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콤비 - 두 개의 구슬 - 무언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모든 것을 털어놓으라고 요구한다면 친구나 배우자, 즉 동지로서의 자격을 한 번쯤 의심해 봐야 한다. 반대로 강요하지 않아도 자신의 모든 걸 스스로 투명하게 밝힌다면 그는 신뢰할 만한, 동지로서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결혼이 이혼으로 막을 내리는 경우 흔히 등장하는 이혼 사유 중 하나는 '환상이 깨져서'. 연예인을 좋아하는 팬처럼 상대의 일면 혹은 겉으로 보여지는 일부분만을 보고 그게 전부인 양 착각할 때 결혼은 불행으로 치닫기 쉽다. 상대방 자체가 좋아서 한 결혼이 아니라, 본인이 그려 낸 이미지에 취해서 한 결혼이기 때문이다. 이후 한 집에서 지내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까지 속속들이 알게 되면, 환상은 무참히 깨져 버린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처절하리만치 클 수밖에 없다.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 속았다며 땅을 치고 후회하지만, 사실 이런 경우 상대가 작정하고 속였다기보다는 본인 스스로 착각하고 오해하는 경우가 더 많다. 본인의 취향에 들어맞는 몇 가지만 가지고 '이런 사람일 것이다'라고 규정해 버리는 심각한 오류를 범한 것이다. 자기가 자기에게 속아 넘어간 꼴이다. 애꿎은 상대를 탓할 필요가 없다.

 

지인 중에 선남선녀 커플이 있다. 평균 이상의 능력을 자랑하는 남자와 평균 이상의 외모를 자랑하는 여자. 둘의 결혼 소식은 동료들 사이에서도 큰 화젯거리였다. 하지만 둘은 2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실제 이혼 사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그들의 속내를 직접 들어 보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추측컨대 서로에 대한 '환상'이 크게 작용했을 거란 생각이다.

 

2년 만에 그친 둘의 결혼 생활은 나름대로 꽤 행복했다. 연애할 때처럼 철저히 숨기고 가리면서, 서로에게 예쁘고 멋진 모습만 보여 주며 지냈다. 여자는 한 번도 집에서 큰일을 본 적이 없다. 볼일을 볼 때면 가까운 친정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남자를 맨얼굴로 마주하는 일도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항상 세팅된 차림이었다. 연애할 때와 다름없이 긴장을 늦추지 않고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모습은 절대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생활은 2년을 넘기지 못했다. 생리적인 현상, 일상적인 치부를 숨기는 건 겉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상대를 자꾸 피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많은 시간을 한 공간 안에서 보내는 부부간에는 특히나 공개와 비공개 사이에 적정선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100% 공개를 적극 추천한다.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를 만큼 예쁘게 포장된 보기 좋은 떡보다 먹기 편하고 맛 좋은 떡이 더 낫다는 생각에 동의한다면 100% 공개를 권한다.

 

이쯤 되면 '카리스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카리스마란 본래 '① 예언이나 기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초능력이나 절대적인 권위 대중을 심복시켜 따르게 하는 능력이나 자질'을 뜻하지만 일상에서는 흔히 '환상'에 조금 못 미치는 의미로 쓰인다. '현실적인 기초나 가능성이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을 뜻하는 '환상'. 카리스마와 환상의 사전적 의미와 일상적인 의미를 조합해 보면, 예술가나 연예인에게 흔히 붙이는 '카리스마 있다'는 표현은 '신비로운 느낌' 내지는 '베일에 싸인 듯한 매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훤히 들여다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매력을 느끼고 호기심과 호감을 일으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환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같은 상대의 카리스마에 반해 결혼을 결심한다. 상당히 위험한 결정이다. 베일에 싸인 듯한 신비로운 매력은 한순간 석연치 않다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뒤바뀔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는 어느 정도 서로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 정도의 차이만 다를 뿐이다. 인간이란 한 덩어리를 크게 나누면 남성과 여성, 둘로 나뉜다. 이성에 대해서는 당연히 모르는 것도, 궁금한 것도 많을 수밖에 없다. 잘 모르기 때문에 호기심과 환상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은 호기심과 환상만으로도 충분한 이성 교제와는 다르다. 때론 진실한 친구처럼, 때론 모든 걸 받아 주고 감싸 주는 부모처럼, 때론 서로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형제자매처럼 신뢰와 의리가 밑받침되어 있어야 행복한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모르는 구석, 숨기는 구석이 있으면 매력이 넘칠 순 있지만 뼛속까지 신뢰하긴 어렵다. 서로를 싸고 있는 베일은 신뢰와 의리를 좀먹을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카리스마와 환상으로 상대를 홀리고 있다면 순간을 만끽하는 게 좋을 것이다. 환상이 깨지는 순간 사랑이고 신뢰고 의리고 간에 모든 게 그 즉시 와르르 무너지고 말 테니까.

 

 

잠시 혼란에 빠졌을지 모르겠다. 상대가 감추려는 것을 굳이 캐묻지 말랬다가 자신의 모든 걸 투명하게 밝히랬다가, 자칫 일관성 없는 주장 같아 보일 수 있다. 한 가지만 기억하면 간단하다. 자의에 의한 토로가 최선이라는 것. 본인의 속내를 스스로, 알아서, 묻기 전에 먼저 털어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까지는 캐묻거나 보채지 않는 것이다. 돈독한 관계는 자의에 의한 토로를 부르고, 자의에 의한 토로는 관계를 더욱 돈독히 다진다. 친구든 부부든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주어진 친구 선택권, 배우자 선택권만큼은 적어도 이렇게 써먹어야 한다. 석연치 않은 구석에 의혹을 품느라 괜히 마음고생할 필요가 없다. 알리고 싶지 않은 얘기를 낱낱이 밝히라는 강요에 굳이 시달릴 필요가 없다. 어느 누구나 공개와 비공개에 대해서만큼은 친구와 배우자로부터 마땅히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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