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비정상적 시장, 대한민국 주택시장

 

재개발, 재건축, 뉴타운,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아파트 건설이 핵심이다. 이런 곳이 서울에만 천 곳이 넘는다. 지난 40년 간 우리는 아파트만 지어댔다. 서울이고 지방이고, 산이고 바다고, 아파트만 지으면 만사형통이었다. 한국인 모두가 아파트에 의지하고 아파트를 욕망하게 됐다. 이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짚어 본다.

 

아파트 분양의 시초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아파트 단지로 개발된 곳이 지금의 반포지구. 분양 정보를 제공하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중개업도 이때 본격화됐다. 처음부터 중상류층을 위해 지어진 주택이었다. 반포 아파트는 단지 주변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10분 거리 안에 학교, 유치원, 은행, 우체국이 들어서고 집안에는 주방, 가정부 방, 욕실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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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창흠  세종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曰 집집마다 화장실을 따로 두고 엘리베이터를 만들고, 강남지역 전반에 확산되면서 아파트가 새로운 부의 상징이 되기 시작했다.

 

때마침 중동건설 붐으로 경기가 살아나고 시중에 돈이 많을 때였다. 부유층이 문화생활의 상징으로, 또 부를 증식하는 수단으로 아파트에 투자하면서 투기 바람도 시작됐다.

 

            Z   공인중개사  曰 다른 사람이 산 것을 다시 살 수 있었다. 그때는 전매 제한이 없었다. 은행에 2백만 원을 저금하면 분양 추첨권을 준다. 그 추첨권을 받아 추첨에 참여하고, 당첨되면 바로 그 자리에서 2백만 원을 붙여 4백만 원에 분양권을 되파는 거다. 그러니까 분양권 받겠다고 그렇게 다들 밤 새고 줄을 섰던 거다.

 

몇 달, 며칠 만에 투자금이 몇 배로 뛰어오르니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은 다 아파트 시장으로 몰려들었다. 대리인을 내세운, 서류를 위조한 불법이 난무했지만 단속을 해도 그때뿐이었다.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강남의 나대지(지상에 건축물이나 구축물이 없는 대지)가 모두 아파트로 바뀌면서, 부유층은 재산을 불리고 건설 업체는 호황을 누렸다. 정부는 주택공급이라는 임무를 만족시켰다. 누구 하나 반대할 이유가 없는 아파트 개발사였다. 살기 편해서 좋았던 아파트는 점차 거래가 편해서 좋은 아파트로 변해 갔다.

 

            변창흠  세종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曰 당시는 급격히 경제가 팽창하고 소득이 확대되는 단계였고, 또 부동산 투기가 활성화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비교적 표준화되어 있는 아파트는 하나의 채권처럼 사고팔기 쉬운 단위로 자리잡았다. 몇 평형이다, 어느 위치다 하면 가격이 얼마로 책정이 돼 있다시피 하니까, 바로 거래 가능한 상품으로서의 대명사가 된 것이다.

 

한국 특유의 주택 패러다임

 

70~80년대의 아파트 건설 방식은 한국 특유의 주택 패러다임을 낳았다.

 단지 내 모든 시설을 갖춘 대규모 개발

 민간자금 동원

 집을 짓기도 전에 거래가 시작되는 선분양제

주택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경제는 미약하던 시절에 추진했던 이 방식은 지금까지도 고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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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명래  단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  曰 선분양제도 하에 소비자들은 주택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도 않은 채 돈을 댔다. 집이 좋든 나쁘든 간에 워낙 집이 부족하다 보니, 분양을 받으면 복권 당첨과 같은 효과가 뒤따랐다. 그러니까 돈이 없어도,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못 봤어도, 가격이 정당한지 아닌지 따져 보지도 않고 무조건 아파트에 올인하는 상황이 돼 버린 거다. 있을 수 없는 얘기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주택시장은 대표적인 비정상적 시장이라 하겠다.

 

그때부터 우리 주택시장은 철저히 공급자 중심으로 흘러간다. 정부가 계획을 세우면 기업이 가격을 결정하고, 민간자금으로 건설비용을 충당한 뒤에는 시세 차익까지 챙기는 구조. 이 과정에서 도시 생활에 필요한 각종 시설도 아파트 개발 안에 포함됐다. 공원, 녹지부터 치안, 상업, 복지시설이 모두 아파트 건설비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박철수  서울 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曰 주차장, 놀이터, 경로당, 어린이 운동시설, 청소년 운동시설, 이런 것들이 시민 또는 국민 모두를 위해 공공이 제공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공공의 역할은 모호한 채 혹은 미약한 채 단지 내부의 주민들이 자기 비용을 들여서 만들어 가는 시스템이 작동했고, 그 시스템이 지난 50년 동안 대한민국을 '아파트 단지의 사회' -아파트가 아니면 누릴 수 없는 환경, 그리고 아파트를 통해 더 큰 아파트 혹은 더 지명도 높은 아파트로의 이동을 욕망하는 사회-로 만들었다.

 

비정상의 최후

 

빚더미

 

1997년 외환 위기로 우리 경제는 큰 위기를 맞았다. 정부는 경기 부양의 목적으로 주택 관련 수많은 규제를 풀었다. 외환위기로 기업을 믿을 수 없게 된 은행들은 영업 방향을 가계로 돌렸다. 집을 담보로 한 대출, 부동산 개발 담보대출을 크게 늘린 거다. 부동산 거래와 각종 개발에 대한 규제가 풀리고, 은행은 신규 아파트마다 수천 세대씩 집단 대출을 풀었다. 내 집 마련에 목마르던 서민들이나 외환위기로 위축됐던 기업이 구제됐다. 그렇게 또 한 번의 부동산 광풍이 시작됐다.

 

            조명래  단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  曰 가계 입장에서는 돈 없이도 신용만을 담보로 주택자금의 60% 정도를 빌릴 수 있었기 때문에, 다시 부동산 공급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  曰 먼저 정부가 2기 신도시를 만든다거나 주택단지를 조성한다고 발표한다. 그러면 건설 업체들이 이를 대규모로 분양하고, 이어서 금융 업체들이 하나씩 들어가 주택집단대출을 건설 업체들과 함께 진행한다. 그런 식으로 금융권이 경쟁적으로 달라붙어 영업을 하면서 주택담보대출이 엄청 늘었다.

 

당시의 아파트 부양책은 효과가 있었다. 구제 금융을 조기에 청산하고 경기가 되살아났다. 그러는 사이, 가계 부채는 두 배로 늘었다. 2012년 가계 부채가 960, 가계 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30%를 넘었다. 더구나 2008년에는 대형 악재가 터졌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가 얼어붙었다. 부동산 시장에 적신호가 켜졌다. 가장 먼저 집값 상승을 주도하던 지역의 아파트와 대형 아파트 값이 떨어졌고, 이 추세는 아파트 시장 전체로 확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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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창흠  세종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曰 일부지만 몇몇 고급 아파트의 경우 억 단위로 매매가가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과거에 과도하게 평가됐던 집값에서 거품이 사라지면서 적정하게 평가되는 시점에 이르렀고, 해당 아파트에 대한 수요도 충분치 않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가격이 조정된 데서 기인한 현상이다.

 

거품은 빠지는 게 순리다. 문제는 거품으로 인해 취약해진 경제 구조다. 그리고 이 상황은 서민에게 더 치명적이다. 가계 대출을 보더라도, 최근에 연체율이 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3천만 원 이하 저소득층의 연체율이 가장 높다.

 

깡통주택

 

집을 팔아도 담보대출금을 갚을 수 없는 깡통주택이 19만 채라고 한다. 이 불똥이 세입자에게까지 튀고 있다. 2011년에 완공된 의정부의 한 아파트. 세입자 B 씨는 1년 전 전세 보증금 9천만 원을 내고 들어왔다. 그런데 작년 여름부터 식당을 운영한다는 집 주인이 갑자기 연락 두절이다. 집주인은 제 돈 하나 없이 전세금과 은행 대출만으로 집을 여러 채 소유했다고 한다.

 

은행들은 그동안 대출인의 자금 여력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아파트 시세의 60%까지 대출을 남발해 왔다. 이른바 '묻지마 대출'이다. 채무상담 중 만난 한 개인파산자는 너무 쉬운 대출이 화근이었다고 말한다.

 

            C   개인회생 신청자  경매 시 이사 계획은 어떻게 되나? 알아보고는 있지만 마땅치가 않다. 보증금은 있나? 500만 원 마련했다. 2007년 집을 산 이후부터 집값이 오르기 시작해 운이 참 좋았다고 생각했다. 대출 안내문도 엄청나게 뿌려질 때다. 직장생활 중이었지만, 은행 빚 9천만 원을 털어내고 내 돈으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은행 상담 결과, 추가 대출 8 4백이 가능하다기에 대출을 받아 총 1 7천을 사업에 투자했다가 집까지 날렸다.

이런 생각도 했다. 원래 빚 9천에서 8 7백을 추가로 빌려 상계동에 56 17평주택을 샀다면, 상계동 집에서 나오는 대출로 서울 외곽에 집을 사고, 거기서 나오는 대출로 또 집을 살 수 있다. 아마 수도권에 네다섯 채는 살 수 있었을 거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부동산 정책을 만병통치약처럼 처방해 왔다. 그러나 효과 빠르고 기분 좋아진다는 착각 속에 가계 부채라는 병은 곪을 대로 곪았다.

 

            조명래  단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  집값이 한창 오를 때는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집을 사도 절대 깡통주택이나 하우스푸어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가 자꾸 주택거래를 활성화시키고 가격 안정화 정책을 펴니까, 실물경제가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 정부를 믿고 돈을 빌려 집을 산, 특히 자금력이 약하고 채무가 많은 가계는 집값이 떨어짐에 따라 깡통주택 소유자로 전락하고 하우스 푸어가 된 거다.

 

가계 부채가 얼마나 심각한지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은행 대출만 부채로 잡은 통계에서는 집값 대비 부채 비중이 평균 50%.

전세보증금을 포함하면 부채 비중이 무려 71%,

부채가 집값을 상회하는 깡통 중의 깡통도 26%나 된다.

 

깡통주택은 집값도 떨어뜨린다. 부채가 대출 한도를 꽉 채웠을 때, 시세가 20% 하락하면 대출도 20%를 갚아야 한다. 이 돈을 못 갚으면 집이 시장에 나오고, 이런 집이 많아지면 집값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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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  曰 이런 현상은 분명 금융권에도 영향을 미친다. 가계가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무너지기 시작하면 그 주택에 살고 있는 세입자도 난항을 겪지만, 빚을 갚지 못해 경매 처분되는 가구들이 늘어나면 금융권도 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다.

 

아파트 개발과 거래는 IMF를 극복하는 데 일부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 아파트는 178 54평이나 되는 대형 평수인데, 완공 후 3년째 비어 있다. 주택 경기가 꺾이기 시작한 2008년에 분양된 데다, 워낙 대형 평형으로 구성돼서 미분양 비율이 높았다. 2013 1,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75,000개가 넘는다.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던 연간 공공물량의 딱 절반이다. 어떤 상품이든 재고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파트 재고는 좀더 불길한 미래를 품고 있다.

 

일본이 걸어 온 길

 

일본 역시 경제 호황기에는 부동산 투자나 내 집 마련에 집착했다. 신도시 건설도 1960년대에 시작해 우리보다 30년이 빨랐다. 그러나 현재 일본의 부동산 침체는 20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1980년대까지 일본의 고속 성장은 지속됐고, 늘어난 인구와 소비에 맞춰 도시마다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건설됐다. 타마 신도시도 그렇게 세워졌지만, 지금 이 도시에서는 아이들을 보기 어렵다. 소비 수준이 높은 젊은 세대는 도심으로 떠나고 신도시는 활력을 잃은 채 노인들의 도시로 변했다. 이게 부동상 호황기에 우후죽순 생겨난 아파트 단지의 현주소.

 

            나카조 야스히코  메이카이대학 부동산학과 교수  曰 주택을 새로 건설하면 경제학에서 말하는 '승수효과'라는 것이 발생한다. , 집을 건축하면 사람들이 가전제품, 커튼 등을 사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동차도 사기 때문에 2배 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거다. 이런 방식으로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정부는 내 집 마련 정책을 적극 추진했다.

현재 일본에는 세대수보다 15% 많은 주택이 있다. 빈집 비율이 15%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구가 계속 감소하고 있어 빈집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렇게 주택시장이 구매자 중심으로 흘러가다 보니 구입할 만한 매력이 없는 부동산은 가격이 극단적으로 낮아지기도 한다.

 

부채를 끼고 다주택 소유자가 된 사람들에게는 불황이 더욱 깊다. 한 지방도시에서 여러 채 임대 주택을 소유한 남자가 부동산중개소에서 칼부림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임대 주택 열 채 정도를 소유한 범인은 두 채밖에 임대가 안 된 상황에서 대지진으로 주택 벽이 무너져 수리를 해야 했는데 그 비용이 천만 엔 1억 원이 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난감해 했다고 한다. 현재 일본의 집값은 80년대에 비해 절반 가량 주저앉았다. 빈집은 점점 늘어난다. 더 암울한 건 이런 추세가 앞으로도 계속 된다는 것이다.

 

            이노우에 아키요시  산요기그템자산평가사 회장  曰 일본의 부동산 가격이 앞으로 더 떨어질 거라 예상하는 데에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 가격의 거품이 빠졌다. 둘째, 인구구조가 변했다. 인구가 감소하면서 실제 집을 필요로 하는 사람 자체가 줄어들었다. 셋째, 경기 침체다. 지난 20년 간 경제 성장이 멈춘 탓에 부동산 수요자가 사라진 것이다. 이러한 근거로, 부동산 가격 상승을 예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우리가 걷게 될 길

 

부동산 거품이 절정에 이르던 시기에 일본은 불황과 인구감소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태욱  대신 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저금리, 노령화, 저성장, 인구감소를 보자. 일본과 똑같은 길을 가고 있다.

 

주택 구매가 가장 활발한 세대는 35~54세의 경제인구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인구가 줄고 있다. 인구가 늘어날 때는 늘어난 만큼 집도 많이 필요하지만, 인구가 줄여들 때는 필요한 집도 그만큼 줄어든다. 이제 공급 확대 정책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 소장  曰 지금 정부와 언론에서는 마치 이 부동산 침체가 일시적인 것이고 조금만 조치를 취해 주면 금방 다시 살아날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임시방편으로 계속 가격 틀어막기만 하고 있으면 가계도 계속 신용이 낮아지고 사정이 악화될 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경기 침체도 장기간 계속될 것이다.

 

아파트의 역습 | 2013-03-24 | KBS스페셜 Link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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