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 정희진


14쪽
내가 알고 싶은 나, 내가 추구하는 나는 협상과 성찰의 산물이지 외부의 규정이어서는 안 되므로/아니므로 우리는 늘 생각의 긴장을 놓을 수 없다. 글은 그 과정의 산물이다.

21쪽
일본은 서구를 더 서구답게 실현한, 원본을 초과 모방한 제국이다. 

26쪽
나는 누구인가. 모든 사람이 이 질문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물음은 내 경험과 사회의 시선이 일치하지 않을 때, 타인이 멋대로 나를 규정할 때 솟아난다.

59쪽
그래서 특정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이다. 

59쪽
독서에는 반드시 몸의 반응이 따른다.

67쪽
우울증은 증상이 곧 성격으로 오해받기 쉬운 질병이다.

70쪽
나야말로 간절히 묻고 싶다. 어디로 나가야 합니까.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 저는 아직도 진로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페미니즘은 너무 어렵고요, 공부도 더는 못하겠습니다. 토란 같은 구근류 전문 카레 집을 할까요, 헌 옷 수선집이 좋을까요, 운전을 배워 트럭을 몰며 거리에 버려진 가구를 모을까요? ...... 돈, 시간, 사람 잃기를 반복한다. 잘난 척하다, 순진함과 진정성을 구분 못해서, 일방적이어서, 준비되지 않은 정의감 때문에, 멍청해서... ...... 다행히 우주의 관점이라는 게 있다. 그렇지, 나는 모래알의 백만 분의 일보다 작은 먼지다.

77쪽
위로란 받는 것이 아니라 깨달을 수 있는 마음임을 배울 수 있다.

86쪽
파생된 것은 바다를 이루고 파도가 되어 '기원'을 삼켜버리기 마련.

89쪽
역사상 은둔이 가장 간단해진 시대는 지금이다. 기기가 인간의 몸을 대신하는 시민권이 되었으니, 휴대 전화와 인터넷 계정만 없애면 절로 은둔이다.

91쪽
이 문제도 양극화인지 우울과 경조증 인구가 동시에 증가하는 것 같다. 특히 지나치게 유명세를 추구하거나 목표 지향적인 사람은 위험하다. 사실, 이들의 당당한 부도덕성이 우울형 은둔의 근원이다. 제일 괴로운 이들은 멘탈은 취약하고 정신력은 면역 결핍인데, 정치사회 문제에 걱정과 분노가 많은 경우다. 게다가 마음만 앞서는 '욱하는' 정의감까지 있다면 목숨 보전을 위해 잠시라도 은둔하는 것이 좋다.

91쪽
이 정도의 오만, 세상과 거리를 두려면 자원이 많아야 한다. ...... 은둔의 이유는 세상이 나를 더럽혀서가 아니다. 내가 세상을 더럽히므로 떠나야 한다. 마음이 편하다.

97쪽
꽃과 돈은 언뜻 미추로 대비되어 보이지만, 같은 "다발"이라는 단어와 붙어다닌다.

101쪽
일단 '조건적'은 반드시 그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상대를 대체 불가능한 유일무이한 고유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이다. 사랑의 의미가 다양한 것이 아니라 조건의 의미가 다양한 것이다.

109쪽
몸=삶=감정=생각. 감정이 모든 지표다. 감정은 인지 작용, 생각이다. 그래서 감정은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이해해야 할 사고방식이다.

112쪽
미래는 시간 개념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공간으로만 상상할 수 있다. 세계 10대국, 노벨상 수상 국가, 좋은 집, 합격처럼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는 삶의 형태지, 시간이 아니다.

120쪽
내가 생각하는 책읽기는 내용 습득이라기보다는 읽는 과정에서 느끼는 혼란과 즐거움이다. ...... 독서의 목적은 생각하는 긴장과 외로움, 쾌락을 얻기 위함이다. 

128쪽
변화를 외칠 때 우리는 무엇을 각오하는가. 감옥행이나 죽음 '보다' 지금 가진 것을 모두 내려놓는 무방비(open) 상태가 더 두려운 현실이 아닐까.

135쪽
보이지 않았던 것을 통해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는 것, 모든 사유의 시작이다.

135쪽
나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고가 현재 디스토피아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만물의 영장'끼리도 매우 사이가 좋지 않다. 백인, 남자, 부자만 영장이다.

136쪽
다짐해도 다짐해도 금세 잊혀지는 내 좌우명. "지구에 머무는 동안 타인과 자연에 민폐 끼치지 말고 조용히 사라지자." 그러므로 괴로움에 몸부림칠 일도 없다. 조금만 견디면 된다. 괴로운 시간은 대개 "인생은 대단하다. 고로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릴 때다.

140쪽
자기 중심적인 사람에도 두 유형이 있는데, 타인에게 무조건 잘해주는 유형과 맘대로 함부로 하는 경우다. 둘 다 상대를 무시하는 행동이다.

143쪽
영원한 사랑은 성실한 인생들, 끊임없이 갱신하는 인간의 대화가 지속되는 '천국'이다. 그래서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물어봐도 될까요?", "제발 그래줘요." 이런 대화는 어지러울 만큼 관능적이다.

146쪽
초등학교 때는 정치, 건강, 환경 교육이면 충분하다.

150쪽 

전통적으로 동화나 우화는 순수한 이야기로 포장되어 '아동에게 그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학습시키는 도구'였다.

154쪽
외로움은 타인과 나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나의 관계다. 자신이 몰두하는 대상이 몸이 부끄러울 만큼 아름다울 때 인간은 외롭지 않다("미천한 저의 사랑을 받아주세요"). 예술, 공부, 사회운동, 정치, 자연이 그런 대상이 아닐까.

159쪽
자존심이 센 사람은 빚진 상태를 못 견뎌하는 경향이 있다. ...... 불필요한 자존심을 '깨끗하다'고 착각하면서.

160쪽
감사는 호혜적일 수 없다. 기본적으로 빚진 마음이다. ...... 만일 되갚을 자원이나 의지가 없고 상대가 그것을 알고 있다면, 감사를 주고받는 행위는 불편하다.

160쪽
선물은 드물고 뇌물은 넘쳐난다. ...... 뇌물은 당장의 대가가 오가는 불법 구매 행위일 뿐이다. '불편해도' 선물과 도움이 오가는 사회가 바람직하다. ...... 이 시대의 비극은 나의 선물 사건처럼 상호 행위인 감사는 '부담스럽고', 구조적 착취는 '합리적'이라는 사실이다.

163쪽
기존의 개인이 공동체로부터 인권과 자유를 보호받아야 할 존재였다면, 지금은 스스로 알아서 각자도생을 수행해야 할 '자원'이 되었다. 우리의 몸은 '존재'에서 '자원'으로 변화했다.

163쪽
누가 더 나쁜 세상에 빨리 적응하는가, 부끄러움을 모르는가, 이기적인가, 면전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가에 따라 삶의 '승패'가 좌우된다.

165쪽
피억압자의 노동을 지배자의 시각에서 정의하는 것, 이것이 가부장제요, 제국주의요, 인종주의다.

166쪽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상황 중 하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평화적 해결이라는 이름으로 '대화'를 강요받을 때다. 나는 이에 응하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한다. ...... 답하면 결과는 둘 중 하나. 백전백패거나 가해자가 된다. 분노로 흥분하거나 초과 발언을 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169쪽
'될 수 없는 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얻는 것들 - 실패, 고통, 깨달음 -, 이것이 내가 원하는 바다. ...... 최선의 사이비가 아니라면,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174쪽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문제. 이런 종류의 인생사는 의미 추구만이 답이다. 고통의 가치는 오로지 해석에 달려 있다.

178쪽
내게 '여성'은 고통이자 자원이다.

181쪽
"코페르니쿠스 이후 우리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마르크스 이후 우리는 인간 주체가 역사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인간 주체에는 중심이 없다는 것을 밝혀주었다." 알튀세르의 이 말은 서구 근대사에 대한 가장 훌륭한 요약 중 하나가 아닐까('열린책들'의 프로이트 전집 뒤표지).

183쪽
이 방면의 대가 안드레아 드워킨이 말했다. "의미를 모르면 고통도 없다."

189쪽
페미니즘은 계급, 인종 등 여성들 사이의 다름을 인식하고 차이를 갈등이 아니라 자원으로 삼고자 하는 세계관입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고, 동시에 이동하고 변화하면서 성장하는 것입니다.(젠더와 민족, 니라 유발 데이비스, 233쪽) 성차별은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차이는 그 사회의 해석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두 직진"을 강조하는 경제성의 정치보다 교차, 우회로, 가로지르기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는 횡단의 정치가 유용하지요.

190쪽
모든 지식은 임시적이고 임의적이죠. 사전은 그 과정을 반영할 뿐이고요.

193쪽
헬렌 켈러를 다룬 책 중에서 가장 실체적 진실에 가깝다고 평가받는 도로시 허먼의 <헬렌 켈러>를 읽으면서 위인전에는 어떤 종류의 '19금'이 필요한가에 대해 생각했다. ...... 헬렌 켈러가 헌신했던 사회운동에 대한 내용은 언급되지 않고, 주류 사회가 인정한 성취만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한 교육일까.

194쪽
사람들은 헬렌 켈러가 장애운동 외 다른 사회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싫어했고, 자기들이 정해놓은 성스러운 이미지와 도덕 관념으로 그를 '숭배'했다.

194쪽
장애는 인간(몸)의 개념을 규정하는 근본적 인식 범주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장애, 성별, 인종, 성 정체성은 모두 몸에 대한 사회적 해석이다. 

199쪽
포박된 가해자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 해도, 나는 울고 겁먹거나 존댓말로 "제게 왜 그러셨어요?" 이럴 것 같다. 최대 치욕이다. 크게 소리지르는 연습부터 필요하다. 비명 말고.

202쪽
'양성'은 인간을 남녀로만 구분하려는 정치, 태초부터의 권력이다.

238쪽
한국 국방부는 1972년까지 수영복, 드레스 심사를 포함한 '미스 여군 선발 대회'를 개최했다.

241쪽
동물들의 행위가 약육강식인지, 협력인지, 경쟁인지, 돌봄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판단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먼저 질문해야 한다. 

244쪽
성폭력은 추잡하거나 변태적이지 않다. 가부장제 사회의 일상적 규범이다.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가장 오래되고 광범위한 권력 행위다.

247쪽
현대사회에서 비만은 야만이다. 근대적 인간의 조건은 의지(will)이고, 문명은 의지의 실현으로 간주된다.


[네이버 책]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 정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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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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