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콤비 - 두 개의 구슬 - 무언

 

남동생의 아내이자 나의 십년지기 친구 올케. 얼마 전 그녀가 두 번째 유산의 아픔을 경험했다. 그녀의 시어머니, 그러니까 내 모친께서 병원에 있는 그녀를 찾았다. 의도는 좋았다. 그녀를 위로하고 아픈 마음을 서로 달래 보고자 이런저런 말들을 건네며, 몸도 마음도 추스를 겸 잠시나마 함께 있자고 제안한 것이다. 며느리의 유산은 시부모에게도 분명 안타깝고 슬픈 소식이다. 그렇다고 그 심적 고통이 과연 본인보다 더할까?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당연히 ''. 설령 특수한 상황이라 시어머니가 더 괴롭다고 해도 당사자가 위로할 입장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가슴 아픈 일을 겪고 난 다음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불편한 일이다. 이럴 때 가장 큰 위로가 되는 건 하나다. 시부모의 무언(無言)!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다. 살갑게 다가와 손도 잡아 주고 위로의 말을 건네 주길 바라는 이도 있을 수 있다. 중요한 건 당사자의 성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본인의 경험에 비추어 상대를 파악할 것이 아니라 상대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어떤 반응을 기대하는지를 먼저 판단하고 위로를 하든 입을 닫든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말이다. 당시 그녀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어떤 위로의 말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조차도 그저 소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그녀를 찾았다 하더라도, 상대가 원하지 않는 방문은 결코 상대를 위하는 일이 될 수 없다. 본인 맘 편하자고 취하는 행동일 뿐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참 풀리지 않는 숙제 같은 관계다. 피를 나눈 부모 자식, 형제자매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택할 수 없다. 시댁과 처가는 반쯤 선택권이 주어진다. 그렇다면 배우자와 친구는? 100% 내 소간이다. 내가 고를 수 있고 관계를 맺을지 말지, 지속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는 환상적인 대상이다. 가족, 시댁, 처가, 직장 동료처럼 내가 어쩌지 못하는 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괴롭다. 오롯이 나에게 주어진 선택권만큼은 그 스트레스를 다 날리고도 남을 만큼 훌륭하게 써먹어야 한다. 배우자와 친구가 그 어떤 인간관계보다 중요한 이유, 신중하게 맺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부, 친구 간에도 '무언'의 미덕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C 군과 J 군은 대학 내내 친하게 지내던 친구 사이다. 졸업 이후 한동안 연락이 뜸하다가 몇 년 만에 C 군이 J 군을 찾았다. 하버드대 작가 연구회원으로 일하고 있다며 본인의 근황을 털어놓는다. J에게 어떻게 지내냐고 묻자, 새로운 일을 맡았는데 공개하긴 곤란하다며 대답을 피한다. C는 재치 있게 받아친다. "뭐야, 일급비밀이라도 되는 거야? 비밀공작원, 뭐 그런 거야?"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라 믿었던 친구, 본인을 만나러 오랜만에 큰맘 먹고 멀리까지 찾아온 친구에게 본인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말하지 않겠다는 J. 공평하지 못하다고, 궁금하다고, 우리 사이가 이것밖에 안되냐고 충분히 다그치고도 남는 상황이지만 C는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대답할 수 없는 J 군이 난처할까 봐 과장한 반응으로 유머를 섞는다.

 

J 군은 미국의 수학자 존 내쉬, C 군은 존이 상상으로 만들어 낸 친구 찰스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 등장하는 일화다. 비록 상상 속의 친구지만 그래서 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생을 통틀어 유일무이한 친구가 상상 속에만 존재한다는 건 실제로 그만큼 존을 잘 이해해 주고 배려해 준, 마음 맞는 친구가 없었다는 뜻이다. 우리의 일상도 다르지 않다. 친구 또는 배우자라는 관계를 빌미로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기 일쑤다. 말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혀도 꼬치꼬치 캐묻고 끝까지 답변을 요구한다. 상대의 입장보다 본인의 궁금증이 더 중요하다는 이기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행태다. 상대를 위로한답시고 내내 주위를 얼쩡거리고, 털어놓고 나면 한결 기분이 홀가분해질 거라며 혹은 자기가 도울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일단 얘기나 들어 보자며 상대를 들쑤시는 것도 모두 이기적인 처사다. 동지로서 영 자격 미달이다. 진정한 친구, 진심으로 사랑하는 배우자라면 묻는 질문에 대답을 피해도 토 하나 달지 않고 순순히 넘어가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믿어 줘야 한다. 서로의 행복이 최우선 목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상상 속의 친구 찰스처럼!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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