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재능 - 세 가지 일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가수로 데뷔한 남매 '악동뮤지션'. 그들의 이야기는 한동안 연예오락뿐 아니라 시사교양 분야에서도 꽤 관심 있게 다뤄졌다. 몽골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부모, 함께 몽골로 건너가 학교가 아닌 집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이들, 가요계의 실세는 물론 학자들까지 인정한 아이들의 실력과 창의성. 우리나라 부모들이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한 얘기다.

 

악동뮤지션 부모의 교육 방침 중 흘려듣기 아까운 한 가지가 있다. 다음은 부친의 발언이다.

 

"사람에겐 하고 싶은 일, ② 할 수 있는 일, ③ 해야 하는 일이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 일이 무엇인지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해야 하는 일이다."

 

어느 위인의 명언보다도 새겨들을 만한 말이다. 꼭 자녀를 둔 부모가 아니더라도, 본인의 진로를 결정할 때 스스로 세 가지 일에 대해 생각해 보면 큰 도움이 된다. ① 하고 싶은 일이란 타고난 본인의 재능과 연결된다. ② 할 수 있는 일은 지금이 아닌 앞으로를 말한다. 사회적, 현실적 여건상 지속 가능한 일인지, 본인이 앞으로 갖추게 될 실력 및 자격, 신체적 조건 등에 적합한 일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③ 해야 하는 일은 '오늘' 해야 하는 일을 말한다.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려면, 지금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단순한 말장난 같지만 여기에는 주목할 만한 가치관이 숨어 있다. 첫째, 타고난 강점을 최우선으로 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는 직업, 사회에서 요구하는 이력,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가장 먼저 생각해 보라고 충고하고 있다. 타고난 재능과 관심사를 기준으로, 즉 본인을 중심으로 본인의 미래를 결정하고 준비하라는 것이다.

 

둘째, 결정권을 본인에게 넘긴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남다르다. 하고 싶은 일은 누구보다 본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마련이다.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부모나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할 수 있지만, 하고 싶은 일은 전적으로 본인이 판단할 문제다. 본인이 선택한 진로인 만큼 그 결정에 대한 책임도 본인에게 있다. 요구되는 자격 및 실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도 본인의 결정에 뒤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제삼자가 나서서 의무화하거나 감독할 필요가 없어진다. 어떤 분야를 더 열심히 공부하라거나 어떤 시험에 통과하라는 식의 구체적인 압력을 가할 때와는 달리, 분명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훨씬 더 큰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자의(自意)의 힘이 발휘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꿈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같은 일도 더 즐겁게, 더 능률적으로 해 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셋째,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본인도 몰랐던 자신을 재발견하고 구체적, 창의적으로 진로를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직업이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진로를 고민하고 계획하는 사람들은 애나 어른이나 몇 가지만을 제한적으로 떠올린다. 고작 50개 내외의 직업을 두고 그 안에서 본인의 길을 찾는 수준이다. 하고 싶은 일에 초점을 맞추면 기존의 직업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직업 또는 분야를 개척할 수 있다. 본인이 즐기며 잘할 수 있는 일, 거의 맞춤형 일자리나 다름없기 때문에 성과는 당연히 훌륭할 수밖에 없다.  

 

 

K 씨의 얘기다. 명문대 유망 학과 출신인 그는 대기업에 취직한 지 10여 년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돌연 장사에 뛰어든다. 타고난 숫자 감각, 돈을 좇는 성향, −전혀 부정적인 게 아니다. 돈을 불리는 데서 즐거움을 얻는 개인의 성향일 뿐이다.− 그리고 회사에서 배운 유통업 노하우를 바탕으로 슈퍼마켓을 오픈한다. 부지런히 발로 뛰어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취급하는 품목의 특성상 마진이 적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으로 눈을 돌린다. 판매가가 원가의 10배를 넘지 못하는 생필품에 비해, 패션 명품은 브랜드의 힘으로 수십에서 수백 배까지 판매가를 높게 책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구미가 당긴다. 타고난 숫자 감각과 돈을 좇는 성향이 그의 진로를 틀게 만든 것이다. 결국 패션 소품 노점상을 시작으로 의류 브랜드를 창설, 현재 회사의 대표로 유통 마진을 톡톡히 챙기고 있다.

 

그는 행복한 사람인 동시에 성공한 사람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회사의 소유주, 거액의 자산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타고난 재능을 살려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새롭게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기존의 직업에서는 얻을 수 없었던 만족감을 본인 스스로 분야를 개척함으로써 충분히 만끽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패션 브랜드를 론칭하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그의 행복 역시 브랜드 출시자라는 타이틀에 있지 않다. 그가 만든 브랜드만의 특성, 수익 구조, 정립한 회사의 체계에 있다. 시장에서 10년 이상 살아남는 패션 브랜드는 대개 디자이너나 기업측에서 출시한 것들이다. 디자인 또는 자본의 힘으로 생존하는 것이다. K 씨의 브랜드는 다르다. 유통 기술이 핵심 노하우다.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이자 하고 싶어 하는 일이기도 하다. 막강한 자본력, 전문적인 디자이너 영입으로 성공했다면, 그의 만족도는 분명 지금만 못했을 것이다. 본인의 회사를 의류 회사보다는 유통 회사로 여기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K 씨가 유통 기업을 거쳐 슈퍼마켓을 운영하다 패션 브랜드를 론칭한 건 우연도, 필연도 아니다. 전공은 유통과도, 의류와도 무관하다. 본인이 원하는 것을 끈질기게 추구해 온 의지와 이를 정확하게 파악한 그의 통찰력 덕분이다. 명문대 출신을 무기 삼아 그저 안정적이고 허울 좋은 직업을 유지하는 쪽을 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타고난 재능과 성향을 중심으로 본인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일을 찾고자 했다. 그가 이룬 행복한 성공은 사회적 인식이나 평가가 아닌 본인의 만족감을 최우선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한 교육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업은 비공식적인 것까지 포함해 총 2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의대는 의사, 법대는 변호사나 판검사, 이렇게 진로와 직업을 국한시키고 그 안에서 자신의 길을 찾는 것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때 오히려 더 자신에게 꼭 맞는 일을 찾을 수 있다. 좋아하는 것을 즐겨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뚜렷한 목표 의식이 생기기 마련이다. 악동뮤지션도 마찬가지다. 남매는 가수가 되기 위해 작곡을 배우거나 노래를 연습하지 않았다. 집에 있는 기타와 피아노를 장난감 삼아 가지고 놀다 보니 실력이 늘고, 나아가 창작까지 하게 된 것이다. 부모 앞에서 늘상 부리던 재롱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선보였을 뿐이고, 작곡가에게 곡을 받고도 멈출 수 없는 곡에 대한 욕심이 작곡가와의 동반 편곡을 부추겼을 뿐이다. 이렇게 남의 강요나 본인의 치밀한 계획 없이도 타고난 재능에 집중하고 투자하면 자연스레 길이 열리는 법이다.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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