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구경하는 사회 - 김인정


24쪽
목격은 눈으로 직접 보는 일이고, 구경은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보는 일이다. ...... 구조 인력이 절실했던 상황에서 충분히 도울 수 있는 거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촬영자들이 구조 대신 촬영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보는 이들을 괴롭혔다. 영상을 본 사람들은 사고 현장에 서서 '구경하는 눈'을 간접 체험했다.​ 

29쪽
고통을 중개하는 일에는 윤리적 딜레마가 따라붙는다. 전달하는 선택을 하는 순간, 동시에 다른 행동을 할 책임을 방기하게 된다는 딜레마. 

35쪽
정치와 슬픔은 공존할 수 없는 단어가 아니다. 어떤 슬픔은 사회적 실패에서 오고, 공공영역의 오류를 해소하는 것이 정치이기 때문이다. 

36쪽
나의 시선이 구경이 될 수 있다는 걱정에 빠져서 고통을 보는 일 자체를 멈춘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인간성 실패의 시작일 것이다. ...... 본 뒤에 무엇을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전달과 전달, 중개와 중개를 통해 유예되어 버린 행동의 가능성이 당신에게 있으니까. 

49쪽
고통의 포르노 운운하기 전에 인터넷이 불러온 진짜 문제는 우리를 기다리는 죄책감의 총량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통을 보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자각은 죄책감과 무력감의 원천이 된다. 

89쪽
기후 위기는 전 지구적인 일이지만 언론사와 기자들은 전 세계에 고루 분포되어 있지 않다. 방글라데시는 아시아의 빈곤한 국가 중 하나다. 개발을 위해 앞장서서 탄소를 배출한 나라가 아니다. 기후 위기에 대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제반시설을 갖추지 못한, 극도로 가난한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을 기후 위기의 샘플이자 해결책으로 소개하는 뉴스는 누구의 시선인가. 

89쪽
오늘의 문제를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하는 뉴스는, 그리하여 태생적으로 근시안이다. 뉴스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라 인간을 닮았다. 보이는 걸 보이는 대로 보다가 자칫하면 주류의 시각을 답습한다. ...... 우리는 국경이라는 개념으로 세계를 나누어 인식하는 데 익숙해진 나머지, 지구가 연결되어 있고, 모든 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가끔 잊는다. 

94쪽
결국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가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되지 않는다는 패러독스에 빠진다. ...... 고통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과정에서 자꾸만 누락이 생긴다. 

110쪽
해결된 게 없어도 시간이 간다는 이유로 언론은, 사회는 국가 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가책을 잊을 수 있는 걸까?

123쪽
그런데 취재에 응하는 미화원들의 표정이 좀 떨떠름해 보였다. 지하에 휴게실이 있었을 때가 낫다는 것이었다. ...... 미화원들이 쉬는 모습이 지상으로 나와 '눈에 띄게' 되자 입주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는 아파트 한 동 청소를 마치고 와서 겨우 쉬고 있었더니 청소를 하라고 돈을 줬는데 왜 놀고 있냐고 주민이 호통을 치고 갔다는 이야기도 했다. 

133쪽
그렇게 약자들의 선행과 관련된 뉴스는 계속해서 생산되고 소비되면서, 또다시 그들이 선하기까지 해야 하는 세상을 이끌어내는 데 일조하고 있는 건 아닐까? ...... 뉴스는 약자를 슬쩍 도구로 삼아 섣부른 계몽을 하며 사람들의 삶에 개입하고자 하는 걸까? ...... 그녀의 '형편'을 보여주는 대신 그녀가 가진 기부의 철학에 대해 더 많이 들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자본주의 틀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주는 마음에 앞서 가진 게 거의 없다는 조건들을 상세히 따지고 나서야 감동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일까? 

134쪽
소수자들은 자주 집단으로 묶인다. ...... 특히 일탈 행동을 했을 때 개인으로 바라봐지기보다 그 집단의 이름으로, 약자라는 이름으로 더 자주 호명된다. 이런 뉴스들은 자칫하면 약자들에 대한 잘못된 스테레오 타입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도 있고, 구조를 짚지 못하면 소수자 집단의 윤리나 도덕성에 지나친 책임을 묻게 될 수도 있다. ...... 약자의 선행을 바라볼 때는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이나 계층의 특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한 개인의 독특한 선함의 질감을 놓치지 않도록, 악행을 바라볼 때는 개인의 약함으로는 다 포착되지 않는, 그가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영향을 미친 사회적 요인과 모순에 고루 책임을 묻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꾸만 약자의 일을 저 멀리 타자화하며, 나와 관련 없는 남의 일로 간단히 치부해 버리는 인지적 게으름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146쪽
이 열없는 고백은, 비유의 바깥으로 밀려난 사람들을 불쾌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공감을 위해 닮음이라는 교두보를 찾아내려는 시도였다 한들 도리어 밀어내기와 배타성이라는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는 이유고, 편견과 한계를 노출하며 자주 무너지는 까닭이다. ...... '나'와 '닮음'은 그 직관성 때문에 오늘도 여전히 뉴스룸의 오래된 연장으로 쓰인다. 

174쪽
내게는 이것이 우러러봄이나 칭찬이 아닌 호소로 들렸다. 해외 여론이 중요하다는 점을 잘 이해한 운동가들이 해외 미디어에 다뤄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너희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걸 기억해서라도 홍콩과 함께해 달라는 외침으로 들렸다. 

190쪽
이 통계는 지역 뉴스가 중앙 뉴스로 변환될 때 서울이라는 선별의 거름망 안으로 들어가 어떤 부분이 통과되고 어떤 부분이 배제되는지를 보여준다. 전국 뉴스를 통해 바라보면, 지역은 흉흉한 사고가 발생해 사람이 많이 죽는 곳, 흉악범이 판을 치고, 물난리와 불난리가 나고, 폭우나 폭설이 쏟아지는 곳이다. 그런가 하면 아직 개발의 삽질이 닿지 않는 산천이 있고, 놀러 가기 좋은 지역 축제가 열리는 장소다. ...... 선별의 궤적은 전국의 뉴스 시청자들에게 그 지역의 생김을 전달하는 청사진으로 작용한다. 특정 뉴스를 제외한 지역 뉴스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지역의 일부가 가려진 채로 전달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일례로 기피 시설에 대한 지역 여론은 곧잘 지역 이기주의로만 폄하된다. 지역의 정치나 경제, 교육, 문화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중앙 뉴스에서 사라진다. 

206쪽
저항을 무효화하는 효과적인 방식은 억압된 자들이 들고 일어났을 때 저항이야말로 갈등의 범인이라고 지목하는 것이다. 이는 원인과 결과를 뒤집는 일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교묘하게 맥락을 지우는 일이다. 

239쪽
세상의 변화는, 연민보다도 자유로운 개인들 사이의 예기치 못한 화학작용으로 발생한다.

244쪽
드러난 공간인 거리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그들이 자신을 노출하고 있으니 이런 촬영은 대체로 적법했다. 그럼에도 촬영본을 들여다볼 때마다 타인의 삶을 멋대로 엿본 것처럼 느껴졌다. 홈리스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이 거리이기에, 프라이버시를 지켜줄 벽이나 건축물이 없기에 그들의 일상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자유가 나에게, 대중에게 주어지고 있었다. 마약에 중독된 홈리스에게 자신을 감출 자유와 기록당하지 않을 자유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현저히 적게 주어지고 있고, 이것은 계급적, 인종적 사회 구조와도 연관되어 있었다. 어떤 취재는 무엇이 고통인지에 대한 기득권의 무신경한 정의이기도 하다. 

253쪽
말하지 않고도 알 수 있는 남의 사정 같은 건 없다. 인종과 언어, 계급의 장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소통의 무한한 불가능성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 

260쪽
시위로 이어지는 공적 애도의 진정성을 두고 매번 시비가 붙는 건, 사회의 체질을 바꾸려는 시도에 대한 반발 작용으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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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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