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 빈곤감

프롤로그

 

집 얘기가 나온 김에 짚고 넘어가자. 결혼 시 남자가 준비하는 집과 여자가 준비하는 혼수. 여기에도 다른 시각은 적용 가능하다. 말로만 읊어 대는 개똥철학은 '가라'! 실제 집과 혼수에 '' 원을 들여 살고 있는,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할 만큼 행복한 부부가 있다. 집과 혼수를 뺀 결혼은 괜찮은 정도가 아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쯤 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 결혼을 사회적 지위 상승, 경제적 수준 향상의 수단으로 여기는 이들은 전혀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목적이 행복한 결혼 생활에 있는 이들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다.

 

○○이 상팔자

 

''

 

집과 혼수는 쌍으로 논다. 한쪽만 있어도 문제, 수준 차이가 나도 문제다. '수준'을 맞추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객관적인 기준도 없을 뿐더러, 추후 가격 변동까지 합세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기호, 양쪽 집안의 경제 사정까지 감안하면 양가 모두가 만족한 사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흔히 '간소화하자'는 제안이 오간다. 집과 혼수에 얽힌 주변의 고충을 익히 들어서다. 안타깝게도 간소화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화를 돋군다. '간소하게 하자기에...'라는 말머리를 붙이는 순간 기본, 무시, 개념 등의 아슬아슬한 단어를 듣게 된다. 아예 ''로 가지 않는 한 마찬가지다.

 

동거

 

2006 7, 우리 부부는 동거를 시작했다. 내가 사는 월셋집에 남편이 칫솔과 양말 몇 짝을 들고 들어왔다. 대환영이었다. 당시 밤 10~12시에 퇴근하는 의류 매장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 오면 안주를 만들어 놓는 남편이 더없이 기특했다. 부모의 동의는 없었다. 여지없이 들통이 났다. 그럴 거면 결혼하라기에 그러기로 했다. 그 주 주말에 상견례, 바로 그날 식장 예약, 다음 달에 곧바로 결혼식을 올렸다.

 

준비할 시간은 필요 없었다. 그저 살던 대로 살면 됐다. 부모님의 성화가 아니었어도 둘이 계속 살 생각이었기 때문에 생각이나 입장이 달라질 것도 없었다. ''마저도 없이 가고 싶었지만, 결혼식은 우릴 위한 행사가 아니란 걸 알고는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었다. 부모님의 바람에 부흥하기 위해 단 하루 ''만 치르고 그전처럼, 아니 그전보다 더 마음 편히, 그리고 당당하게 '허락 받은 동거'를 시작했다.

 

혼자 사는 원룸에는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이미 다 있었다. 냉장고, 세탁기, 침대 등등. 추가로 필요한 건 이미 남편이 가지고 들어왔다. 칫솔과 양말. 부모님과 함께 살던 경우가 아니고는 집과 가구, 전자제품을 새로 사야 하는 이유를 정말 모르겠다. 새로운 기분으로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면 '혼인신고'를 권한다. 혼인신고는 단순한 서류상의 변화만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물질들을 갈아치워야 느낄 수 있는 신선함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뜨끈한 감동을 경험할 수 있다. 성대한 결혼식도 주지 못하는 '감격'이다.

 

결혼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우리 부부는 집과 혼수 문제로 갈등을 빚을 일이 없다. 집을 안 해 오면 혼수를 할 필요가 없다. 혼수를 할 필요가 없으니 집을 안 해 오는 게 완전 땡큐다. 지금도 친정에 이렇게 당당히 말하곤 한다. "나 결혼할 때 돈 한 푼 안 들어서 좋았지? 그게 다 남자 쪽에서 집을 안 해 왔기 때문이잖아. 얼마나 잘된 일이야?" 실제 나의 생각이다. 만약 그가 몇 억짜리 집을 장만했다면, 모아 둔 돈 없는 나는 엄마 아빠의 몇 천만 원을 뜯어내야 했을 것이다.

 

남자 쪽에서 집을 장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예비 신부들에게 들려 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 그 집이 좋으면 좋을수록, 비싸면 비쌀수록 신부는 평생을 시댁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정신적, 육체적으로는 물론이고, 경제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신부의 경제적 능력이 신랑보다 뛰어나도 친정보다 시댁에 더 많은 돈을 갖다 바쳐야 한다. 신부가 해 간 혼수는 집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아들에게 집을 사서 들려 보낸 시가는 이를 당연시한다. 값 지불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돈이면 위아래도 없고 웃어른을 못 알아봐도 괜찮다는 얘기가 아니다. '사랑과 전쟁'에 등장하는 막장 스토리가 아니더라도 돈은 미묘하게 관계를 자극한다. 가장 쉬운 예로, 결혼 후 남자가 변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자. 그들이 갑자기 당당해지는 건 연애 당시 쏟아부은 '데이트 비용' 때문이다. 거부하는 성관계를 강요할 수 있는 것도 집 장만이라는 엉뚱한 이유를 갖다 붙여서다. - 이는 지금까지의 직간접적 경험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이다. 혹 다른 사례가 있다면 알려 주기 바란다. 아닌 사례가 있는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결국 집과 혼수는 쌍으로 움직이는 데다가 균형을 맞추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골칫거리밖에 안 된다는 결론이 난다. 그 골칫거리들을 왜 굳이 장만하고 주고받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것도 오간 게 없는 우리 부부는 서로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것, 딱 그 이유 하나로 서로의 부모에게 감사하고 그분들을 존중한다. 이보다 더 이상적인 관계가 있을까? '관계'에서 돈이 빠지면 진심만 남는다. 진심으로 대하는 관계는 삐걱거릴 일이 없다.

 

집과 혼수가 필수인 지금의 대한민국이 우리 부부에게 선사하는 보너스가 있다. 아무것도 해 보내지 못한 양가 부모의 '유감'이다. 50년대에 태어난 부모님들은 우리보다 구식일 수밖에 없다. 사회 전반적인 인식과 방식에 초연하지 못한다. 사정상 남들이 다 주고받는 집과 혼수를 빼먹은 게 못내 안타까운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결혼 이후 수시로 부모의 도움을 감사히 받으며 산다.

 

홈쇼핑에서 파는 것처럼 끓이기만 하면 되는 1인분씩 포장된 냉동 삼계탕부터 자동차 기름까지, 뭐든 주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을 남김 없이 챙긴다. 사실 7년 간 받은 것만 합쳐도 집 하나쯤 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도 그분들은 더 주지 못하는 걸 늘 아쉬워한다. , 혼수, 예단으로 자기 할 도리 다했다는 태도보다 백 배는 더 훈훈하고 든든하다. 양쪽 집안끼리도, 서로의 부모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물질이 오가지 않은 결혼 덕분이다. 당시의 현명한 선택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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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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