 살인으로까지 번지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 필립 역시 형의 성폭력에 시달리던 아이였다.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는 말이다. 소녀는 목숨을 잃었고, 필립도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잭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름을 빼앗겼다. 무책임한 어른들이 부른 세 아이의 비극이다.
비극이 발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른들의 잘못은 금새 드러난다. 또래 여자아이가 숲에서 애정행각을 벌이는 장면을 목격한 잭과 필립. 입간판에 칼로 장난을 치고 있는 둘에게 그 여자아이가 다가와 먼저 시비를 건다. 야만인 같다며 제대로 살라고 충고한다. 필립은 어이가 없다. 제 잘못은 아랑곳 않고 입바른 소리를 해 대는 꼴이 볼썽사납다. 아빠한테 이르겠다며 큰소리를 치는 그녀. 필립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아킬레스건인 '집안'을 들먹여서다.
어른들은 아이의 '선악'을 '성적'과 '배경'으로 판가름한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리기에 앞서, 우등생과 열등생을 먼저 나눈다. 우등생은 '가해 무리 속 피해자', 열등생은 '가해자 중의 가해자'가 된다. 성적과 배경이 맞물리면 아이의 저력은 막강해진다.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끔찍한 폭력을 저지르는, 심적, 경제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놓인 아이들. 우리에겐 그들을 탓할 자격이 없다. 잘사는 집 우등생이 폭력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역시 무작정 싸고 도는 어른들 스스로를 탓할 일이다. 학교 폭력은 돈으로 사는 성적, 판치는 사교육과 무관하지 않다.
시나리오 메시지 MONZ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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