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콤비 - 강약의 하모니 - 취미 생활

 

우리 부부의 취미는 '술판'이다. 고상하게 와인이나 칵테일 종류를 떠올렸다면 기대를 저버려 유감이다. 그냥 소주다. 나는 이 취미가 꽤 자랑스럽다. 단둘이 술을 마신다는 건 둘만의 대화 시간을 갖는다는 얘기다. 약간 풀어진 채로. 속일 것도, 숨길 것도 없다. 단순하고 명쾌하게 오픈한다. 강요는 없다. 장소는 주로 집이다. 편하게 즐길 수 있어서다. 안주는 사다 먹거나 시켜 먹을 때보다 만들어 먹을 때가 더 많다. 정확히 구분하면 남편의 취미는 요리하고 술 마시기, 내 취미는 남편이 만든 요리에 술 마시기다. 사실 결혼 전부터 자주 해 오던 짓이다. 그러다 얼마 전 정식으로 '취미'란 이름을 붙이면서 살짝 업그레이드했다. 좀 더 그럴 듯한 요리를 만들어 그에 어울리는 술을 곁들이는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술판이긴 마찬가지지만, 둘이서 나누는 대화 외에 한 가지 재미가 추가됐다. 남편에게는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보는 재미, 나에게는 원하는 메뉴를 고르고 완성된 메뉴를 편안하게 집에서 즐기는 재미. 남편은 결혼 2년 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요리를 시작했다. 현재 조리직 경력 5년 차. 전문 학위나 자격증은 없다.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쌀국수 및 일본 라멘 프랜차이즈 점장을 지냈다. 요리하기를 좋아해서 시작한 일이지만, 남편은 자신이 주방에서 하는 일을 '찍어내기식 공장 업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프랜차이즈 조리직이 그렇단다. 소스를 비롯한 웬만한 식자재가 가공된 상태로 배달되고 본사가 정해 놓은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야 하기 때문에, 요리라기보다는 즉석식품에 가깝다는 것이다. 여전히 요리에 대한 갈증이 남아 있던 그는 이를 평소 집에서 해소한다. 제육볶음, 찜닭, 월남쌈 등이 단골 메뉴다. 취미라는 타이틀을 걸고 나서는 육개장, 연포탕, 또띠아, 크림스파게티 등 새로운 메뉴에 도전하고 있다.

 

반대로 나는 요리에 전혀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기 때문에 실력도 엉망이다. 인터넷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고들 하지만 필요성을 못 느끼는 데다가, 사실 봐도 영 모르겠다. 잘 모르고 즐기지 않는 분야에 대해서는 정보 습득 능력도 저조한 법이다. 블로그 중 으뜸인 주제는 단연 요리다. 숱한 요리 블로거가 파워블로거로 등극하는 이유는 요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결혼 초 남편에게 깜짝 이벤트를 선물하기 위해 한두 번 찾아보긴 했지만, 봐도 못한다는 걸 알고 나서는 그 뒤로 요리 블로그에서 레시피를 찾아본 적이 없다. 집들이 등의 이유로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아마 '레시피'가 아닌 완성된 요리를 파는 '쇼핑 사이트'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봐도 모르는 나는 안 봐도 아는 그가 그저 신기할 뿐이다. 남편은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신비로운 능력의 소유자다. 놀라운 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요리하는 게 재밌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게다가 한 번도 만들어 보지 않은 음식에 도전하는 게 더 재밌다는 것, 레시피를 단 몇 초 간 훑어보고는 뚝딱뚝딱 만들어 내는 것도 볼 때마다 놀랍다. 마지막이 관건이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먹는 나를 보면 기쁨이 두 배란다. 요리를 즐기는 사람들 대부분이 누군가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다고 말한다. 노력을 들인 만큼 결과에 대한 기대치를 갖기 마련이라는 정도로,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다. 어차피 나는 평생 느껴 보지 못할 희열감이다. 나는 내 역할에 충실한다. 맛있게 먹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내가 만약 음식 솜씨가 있다면 어땠을까? 아마 남편은 지금처럼 요리가 즐겁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아예 집에서는 요리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주방장들은 대부분 남자다. 한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아무리 요리를 잘하고 좋아하는 일류 요리사들도 집에서는 전혀 하지 않는다는 사실. 추측컨대 아내들이 어느 정도는 요리를 할 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애써 준비한 음식에 대해 재료 고유의 맛이 사라졌다느니 뭐를 너무 많이 익혔다느니 하면서 토를 달면, 흥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요리의 이모저모를 평가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도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하려야 할 수도 없는 일이다. 내가 문외한이기 때문에 그의 능력이 더 빛을 발한다.

 

상대가 만든 음식이 완벽해도, 혹은 상대의 기분을 고려해 굳이 토를 달지 않아도, 아예 모르는 사람보다는 상대를 기쁘게 하지 못한다. 남편을 기분 좋게 하는 건 내가 느끼는 두 가지 감정 때문이다. '맛있다' '대단하다'. 요리 자체도 놀라울 만큼 맛있지만 더 놀라운 건 그 요리를 만들어 낸 그의 재능이다. 말 그대로 혼자 먹기 아깝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맛볼 기회가 주어졌음 싶다. 그의 강점은 그에겐 어렵지도,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일이지만 나에겐 신이 내린 재능 같다. 음식 솜씨가 있는 사람이라면 상대를 배려해 칭찬은 할 수 있어도, 놀라운 능력이라며 진심에서 우러나는 감탄사를 연발할 순 없다.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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