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은 잡히지 않았다

 

그놈 목소리

 

2007년 개봉한 <그놈 목소리>. 네티즌·전문가 평균 6점대의 중하위 평을 받고 있지만, 볼 때마다 울분을 자아내는 영화다. 실화 '이형호 유괴 살해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져서다. 실제 납치범은 1991 1 29일 형호 군을 납치, 2006 1 29일 공소 시효가 만료될 때까지 검거되지 않아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다. 형호 군은 유괴 이후 44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되었다. 수사 당국은 사체로 미루어 유괴된 직후 살해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해당 사건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2011-05-21)에서 '대한민국 3대 미스터리-아직도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타이틀 아래 재조명되기도 했다. 60여 차례의 전화통화와 10여 차례의 쪽지에도 불구하고 끝내 범인을 추적하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이 영화와 방송을 통해 전해졌다.

 

'이형호 유괴 살해 사건'에서 당시 형호 군의 모친은 새엄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 <그놈 목소리>가 실로 안타까움을 더하는 이유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면서 새엄마를 친엄마로 설정하되 우리 사회 '엄마들'이 간과하기 쉬운 '행복의 조건'을 생각해 보게 하기 때문이다.

 

상우네는 평범하지만 비교적 '잘사는' 집이다. 집은 압구정동, 가장인 상우 군(9)의 아빠 한경배(설경구 분)는 잘나가는 9시 뉴스 앵커다. 유일한 걱정거리라면 상우의 비만. 엄마 오지선(김남주 분)의 일과는 대부분 상우의 비만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으로 채워진다. 엄마의 극성 탓에 상우는 하루 종일 바쁘다. 집에서는 윗몸일으키기, 밖에서는 런닝머신, 침 시술, 학교를 마치면 아파트 계단으로 집에 오른다. 현관문 앞에 도착해서는 엄마가 준비한 물 한 잔으로 갈증을 해소한 뒤, 이내 다시 내려가 줄넘기를 뛰어야 한다. 아침밥도 엄마 아빠랑은 다른, 상우만을 위한 식단으로 차려진다. 누가 봐도 꼼꼼하고 세심한 엄마상이다. '공부', '1'을 외치는 엄마보다는 자식의 '건강'을 위해 부지런 떠는 엄마. 가상하다. 적어도 '유괴'라는 비극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그렇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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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목소리

 

상우 군이 사라진 후 지선은 범인의 지시에 따라 한 건물로 올라간다. 계단을 오르면서 문득 상우 생각이 난다. 상우는 토로했다. '난 계단이 싫어. 계단만 보면 토할 거 같애. 줄넘기도 정말 싫어.' 지선의 가슴을 쥐어짜는 기억이다. 지선은 사라진 상우를 향해 반복한다. 미안하다고. 지선이 계단을 같이 오르고, 같이 내려가 줄넘기하고, 나란히 런닝머신을 뛰었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지금보다는 아주 조금이나마 덜 미안하고 가슴 아프지 않았을까? 우리네 어른들이 범하는 실수는 아이들을 '교육시킨다'는 점이란 걸 새삼 깨닫는다. 교육을 '시키는' 것과 '하는' 것은 다르다. 책을 많이 읽으라고 교육시키는 것보다 책을 많이 읽는 모습을 직접 보여 주는 것이 더 큰 교육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음은 이미 여러 차례 실험을 통해 증명된 바 있다. 보다 유쾌하게 건강을 되찾아 주고자 노력했다면, 스스로 체중 감량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실생활을 개선할 수 있도록 애썼다면 어땠을지, <그놈 목소리>를 통해 생각해 보게 된다. 함께 했다면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해 '회한'으로 남는 것들.

 

잘나가는 뉴스 앵커 경배 역시 비극이 벌어지고 난 뒤에야 자신을 돌이켜본다. '생각해 보면 칼만 안 들었지, 사람 참 많이 죽이고 살았다. 사람들이 나보고 니가 검찰이라도 되냐고 따져 물었다. 그땐 나도 내가 하나님이라도 되는 줄 알았다.' 시청자와 국민을 위해 방송국 기자로서, 그리고 앵커로서 수년 간 불의를 고발하며 정의를 위해 일해 왔다. 스스로 폼나는 인생이라 생각했다. 상우를 잃은 지금, 그때의 자만과 허영심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 절감한다. 그는 제일 후회되는, 미치겠는 게 '아빠랍시고 해준 것도 없고 놀아주지도 못한 거'라 털어놓는다. 거창했다. 수천 건의 비리 고발은. 그러나 국민보다 더 자신을 필요로 했을 아들에게는 정작 해준 것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상우에 대한 안타까움은 그의 아지트를 담은 장면에서 고조된다. 집에서는 먹을 수 없는 군것질거리. 상우는 아지트에 잔뜩 모아 두고 그곳에서 스트레스를 푼다. 경찰이 발견해 내기 전까지 엄마 아빠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지선은 스스로를 꼼꼼하고 철두철미한 엄마라 자부했다. 아들의 건강을 위해 누구보다 주의를 기울였으니까. 그런데 정작 상우는 엄마의 '관리'에 형식적으로 따를 뿐이었다. 집 밖에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어 두고 거기서의 시간을 즐겼다. 엄마가 시킨 대로 줄넘기를 마친 상우는 놀이터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다. 집이 좀 더 편안하고 이해해 주는 곳이었다면, 집에서도 얼마든지 군것질이 가능했다면, 그네에 앉아 초콜릿을 먹다 실종되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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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목소리

 

<그놈 목소리>는 기독교에도 날을 세우고 있다. 상우를 찾아 헤매다 길에 쓰러진 지선. 지선을 누인 침대 주위에 너댓 명의 목사와 교인들이 둘러앉아 있다. 목사의 지휘 아래 찬송, 기도가 이어진다. 이때 목사의 기도 내용이 심히 거슬린다. '저걸 말이라고 하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거실에서 과거 자신의 허영을 드러내는 트로피와 감사패 따위를 박스에 쑤셔 넣던 경배. 당연히 듣고 있기 거북했다. 보다 못한 경배는 방으로 뛰어들어가 목사와 사람들을 내쫓는다. 목사의 기도는 이렇게 시작됐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희를 사랑하사, 저희에게 내려주신 이 고난과 시련도 감사드립니다. 이제 주님께서 이 고난과 시련을 극복할 힘과 용기를, 그리고 믿음을...' 정말 개념 없는 기도다. 기도를 하려거든, 상우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부모의 간절한 마음을 좀 더 깊이 헤아렸어야 했다.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목사의 기도는 필요 없다. 내쫓길 만하다.

 

어린이 유괴 사건을 다룬 영화는 종종 눈에 띈다. 최근 개봉한 <몽타주>도 그 중 하나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놈 목소리>가 유난히 가슴 깊이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실화를 극화했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영화를 만드는 데에는 여러 가지 목적이 복합적으로 숨어 있다. 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서. 해당 사건에 대한 여론을 불러일으키고, 관계자들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서. 사건 전개상 관객들이 흥미를 가질 만해서. <그놈 목소리>는 피해 아동 이형호 군의 비극을 엄숙히 되새기는 데 성공했다. 2007년 개봉 당시 한 TV 시사프로그램에서 '아동 범죄 공소 시효 폐지'를 주제로 다룰 만큼 여론 조성과 관련 규정 재고에 기여한 것이다.  끝내 잡히지 않은 범인에 대한 전국민적 울분의 목소리를 높인 결과다. 한때 '이형호 유괴 사건'은 미제로 남아 수사 기관은 물론 국민들 사이에서도 잊혀질 뻔했지만, 영화로 제작되면서 그 가족이 겪어 온 고통을 위로하는 개인 및 언론의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관련 법 개정도 2007년 이후 거의 매년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전문가들과 함께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범인은 한 명의 주범과 두 명의 공범이 가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형호 군의 형제 관계 및 형호네 경제적 수준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면식범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사체를 형호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유기한 것은 돈만이 목적이 아니었음을 짐작케 한다. 결국 주범은 형호 군 부친에게 일종의 감정을 가진 면식범으로, 직접 전화를 걸 경우 목소리를 통해 정체가 드러날 위험이 있었던 자다. 44일 간 거의 매일 전화를 걸어 온 목소리의 주인공, 즉 공범은 성문 분석 결과 당시 20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22년이 흐른 지금, 공범의 나이는 50세 전후로 볼 수 있다. 다른 한 공범은 위치 및 상황을 보고할 뿐 단서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다. 형호 군의 가족은 물론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들은 여전히 범인에 대한 추적을 계속하고 있다. 공범 1인의 목소리,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은행을 방문했을 당시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작성한 주범의 몽타주. 우리가 각자 자기 자리에서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두 단서를 놓지 않고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노출시키는 일일 것이다.

 

<범인의 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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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의 목소리>

 

<범인의 몽타주>

 

      소리 뒤에 굴 | 2011-05-21 | 알고 Link 

      동(년자) 정 [행 2013. 4. 5] Link

 

 


그놈 목소리 (2007)

Voice of a Murderer 
7.5
감독
박진표
출연
설경구, 김남주, 김영철, 강동원, 송영창
정보
드라마 | 한국 | 2007-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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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메시지 MONZAQ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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