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재능 - 완전유결

 

결혼 이후 알게 된 남편과 나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갖는 호감도다. 나는 늘 논리적이고 청결하고 철두철미한 것을 추구하지만, 사람들이 선호하는 타입은 오히려 허술하고 빈틈 많은 그다. 물론 우리가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사기 위해 완벽을 기하거나 일부러 빈틈을 보인 건 아니다. 자라면서 자연스레 굳어진 성향일 뿐이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에 각자가 편한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호감과 비호감이라는 딱지가 붙어 버렸다. 일터에서나 친구들 사이에서나 마찬가지다. 완벽은 환영 받는 것, 빈틈은 구박 받는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을 뒤엎는 결과다.

 

완전무결. '충분히 갖추어져 있어 아무런 결점이 없다'는 뜻이다. 업무나 기계에 있어서는 완전무결이 최상의 조건일 수 있지만, 사람에 있어서만큼은 완전무결보다 훌륭한 것이 '완전유결'이다. 결점이 있어야 진짜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빈틈, 즉 약점은 생각 외로 긍정적인 기능을 한다. 강점을 더욱 빛나게 할 뿐만 아니라, 빈틈 그 자체가 인간적인 매력을 더하기도 한다. 따라서 결점을 무조건 개선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거나 애써 감출 필요가 전혀 없다.

 

완전유결의 대표 연예인으로 나는 종종 김구라를 떠올린다. 김구라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그에 대한 사람들의 호감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지내온 과거, 현재 방송에서 비춰지는 모습과 활동 영역을 통해 완전유결의 면면을 발견할 수 있다. 김구라의 특징은 크게 여섯 가지다. ① 다른 사람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는다. 허를 찌르려는 기세로 팔짱 끼고 삐딱하게 앉아 내내 인상을 찌푸린 채 듣는다. 그리고, ② 허점이 발견되면 예리하게 그 부분을 꼬집어 상대를 몰아세운다. ③ 돈을 좋아한다. ④ 영어권 나라의 문화, 유명인 등에 대한 정보에 밝다. ⑤ 우리나라 각 분야의 실세, 그들의 출신 배경, 학력 등을 꿰고 있다. ⑥ 누군가 김구라의 실수나 과거의 잘못을 들추면 순순히 인정하고 상대의 지적에 동의한다.

 

시청자들이 김구라에게 기대하는 유머는 시원시원한 폭로, 현실적이고 솔직한 입담이다. 이는 MC로서 김구라가 가진 재능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그 재능이 발휘될 수 있었던 건 결점 덕분이라는 데 있다. 그의 독설을 웃어넘길 수 있는 이유, 툭하면 손가락으로 돈을 밝히는데도 공감 섞인 폭소를 자아내는 이유는 과거 인터넷 방송으로 보낸 무명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김구라의 독설은 그의 타고난 성향이다. 도가 지나쳐 지금까지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과거 인터넷 방송도,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여 주고 있는 지금의 캐릭터도, 같은 재능을 발휘한 결과물이다. 대중의 반응이 부정과 긍정으로 엇갈린 것뿐이다.

 

유쾌하고 예리한 독설의 대표 주자로 자기만의 유머 코드를 확실히 굳힌 김구라. 지금의 그의 성공엔 두 가지 결점이 큰 역할을 했다. 첫째는 절대 웃어넘길 수 없는 과거의 막무가내 독설, 둘째는 방송 중 간간이 저지르는 실수다. 과거의 과격한 발언들은 현재 그가 얼마나 점잖아졌는지를 상대적으로 부각시켜서 직설적으로 내뱉는 말도 자극의 강도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 원래 그런 사람이려니 하는 마음에 웬만한 발언은 문제 삼지 않게 되는 것이다. 방송심의위원회 등 객관적인 근거를 들이대는 곳에서는 눈에 불을 켜고 주시할지 몰라도 시청자들은 다르다. 어두운 과거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김구라가 상대의 오류를 지적하고 잘못을 들추는 캐릭터라고 해서 논리적으로나 사실적으로 항상 옳은 말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본인도 실수하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그의 지적은 타당성을 갖는다. 누군가가 본인의 실수나 오해를 지적하면 이를 바로 시인하기 때문에, 상대에 대한 지적도 일리 있게 들리는 것이다. 잘못을 빌미로 상대를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본인처럼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라고 요구할 뿐이다.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를 몸소 보여 줌으로써 타당성과 일관성이 더해진 유머를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 유창한 언변과 최고 수준의 학력을 지닌 똑 부러진 MC가 누군가에게 독설을 퍼붓는다고 생각해 보라. 김구라의 독설이 어두운 과거와 빈틈 덕분에 유쾌하다는 것을 금세 이해할 수 있다.

 

거침없는 막말 탓에 한두 차례 활동을 쉬어야 했던 적도 있었지만, 불미스런 일로 방송을 쉬게 된 다른 연예인들에 비해 성공적으로, 그리고 그리 오래지 않아 복귀할 수 있었던 것도 '바른 생활'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미지 덕분이다. 돈이 우선이라는 등 돈 얘기를 서슴지 않고 꺼내고 각 분야의 실세에 대한 정보를 꿰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여진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강점이든 약점이든 그의 타고난 성향에 기초한 것이라면, 억지로 설정하고 꾸며낸 모습이 아니라면, 듣는 이의 공감과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계산된 지적,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해 계획적으로 시도하는 공격이 아니라, 시청자들의 반응이 어떻든지 간에 본인의 발달된 성향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

 

"보통은 자신의 약점을 외면한다.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들은 약점을 숨기지 않고 강점의 변형인 듯 위장하여 내보인다. 이는 자신의 결점과 약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가능한 일이다." <방랑자와 그 그림자>에 실린 니체의 말이다.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건 결점이 어느 정도인지가 아니라 그 결점을 대하는 자세에 있다는 뜻이다. 김구라의 완전유결도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최근의 활동 중단 사유나 과거의 퇴폐적인 방송 등 자신의 약점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인정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니체의 말에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여 재해석하면 '약점'이란 강점의 변형이 아니라 '강점과 공존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강점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나 다름없다. 없어서는 안 될, 있어서 너무나 다행인 것이 바로 결점인 것이다. 약점을 알고 있으면 강점 또한 분명해진다. 스스로의 강점과 약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강점에 초점을 맞추기만 하면, 결점이 있어 더욱 완벽한 존재로, '완전유결'한 능력자로 거듭날 수 있다.

 

완벽을 추구하는 나보다 적정선에서 상황을 부드럽게 마무리 짓는 남편이 환영 받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점장이자 매장 내 최고 연장자임에도 불구하고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해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일하기 싫을 땐 대놓고 꾀도 부리지만, 모범을 보이겠다며 철두철미하게 원칙을 내세우는 이보다 동료들로부터 더 돈독한 신뢰를 얻고 있다. 매장에서 12시간을 함께 일하면서 일 얘기 외에는 일체 꺼내지도 않고 내내 사무적인 자세를 고수하던 나로선 오르기 힘든 경지다. 단지 리더로서의 존중만이 아니라 끈끈한 인간 관계를 바탕으로 한 훈훈한 팀워크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완전무결한 리더보다 결점이 있어 더 완벽한 리더가 백 배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듯 보이지만 구체적인 상황을 예로 들면 어영부영 말끝을 흐리기도 하고, 자신의 장점을 내세우기보다 이면의 단점을 들어 동료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리더, 원칙보다 동료의 상황을 먼저 헤아리는 리더는 응징과 강요로 무장한 철두철미한 리더보다 동료의 진심 어린 팔로우십을 독려하는 데 훨씬 유리하다.

 

신체적인 결점이 완벽한 수준을 넘어서게 하는 경우도 많다. 스티븐 호킹도 그중 하나다. 호킹만큼 뛰어난 과학자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만큼 감동적인 업적을 선사한 이는 드물다. 21살의 나이에 루게릭 병 진단을 받고도 이후 과학사에 길이 남을 여러 이론을 정립하면서 손에 꼽히는 물리학자로 우뚝 선 스티븐 호킹. 이론의 우수성과 더불어 신체적인 장애와 이를 개의치 않는 그의 삶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교훈을 전하는 핵심 요인이다. 건강한 몸으로 이룬 업적이라면 그를 향한 다수의 지지와 존경이 지금처럼 대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지 없는 인생 (Life Without Limbs)'이라는 비영리 사회단체의 대표인 닉 부이치치도 신체적인 장애를 통해 더 큰 공을 세우고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차례 그의 이야기가 방송으로 전해지면서 꽤 널리 알려져 있다. 부이치치는 양쪽 팔다리가 없는 최악의 신체 조건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지를 돌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명 '행복 전도사'. 아프고 힘들었던 과거사를 늘어놓으며 눈물을 쥐어짜는 감동 대신, 밝은 표정으로 쾌활하게 도전과 가능성을 부르짖는 그의 모습은 완벽한 몸으로는 절대 보여 줄 수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교훈을 선사한다.

 

호킹과 부이치치의 경우 외에도 치명적인 결점이 오히려 완벽 그 이상을 가능하게 한 사례는 스크린이나 언론을 통해 종종 전해진다. 하지만 극단적인 경우에서 느끼는 이질감 때문인지, 그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스스로를 돌이켜 보는 마음은 일시적으로 그칠 때가 많다. 목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뛰어난 인물의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업적을 칭송하고 본받는 게 목적이 아니다. 그들의 정신을 우리의 일상 생활에 적용함으로써 보다 행복해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자면 치명적인 결점과 엄청난 업적이 아닌 '정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자기도 모르게 쏠리는 업적에 대한 관심을 억지로 튼다고 해서 정신에 맞춰지진 않는 법.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사고방식을 전환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우리 부부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호킹이나 부이치치보다 친숙한 김구라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 역시 결점이 있어 더욱 완벽해질 수 있다는 논리를 머리로는 이해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사고방식 자체를 바꿔 놓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스스로 생각해 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자신의 강점은 무엇인지, 그와 동반된 약점은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재능으로 활용할 것인지, 덕분에 어떤 좋은 점들이 있는지 등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감사하고 다행일 수가!'라는 감탄사라 절로 나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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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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