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때는 그랬다. 여기저기 별여 놓은 뉴타운 사업으로 시끄러운 동네가 한둘이 아니고, 계속해서 떨어지는 집값 때문에 어렵게 내 집 마련을 했지만 하우스푸어로 전락한 사람들의 고충이 주목을 받던 때. 미분양, 부실 공사, 아파트 허위 광고로 건설사와 주민들의 갈등이 날로 깊어지는데, 새로 당선된 대통령은 행복주택으로 주택난이 해소될 테니 염려 말라는 미심쩍은 정책으로 혼란을 야기하던 시기. 이때 KBS스페셜은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국민들의 아우성에 귀 기울이고, '우리나라 아파트'의 역사를 되짚어 봄으로써 본질적인 국민들의 의문을 풀어 보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에 대한 개념 자체가 잘못 형성된 게 문제라는 지적. 해당 컨텐츠를 통해 조금이나마 현명한 주택 관련 인식이 자리잡기를 바라며 제작진의 공을 옮긴다.  2013-10-10 Renewal

 

1970년대, 서울 강남에 최초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처음엔 장독 묻을 데도 없는 이 본때없는 건물이 무슨 집인가 했지만, 우리는 차츰 이 신형주택에 마음을 빼앗겼다. 지었다 하면 날개 돋친 듯 팔리다 보니 아파트 분양권도 귀한 몸이 됐다. 당첨만 되면 로또나 다름없었다. 아파트가 귀할 때 얘기다. 4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여전히 아파트 때문에 울고 웃는다. 아파트가 이렇게 흔해졌는데도 말이다. 궁금하다. 주택 보급율이 100%를 넘는다는데, 전국이 아파트 천지인데, 이렇게 계속 지어 대도 되는 건지, 무엇보다도 우리가 왜 이렇게 아파트에 목매며 살게 됐는지.

 

꿈의 아파트 - 재건축, 재개발, 그리고 뉴타운

 

재건축

 

2000년대 초반부터 우리 주택시장에는 재건축 바람이 불었다. 70~80년대에 지은 아파트들이 시설이 낡아 붕괴 위험이 있으니 허물고 다시 짓자는 것.

 

서울시 송파구 가락동에 있는 시영아파트도 그중 하나였다. 철거와 재건축을 진행하려면 주민들이 집을 비워야 한다. 그래서 올해 초까지 주민들 열의 아홉이 이주를 했는데, 수백 세대가 못 나간다며 버티고 있다. 이 아파트는 아직 재건축 규모와 비용을 결정하지 못했다. 주민들은 내 집이 얼마로 평가받는지, 새집에는 또 얼마나 들어가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조합은 '우선 이주'를 결정했고, 이후 주민들 사이는 가뭄의 논바닥처럼 갈라졌다.

 

            R   가락시영아파트 주민  曰 이주를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우선 조합이 시공사랑 어떤 계약을 했는지 도급 계약 내용을 우리가 알아야 하지 않나? 시공사는 3.3㎡당 가격을 고지하고 입주자 의견을 물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절차 없이 이주를 강요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반면, 먼저 이주한 세대는 하루빨리 사업이 시작되기만을 바란다. 금방 재건축이 될 거란 생각에 이미 4년 전에 이주한 주민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조합은 한 달 30~40억의 이자를 부담하고 있다. 모두 주민 부담이다.

 

            송규만  재건축 조합 사무국장  曰 재건축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는 재산가치 증식인데, 즉 돈을 벌자는 건데, 부동산 경기가 안 좋으면 재건축 후에 수익이 원하는 만큼 안 나올 수밖에 없다. 분양가는 떨어지고, 분양도 잘 안되고 하다 보니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 됐다.

 

지금 계획대로라면 현재 6,600세대인 가구수가 9,500세대로 늘어나고, 사업비는 3조 원 가까이 들어간다. 어마어마한 규모다. 대규모 재건축 사업은 태생적으로 집값이 꾸준히 오르는 것을 전제로 한 사업이다.

 

재개발

 

새 아파트로 재산을 불리고 싶은 욕망은 일반 주택도 예외는 아니다. 다가구, 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동네를 아파트 단지로 바꾸는 걸 '재개발'이라고 하는데, 언젠부턴가 우리에게는 일반 주택 지역은 낙후된 곳, 개발해야할 곳이고 그 모델은 당연히 아파트라는 형식이 자리잡았다.

 

서대문구 연희동에서도 아파트 단지 건설을 위한 재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다. 젊은 시절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장만한 이 집에서 아들딸 삼남매를 키워 낸 T 씨는 집, 동네 다 뺏기고 전세살이로 나갈 판이다. 재개발의 주민 부담이 이렇게 큰지 몰랐다.

 

            T   재개발 반대자  曰 우리 집이 방 세 칸에 거실, 주방까지 7021인데, 감정가가 1 4천 정도밖에 안 나왔다. 3.3㎡당 650~660만 원이란 얘기다. 그런데 아파트 10933을 신청하고 보니 31천만 원이 부족하더라. 31천만 원이면, 다른 데 10030 아파트를 빚 안 지고도 충분히 살 수 있는 돈이다. 결국 7021짜리 우리 집만 그냥 뺏기는 거다.

동네가 낙후돼 있었기 때문에 동네 발전을 위해 처음에는 재개발을 적극 찬성했다. 그런데 조합이 이런저런 거짓말로 상황을 여기까지 끌고 온데다, 말도 안 되는 감정가를 내밀어 찬성에서 반대로 돌아선 거다. 31천만 원이 어딨나!?

 

재개발 사업의 실체를 알게 된 주민들이 부랴부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사업비를 감당할 수 없는 주민은 나가라,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할 수 없이 주민들이 재개발 조합 해산 동의를 받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외지인들의 동의를 받기가 어렵다는 것. 주민들은 '투기 목적으로 사 놓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동의서를 받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사업 진행을 이유로 조합에서는 계속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이것도 모두 주민들 부담이다.

 

재개발이라면 무조건 좋은 줄 알고 동의해 줬다. 그런데 이제 와서 몇 억씩 되는 돈을 내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골목안을 가득 채웠던 재개발 환영 현수막은 온데간데없이 연희동은 지금 찬바람이 쌩쌩 분다. 합의했던 재개발 사업을 철회하려니 그동안 들어간 비용도 문제다. 그래도 어르신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평생의 자산을 지키려면 지금이라도 멈춰야 한다.

 

뉴타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파트 개발은 모두가 환영하는 정책이었다. 원래 집보다 더 좋은 집에 살면서 자산 가치는 일취월장 오를 거라고 믿었다. 대표적인 게 뉴타운 개발이다.

 

서대문구 뉴타운에 속했던 가재울 3구역이 작년에 완공됐다. 마당 딸린 집을 소유했던 V 씨 부부는 뉴타운 계획을 환영하며 미련없이 동의서에 사인했다. 뒤늦게나마 아파트에 살게 됐지만 문제는 1억 원 가까이 나온 개발부담금이다. 재개발이 대부분 그렇다. 새 아파트 입주권을 받으려면 수천에서 수억까지 개발부담금을 물어야 한다.

 

            V   뉴타운 입주자  曰 일단 새집으로 오니까 기분은 좋지만, 당장 내일부터는 돈 걱정에 시달리게 될 거다. 내일모레면 은퇴할 나이에 평생 져 본 적이 없는 은행 빚을 1억 원이나 지게 됐다.

 

재개발, 재건축은 도박과도 같다. 원 세대보다 집을 많이, 혹은 비싸게 지어서 분양 수익이 극대화되면 개발비를 회수하고 시세차익까지 누릴 수 있지만, 분양 수익이 적고 집값마저 하락한다면 개발 비용이 고스란히 빚으로 남게 된다. 뉴타운이 사실상 빚타운이 된 것. 부담금을 감당할 수 없는 세대는 졸지에 세입자로 나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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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   뉴타운 해당 지역 주민  曰 감정가의 10%로 추가부담금이 8천만 원 나왔다. 원래 땅이 20562이었다. 20562 주고 15547 들어가는데 또 8천만 원을 내야 한다.

 

            X   뉴타운 해당 지역 주민  曰 없는 사람들은 집 한 채 뺏기고, 내 집에는 들어가 살지도 못하고 세주고, 우리는 또 딴 데 세 살고, 이런 지경이다. 아마 그 집엔 평생 못 들어갈 거다.

 

            조명래  단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  땅을 철거하고 대규모 주택을 짓는데 그 돈을 누가 대는지부터 봐야 한다. 도시 계획 사업이지만 정부는 일전 한 푼 돈 안 낸다. 거기 땅과 집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재산을 처분해서 집을 짓고, 그로부터 발생한 개발 이익금으로 하는 사업이다. 쉽게 말해, 대표적인 돈 놓고 돈 먹기 사업이다.

 

각축 속에 시작한 뉴타운 사업이 불과 몇 년 사이에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2000년에 기대 속에 뉴타운 지구 지정이 시작됐지만, 막상 알고 보니 살던 주민은 동네를 떠날 수밖에 없는 계획이란다.

 

            변창흠  세종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현재의 재개발, 재건축의 기본적인 모델 자체를 전면 수정해야 한다. 모조리 철거한 후 기반시설을 설치하고 대규모로 개발하는 것이 재개발, 재건축, 그것보다 더 큰 규모로 벌이는 게 뉴타운 사업이다. 그런데 이제는 큰 규모로 하는 게 불가능해졌고, 하더라도 수익률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작게 들어가야 한다. , 몇 개의 집만 고치거나 또는 개별적으로 집을 고치는 방식으로 사업 구조를 변경해야 할 때다.

 

대한민국 '아파트'가 남긴 숙제

 

완공된 아파트가 남긴 숙제

서울시와 SH공사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강남 같은 강북을 만들겠다던 뉴타운 사업. 그러나 완공 후에도 한동안 대형 평형 600여 채가 미분양으로 남았다. 작년 가을, 박원순 서울시장은 빈집에 현장 시장실까지 차려놓고 미분양 해결에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주민들 요구에 맞춰 교통, 편의시설 등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남아 있는 대형 주택을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함께 살 수 있는 구조로 바꾸거나 대학생 기숙사로 개조해서라도 미분양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거다.

 

            박원순  서울시장  曰 시장이 세일즈맨 해야지 어쩌겠나. 우리 사회가 큰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홍역을 치르고 있다고 본다. 이를 당장에 해결할 수 있는 정답은 없다. 소득 중심, 성장 중심에서 균형성장 또는 삶의 질 중심으로 옮는 기조의 변화와 더불어, 다양한 분야를 서서히 정비, 해제, 또는 추진하면서 답을 찾아가야 한다. 여기에는 상당한 비용과 고통이 따르겠지만, 쉽게 가는 길이 없다면, 아프지만 이 길을 헤쳐나가는 게 수다.

 

소소한 자진 재개발의 행복

 

처음부터 아파트를 '투자 대상'이 아니라 '주거의 관점'에서 바라봤어야 한다. 최근엔 아파트 개발에 회의를 느끼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서울 서대문구 연남동 주민들은 마을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시나 건설사가 개입해 바람을 넣지 않는다. 오로지 주민들 스스로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바람직한 모델을 찾아간다. 아파트 생활의 혜택으로 여겨졌던 문화생활 기반아파트 없이도 가능해진 것. 연남동 주민들은 지금 마을 꾸미기에 푹 빠져 있다.

 

            E   연남동 주민  曰 아파트를 짓는 재건축 얘기가 있었는데, 우리 마을은 이에 반대해 당시 재개발 후보지에서 빠졌다.

 

            F   연남동 주민  曰 재건축을 하게 되면 원주민 중에는 살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아파트 분양가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다 떠나야 된다. 그래서 우리는 원주민이 계속 살 수 있는 동네,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민들이 의견을 모으면 지자체에서 예산을 지원하겠다고 해, 현재 주문문화센터 마련을 계획 중이다. 1층을 마을관리소, 2층은 북카페, 3층은 어르신들을 위한 나눔터, 4층은 육아방, 이렇게 구상하고 있다.

 

            G   연남동 주민  曰 저층 주거단지가 아파트 단지에 비해 좋은 점은 안전성과 쾌적성이다.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주민들이 직접 지자체에 편의시설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동네 한쪽을 지나던 철도가 땅 밑으로 들어가 널찍한 공원도 생긴다고 한다. 오랫동안 함께 살던 주민들이 장밋빛 환상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됐다.

 

전문가의 숙제 해석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  曰 우리가 주택 정책의 패러다임 건설 업체나 금융 업체가 아니라 가계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면 완전히 다른 구조가 보인다.

 

            조명래  단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  주택이라는 물리적 시설뿐만 아니라 거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까지도 함께 안정화시키는 통합적, 종합적 주거 재생 정책이 필요하다.

 

            변창흠  세종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曰 과거와는 주택문제가 유형적으로 완전히 달라졌다. 그러면 주택 정책도 내용이나 방향, 대상도 전면 달라져야 한다. 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정책, 다주택자를 양산하는 정책, 세금 깎아 주고 어떤 주택이든 공급만 하면 되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 이러한 정책은 지금 시점에 맞지 않는다.

 

오랜 세월 우리는 아파트를 투자의 대상으로 생각해 왔다. 아파트로 집을 짓는 게 아니라 욕망의 바벨탑을 올려 왔다. 무한 공급과 거품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아파트의 가치를 사람이 살아가는 집으로 돌려놓지 않는 한, 아파트의 역습은 계속될 것이다.

 

 

아파트의 역습 | 2013-03-24 | KBS스페셜 Link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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