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빈곤감

○○이 개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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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 결혼이 방해하는 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배우자 덕에 번지르르한 아파트에 살게 되어 꿈을 이뤘다 싶은가? 그렇다면 당분간이나마 마음껏 누리시길. 미안하지만 그 꿈은 얼마 못 가 반납하고 싶은, 더럽고 치사한 족쇄가 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 지인의 이야기다. 그녀는 한마디로 사람들이 말하는 '시집 잘 간' 여자다. 시가도 잘살고 남편 직장도 빵빵하다. 집값 비싸기로 유명한 동네에 번듯한 신혼살림을 차렸다. 남편의 오랜 구애 끝에 결혼한 그녀. 결혼 전 관계도 있고 하니, 그녀의 인생은 백마 탄 왕자와 함께하는 공주일 것 같았다.

 

현실은 달랐다. 꿈의 궁전은 시댁의 코앞에 있었다. 걸핏하면 시댁에서 식사를 함께해야 했고, 시부모도 신혼집에 거리낌 없이 자주 드나들었다. 남편은 그녀보다 3살 위. 둘 다 많은 나이는 아니었지만, 시가에선 하루빨리 손주를 보고 싶어 했다. 자상하고 고상한 시부모. 임신에 대한 바람은 아무리 품위가 있어도, 아무리 우아하게 표현해도, 받아들이는 며느리 입장에선 그저 압박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막무가내 시어른은 '자각'은 한다. 고품격의 시어른은 본인이 며느리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본인은 우아하니까! 답이 없다.

 

어느덧 허울 좋은 삶에 익숙해진 그녀. 그녀가 기댈 만한 건 '허울'뿐이다. 겉보기에 그럴 듯한 삶이나마 그녀에게 위안이 된다. 눈치 보던 그녀를 구제하기 위해 하늘이 돕는다. 드디어 임신에 성공. '고민 끝 행복 시작'을 다시 한번 기대한다. 사랑스런 딸이 태어났다. 아들딸 가리지 않는다던 고상한 시부모는 둘째에 대한 바람을 내비친다. 한 번 더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수밖에.

 

나만의 감사 대상

 

내 관점에서는 최악이지만, 그녀는 실제로 행복할지 모른다. , 동네, 경제 사정, 남편 허우대, 모두 멀쩡하다. 허나 지인일 뿐인 그녀의 행복은 내 관심 밖이다. 관심은 오로지 '나와 같은 인생관을 가진 사람들의 행복 여부'에 있다. '그녀' 같은 주변의 누군가를 보면서 괜한 상대적 빈곤감에 괴로워하는 이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과 여건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기준으로 자기 인생을 바라봄으로써 상처 받는 불상사를 막고 싶다.

 

사소한 에피소드에도 철학을 대입하는 습관이 있다. 참 돈 안 되는 습관이지만, 행복에는 무엇보다도 도움이 된다. 무언가를 얻는 것은 마냥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반드시 잃는 게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재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승부욕이 강한 사람은 승리할 확률이 높은 반면, 여유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 어떤 것도 이 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녀와 여러 가지 삶의 조건을 바꿀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무조건 사양이다. 남편과 함께라도 마찬가지다. 그 조건들은 지금 내가 가진 행복의 요소를 망쳐 놓을 게 분명하다. 일단 임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시부모가 원하기 때문에 무조건 아기를 낳아야 한다? 100억이 떨어진다고 해도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런 간섭이 전혀 없는 현재 내 상황은 '상대적 충족감'을 주고도 남는다.

 

결혼 7년째. 시부모님은 우리 집에 오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계획도, 마음도 없으시다. 친정 부모님은 두어 번쯤 들렀다. 당연히 정식 초대는 없었다. 뭔가를 실어다 주거나 실어 가기 위해 들른 게 전부다. 시부모의 방문율 제로. 보통은 이런 상황을 특이하다고만 여긴다. 내가 가진 소중한 자산이자 감사할 대상이라고 보진 않는다. 감사는 '허울'에 대해서나 할 수 있는 것이라 믿는다. 남들의 생각에 수동적으로 이끌리는 어리석은 짓임은 깨닫지 못한 채.

 

다행히, 감사하게도, 나에게는 '주어진 것'을 누릴 줄 아는 현명함이 있다. 누구나 이를 공유하고 자기 삶을 만끽할 수 있다고 본다.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고 있다면, 분명 상대적 충족감도 느낄 수 있다. 모든 현상에는 양면성이 따르기 때문이다. 무언가에 대한 값 지불이라고 생각하면 아까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다.

 

나를 아는 것이 행복의 첫걸음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사항이 있다.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인생관을 가지고 나처럼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각자의 기준과 목표에 맞게 살아야 한다. 다만 자기가 원하는 게 아닌, 다른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괜찮은 인생이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본인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꿰뚤어 봐야 '절대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물질적인 풍요가 자신을 가장 만족시킨다면 이를 위해 비교적 덜 중요한 것들은 다소 빈곤해도 괜찮을 것이다. 진심 어린 고부 관계, 존재 자체만으로도 기쁨이 되는 배우자, 사랑스런 자녀, 가족의 건강, 종교의 자유 등. 물질적인 것에 매달리는 건 나쁜 게 아니다. 본인이 진정 원하는 바라면 오늘, 자유, 건강을 희생하며 부를 좇는 건 행복일 수 있다. 불행은 남의 기준을 자기 삶에 대입할 때 닥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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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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