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을 파는 스페셜리스트>를 읽고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다시 본다. 진중권은 확실히 '거짓말을 파는 전문가'는 아니라는 결론이다. 사람들이 싫어해도, 해야겠으면 한다. 대중의 마음에 들기 위해 되지도 않는 애를 쓰지 않는다. 일부는 그가 '독설을 기대하는 대중을 의식한다'고 하지만, 생각 없이 들으면 그만큼밖에 보이지 않는 법이니 어쩌겠나. 그의 사상은 가능한 한 간결하게, 압축해서, 예의 바르게 표현되고 있다. 그게 '최대'다.
역시 <호모코레아니쿠스>의 일부다.
다짜고짜 반말지거리
위계를 짓는 데 사용되는 원칙 중의 하나가 연령. 보수적인 사회에서는 '생물학적' 연령이 중요한 '사회적' 변수가 된다. 독일에서 반말을 쓰느냐, 존댓말을 쓰느냐는 신분의 고하(高下)가 아니라, 관계의 친소(親疎)에 달렸다. 가끔 나이 몇 살 더 먹었다고 내게 반말지거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짓을 하면서 나와 인간 관계를 맺겠단다.
언젠가 법정에 증인으로 설 일이 있었다. 증인석에 앉으니 판사가 퉁명스럽게 묻는다. "어디서 유학하셨어요?" "독일에서요." "거기 사람들도 법정에 그런 복장으로 나옵디까?" "..." 나는 귀한 시간을 쪼개서 자기의 판결을 도와주러 나간 증인이다. 그렇게 고마운 존재를 대하는 판사의 태도가 영 불량하다. 하여튼 요즘 늙은 것들, 버르장머리가 없다.
그래도 나한테는 존댓말이라도 썼지, 앞서 벌어진 소송에서는 아예 반말지거리다. "그 결정문 받았으면 제출해야 할 거 아냐. 그것도 안 내놓고 판결을 내려 달라는 게 말이 돼?" 절절매는 분의 얼굴을 보니 나이를 먹어도 그 녀석보다 열 살은 더 먹었을 할아버지다. 요즘 젊은 것들, 이렇게 버르장머리가 없다. 그는 제 직업을 '기능적'인 것이 아니라 '신분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아동학대 수준의 선행 학습
'선행 학습'이라는 것의 수준이 거의 광기에 달한 모양이다. 얼마 전에 TV를 보니, 말도 못하는 아기들이 엄마의 무릎에 앉아 원어민 선생으로부터 영어를 배운다. 듣자 하니 유아를 위한 철학 교실까지 있단다. 이 정도면 아동학대다. 공포는 판단을 마비시킨다. '선행 학습 광기'는 공포에서 나온다. 과거 한국인의 심성을 지배한 것이 '전쟁'의 공포였다면, 오늘날 한국인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시장'의 공포다.
딱지만도 못한 우리 아이
독일에 살던 우리 아이가 여름에 한국에 왔다. 아파트촌에서 또래 아이들과 놀라고 내보냈는데, 어느 날 집에 들어와 볼멘소리로 투덜거린다. 모든 아이들이 자기만 보면 일단 "딱지 있어?"라고 묻고, 딱지가 없으면 안 놀아준다는 것이다. 그 아이들에게 우리 아이는 친구가 아니라 따먹을 딱지의 공급원일 뿐이다.
그 유명한 '방법적 회의'
'확실한 지식성에 도달하기 위해 먼저 모든 것을 의심에 부치자.' 이것이 그 유명한 '방법적 회의'다. 확실한 진리에 도달하려면 먼저 불신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근대의 합리적 사유다. 원초적 폭력의 세계에서 생존하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수'에 속해야 한다. 무슨 일에서든 유난히 '쏠림' 현상이 심한 것은, 실은 고립되는 것에 대한 공포감 때문이다. 다수 속에서 안전함을 느끼고, 소수 속에서 불안함을 느끼는 사회에서 혁신과 창안을 위한 용기는 설 자리를 잃는다.
창조적 개새끼
가끔 글을 쓰다 보면 일종의 유혹을 받아요. 대중들에게 유혹을 받는 거죠. 내가 글을 쓰면 어떤 사람들은 막 환호하고, 어떤 사람들은 흥분하지요. 하지만 글쟁이의 덕목이라는 것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들이 원하는,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듣기 싫어하는, 들어야 할 이야기를 해야 된다는 겁니다. 때로는 나를 막 지지하거나 편들어주거나 좋아하거나, 이런 사람들도 배신할 줄 알아야 된다는 거죠. '창조적 개새끼'로서.
가치관에 대하여 MONZ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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