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킹> 2004년 영국에서 제작, BBC를 통해 방송된 영화다. 'Although some scenes and dialogue have been invented, this is based on actual events, scientific papers and public records.' 영화 서두에서 알리는 바와 같이, <호킹>은 실제 사건, 관련 논문, 언론상의 기록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물론, 일부 장면 및 대사는 가공을 거쳤다. 런닝 타임 90. 영화는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3년 여에 걸친 대학원 시절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당시는 호킹이 '루게릭 병' 진단을 받은 이후 '시간의 시작점' 연구에 매진하던 때다. 내향(Introverted), 이론(Abstract 또는 Intuition), 사고(Thinking)와 판단(Judging) 영역이 발달한 INTJ 스티븐 호킹. 영화에 드러난 그의 학자로서의 면면을 살펴봤다.  

 

인간으로서의 생명과 학자로서의 생명

 

준비와 통제

 

스티븐 호킹은 1942 1월 생이다. 영화는 1963 1, 호킹의 21번째 생일 파티를 시작으로 전개된다. 호킹은 파티에 초대한 여자친구 제인과 함께 집앞 잔디밭에 드러누워 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잠시 후 제인은 안으로 들여가기 위해 일어서지만, 호킹은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곧 병원으로 옮겨져 갖가지 검사를 받는다. 최종 진단은 '루게릭 병(근위축증)'. 의사와 호킹의 대화다.

"운동신경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뇌의 운동뉴런은 몸이 움직이도록 신호를 보내는데, 그게 죽어가고 있어요. 뇌는 더 이상 근육에게 운동 명령을 내리지 않겠죠. 신호를 전달 받지 못한 근육은 쓰일 일이 없게 되고, 쇠약해질 겁니다. 천천히."

"얼마나 천천히요?"

"점점... 마비되는 겁니다."

"그럼... 그럼, 그 다음에는요?"

"호흡근은 다른 근육과 달리 무의식적으로 움직입니다. 호흡근은 쉽게 약해지지 않죠."

"그래도... 그래도 결국엔, 그것도 약해지겠죠?"

"맞습니다."

"그럼, 숨을 제대로 쉬기 어려워지고... 그러다 결국, 숨을 아예 못 쉬게 되겠네요. 익사처럼..."

의사가 돌아선다.

"뇌는요? 뇌 자체는 어떻게 되죠?"

"뇌는 그대로일 겁니다. 뇌는 손상되지 않아요."

 

대화는 호킹의 두 가지 특징적인 면을 보여 준다. 하나는 '얼마나 천천히 근육이 약해지는지'를 묻는 대목이다. INTJ는 정확성을 추구한다. '천천히 약해진다', '조금만 기다려라', '금방 된다'는 식의 표현은 영 개운치가 않다. 설령 결과가 사전의 예고와 달라진다고 해도, 대략의 '길이'를 알고 싶다. '1~2년 만에 약해진다'거나 '30분쯤 기다리라'거나 '10분이면 끝난다' 등 수치로 표현된 '기간'을 신뢰한다. 나는 INTJ로서, '병원 진료 대기 시간'에 이러한 불편함을 느낀다. 접수 창구인에게 '얼마나 기다려야 되는지'를 물으면, 그들은 흔히 '금방' 또는 '조금'이란 표현을 동원한다. '몇 분 정도'인지를 재차 물어도, 이해할 수 없게도, 그들은 같은 표현을 고집한다. 답답하기 그지없다. 이제는 '수적 표현에 집착하는 나''뭉뚱그린 표현에 집착하는 그들'의 성향이 다르기 때문임을 알기에 이해할 수 있지만, 그전에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일 중 하나였다. 여기에는 상황을 예측·통제하고자 하는 성향도 반영된다. 앞으로의 상황을 보다 정확히 파악함으로써 전개될 미래를 준비, 계획하려는 것이다. '막연함'은 불안과 공포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학자의 생명

 

호킹의 마지막 질문도 인상 깊다. 의사는 '운동 신경에 문제가 생겨 근육이 약해질 것'이라는 소견을 전했다. 당시 호킹은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케임브리지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 '인간으로서의 한계'에 직면한 순간, 호킹은 무엇보다 '학자로서의 가능성'을 궁금해 했다. 그 가능성은 ''에 달렸다. 호킹에게 있어 '학자로서의 생명' '인간으로서의 생명' 못지 않게 중했던 것이다. '뇌의 안전성'을 확인한 그는 곧 '생명 연장'을 위한 자구책에 돌입한다. 의사의 말대로 결국 쇠약해진 호흡근 탓에 익사하듯 생명을 잃게 된다면, 그에게 필요한 건 '호흡근 강화' 훈련이다. 영화 중 여러 차례 등장하는 '수중 숨 참기' 장면. 그는 물리학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 '호흡근'의 안전을 확보해야만 했다. 다행히 호흡근은 가장 천천히 약해지는 근육이다. 다른 근육 약화로 거동이 불편해지는 것이야 막을 수 없다손 치더라도, 호흡근 약화는 최대한 늦추고자 스스로 방법을 모색한 것이다.

 

'' '인생'의 상당 부분을 바꿔 놓는다. 완치가 불가능하거나 생사가 달린 질환, 또는 신체·정신적 장애를 남기는 질환은 더욱 그렇다. 사람은 병을 통해 가치관의 변화를 겪기도 하고,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기도 한다. 호킹에게는 '물리학 연구'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호킹의 병은 다행히 '연구'에 필수적인 ''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에, 목표를 수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더 고차원적인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틈틈이 '욕조 속에서 숨을 참고 버티는 연습'만 하면 됐다. 꿈이 클수록 걸림돌은 심한 상처가 된다. 호킹은 '○○와 같은 유명한 물리학자'가 되기를 꿈꾸지 않았다. 이는 자신이 진정 잘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과정'을 목표로 삼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아인슈타인 같은 물리학자' 또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이 아닌 '물리학으로 우주와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목표였던 그는 '좌절'할 필요가 없었다. 대신 '목표 달성을 위해 스스로 마련한 방편'에 충실했을 뿐이다. 현재 호킹은 갈릴레이, 뉴턴, 아인슈타인 다음으로 손꼽히는 물리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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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마와의 맞짱 

 

INTJ '자기가 세운 기준'을 중시한다. '내면에 구축된 감시 시스템' '자신만의 가치 판단 기준'으로 사람과 사물을 파악한다. 호킹만의 '호흡근 강화 훈련'은 그가 생각해 낸 '최선의 생명 연장 수단'이었다. 문제가 되는 요인을 스스로의 판단에 근거해 제거하는 것이다. 스티븐 호킹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전적으로 '천재성'에 집중하는 저자부터, 객관적으로 그의 '인간성'을 비판하는 저자까지.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 「더사이언스」의 과학 전문 김윤미 기자는 「휠체어 위의 우주여행자 스티븐 호킹(크리스틴 라센 著)」을 소개하면서, 중간에 '병에 대해서만큼은 대범하지 않았던 천재'라는 소제목을 달았다. '기사'에 반영된 시각이 '저자'의 시각인지, 이를 옮긴 '기자'의 시각인지는 책에서 확인해 볼 문제다. 지적하고 싶은 것은, '대범하지 않았다'는 표현 자체다. 기사는 그 근거로, '가족들과 병에 대해 얘기하길 꺼렸다'는 점, '심지어 첫 번째 부인이 된 제인 와일드에게도 자신의 병을 얘기하지 않았다'는 점, '호킹의 상태를 궁금해 하는 제인의 질문에 속시원히 대답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INTJ 유형인 존 내쉬의 삶을 그린 영화 <뷰티풀 마인드>(2001)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 나는, 스티븐 호킹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작품 <호킹>에 자연스레 관심이 쏠렸다. 그에 대해 아는 건 INTJ 유형이며, 거동이 불편한 병을 앓아 왔다는 것뿐. <뷰티풀 마인드>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점을 알아볼 수 있겠다는 기대를 품었다. 존의 개인적 특성을 INTJ의 특성으로 일반화한 부분은 없는지 되짚어보고픈 마음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INTJ가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질환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섬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컸다. '병에 대한 자세'는 개인적인 궁금증이다. 나는 같은 INTJ로서, 20대 중반 무렵 완치되지 않는 병을 진단 받은 바 있다. 어쩌면 존과 알리시아 내쉬의 이야기에 격하게 공감한 것도 개인적인 '병력'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병력을 지닌 INTJ는 병에 대해 '대범하지 못해' 가족 또는 배우자와 병에 대해 얘기하기를 꺼리는 게 아니다. 수시로 병을 들먹이며 낙심하는 것이야말로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가슴 아프게 하는 처사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좌우할 만큼 치명적인 병은 '두려움''회의감'을 동시에 안긴다. 지금까지 쌓아 온 지식을 어떤 생산적인 일에 도모할 것인지, 어떤 분야에서 사회에 이바지할 것인지, 구체적인 직업적 장래를 계획하는 시기인 20대에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예측할 수 없는, 아무도 정확하게 말해 주지 않는 '병의 결과'는 가능한 한 머릿속에서 지우는 게 상책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일을 준비할 필요도, 오늘을 열심히 살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호킹은 병에 대해 대담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병을 '무시'할 정도로 용감했던 거다. 흥에 겨워 다른 사람들 틈에서 과감히 몸을 흔들어 대던 호킹이었다. '대범하지 않은 환자'는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누워 조용히 죽을 날만을 기다린다.

 

이중적 완벽주의

 

입원실에서 호킹이 부친과 나눈 짤막한 대화에서도 INTJ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부친은 호킹에게 '1인실을 쓸 수 있게 처리해 뒀다'고 말한다. 호킹은 '그냥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다인실에 있겠다'며 거부한다. '공평'하고 '공정'한 것을 추구하는 성향상 '특별'한 대우를 꺼리는 것이다. INTJ는 독립적 성향이 강하다. 혼자 보내는 시간에 많은 것을 이루고 생각하기 때문에, 1인실이야말로 제격이다. 그런데 호킹은 다인실에 만족했다. 이유를 찾기 위해 다르게 접근해 봤다. INTJ '이드솔루션의 문화적 취향' '지적인 창의성을 지닌 장인'인 경우가 많다. 해당 성향은 문화적으로 진보적이며, 이중적 완벽주의를 추구한다. '상반된 개념'을 동시에 추구하는 완벽주의자인 것이다. 의사 부친을 둔 호킹은 1인실을 쓸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가정에서 자랐다. 그가 가진 '우월한 경제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평범한 대우'를 요구하는 '이중적 완벽주의'로 나타난 것으로 해석된다. '이중적 완벽주의' '논리성' '독창성'을 동시에 추구한다거나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면서도 '다양한 입장을 이해'하는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지나치게 까다롭지만, 한편으론 상당히 너그러운 것 역시 '이중적 완벽주의'의 한 형태다.

 

'미완의 대작'이 주는 감동

 

부모와 교수

 

2년의 시한부 판정을 받고 호킹의 부모는 고민한다. 대학원 진학을 포기시켜야 할지, 원하는 대로 물리학을 계속할 수 있게 도와야 할지. 부모는 이내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 호킹은 그의 뜻대로 대학원에서 물리학을 계속한다. 유수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탄생 뒤에는 부모의 열렬한 지지와 신뢰가 있었다. 아들의 병이 그의 전공은 아니었지만, 호킹의 부친은 의사였다. 운동신경질환에 걸리는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더 빨리 병세가 악화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아내에게 '길어야 2'이라 통보한다. 호킹의 모친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강단을 발휘한다. "당신이 꿋꿋하게 한 발 한 발 내딛어야 해. 그게 당신이 할 일이고, 우리가 스티븐을 돕는 길이야. 스티븐은 예정대로 케임브리지로 가서 자기 삶을 살 거야."

 

호킹을 케임브리지에 데려다 준 부친은 무작정 지도교수 샤머를 찾아간다. 부탁을 하기 위해서다. 호킹에게 '죽기 전에 마칠 수 있는' 연구 주제, '빨리 끝낼 수 있는 쉬운' 주제를 주라는 것. 부친의 간절한 부탁은 거절 당한다. 샤머 교수는 추후 호킹이 '아름다운 물리학적 성과'를 이루게 한 장본인이다. 그의 거절 이유는 이랬다. "'과학' '학생'은 곧 나의 '전부'. 나는 둘 모두에게 있어 신의를 지키려 노력한다. 따라서, 죄송하지만, 당신의 부탁은 들어줄 수가 없다." 샤머는 호킹의 건강 상태에 대한 '어설픈 배려' '학자로서의 양심'을 속일 수 없었다. 교수로서 학생에게 연구 주제를 부여할 때, 해당 학생이 관심을 가지는,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주제를 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믿었다. 결국 호킹은 '쓸데없는 배려' '거절'한 교수 덕분에 '아인슈타인의 연구를 이론적으로 완성'하기에 이른다. 부친은 호킹이 맛볼지 모를 실패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호킹은 '걱정' 때문에 '안전'한 길을 택하기보다는 '열정'에 따른 '독창적'인 길을 가고자 했다. 이는 스티븐 호킹이 학자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던 샤머 교수를 만나 결실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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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기술

 

<뷰티풀 마인드>에서 여자에게 접근해 '액체 교환' 운운하던 존의 모습을 봤다. INTJ의 직설적인 표현, 포장하지 않는 표현 방식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장면이다. 호킹의 접근법은 어땠을까? 그는 좀 더 현명했다. 본인의 관심사인 '시간의 논리'를 적용해 상대의 호감을 자극한다. 호킹은 "제 시간은 7시 반인데, 그쪽 시간은 어떻죠?"로 말문을 튼다. "시간은 영원불변인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당신이 동쪽으로 가면 갈수록 당신의 시간은 내 시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려진다. 동쪽으로 '빨리 가면' 갈수록 '급속도로 느려진다'." 호킹의 역설은 흥미롭다. 그는 '이성적 논리'로 상대의 '감성적 호감'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존 내쉬와 마찬가지로 스티븐 호킹 역시 '세상만사에 이론을 대입해 생각'하거나 '세상사로부터 이론을 도출해 내는' 능력이 뛰어났다. '나는 호두알에 갇혀 있어도 무한한 공간의 왕이라 여길 수 있다'는 연극 '헴릿'의 대사 이후, 호킹과 제인이 극장을 나서는 장면이 이어진다. 호킹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떠올린다. 그는 제인에게 '별들도, 완벽한 구체라면 무로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 무한히 밀도가 높아져, 모든 것이 무의 상태로 붕괴될 거다. 하지만 조건이 맞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조건'인지를 묻는 제인. 호킹은 '일단은 완벽한 구체여야 하며, 연극이 아주 감동적이어야 하고, 아름다운 저녁이어야 한다.'면서 '이상적인 조건'을 이론과 현실에 접목시킨다. 별개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론' '데이트'에 녹이는 재주가 돋보인다. 제인도 끊임없이 '과학적 이론'에 생각이 미치는 호킹의 이야기를 즐겁게 들어 준다.

 

비판의 방향

 

'비판' INTJ의 핵심 역량이다. ''은 파티 중에 동료의 논문을 비판해 분위기를 망치곤 했다. 호킹 역시 자연스럽게 발동하는 '잘못된 이론'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그 이론의 주창자가 '뛰어나다고 알려진 교수'일지라도. 이론을 파헤치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도 INTJ의 특징이자 존과 호킹의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정식으로 발표되지 않은 호일 교수의 논문을 접하게 된 호킹. 그는 다음날 동이 틀 때까지 이론을 검증한다. 명쾌하게 오류를 밝혀낸 호킹의 얼굴에는 만족감이 서려 있다. 당일 열린 런던왕립학회에서 새롭게 소개된 호일의 이론.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호일 교수는 이론에 대한 소개를 마친다. 질문의 기회가 주어지자, 그는 과감히 밤새 계산해 찾은 이론의 오류를 지적한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묻는 교수에게 호킹은 '내가 계산해 봤다'고 분명히 말한다. 유수한 교수 및 학자들이 모여 있는 학회에서 자기보다 더 오랜 기간 물리학을 연구해 온 교수의 이론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사람들이 놀라는 건 당연하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발언을 하다니, 누군가 방해하려는 수작'이라며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교수. 호킹의 '감정'은 그의 '양심' '이성'을 채 따라가지 못한다. "교수님이 틀렸다구요. 그게 다에요. 틀린 걸 그냥 넘어갈 수 없었을 뿐입니다." 루게릭 병 진단과 함께 2년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지 1년 반이 흐르고 있을 때였다.

 

영화 <호킹>을 보고 나니, 존 내쉬에 대한 안타까움이 깊어진다. 호킹을 바로잡아주고, 강점을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줬던 샤머와 같은 교수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일 교수의 이론을 학회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비판한 호킹에게 샤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앞길에 장애물이 있다는 의미를 알고 있다. 뭔가 할 수 없다고 느낄 때의 기분도 이해한다. 나는 나와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내 학생을 가로막진 않을 거다, 절대로! 너는 남의 의견을 날카롭게 공격하는 일보다 더 멋진 일을 할 수 있다. 다른 일을 해라. 니 자신의 일을! 독창적인 연구를!" 샤머는 상대의 이론을 비판할 때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공손한 표현 방식'을 지시하지 않았다. 호킹의 비판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지도 않았다. 그저 그의 관심과 주의를 '타인의 이론에 대한 비판'이 아닌 '본인의 연구에 대한 논증'으로 돌릴 뿐이었다. 샤머는 호킹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누구보다 자신의 제자가 비생산적인 일에 시간을 허비하고 마음을 다치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호킹의 비판력' '호킹의 연구'에 쓰여 '명확하고 독창적인 호킹만의 이론 정립'을 가능케 한 중심축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샤머가 호킹의 '독창적인 연구 결과'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대신 '비판의 기술' 등을 들먹였다면, 호킹은 더 큰 혼란에 빠졌을지 모른다. '과학' '논리', '케임브리지'에 대한 회의감에 젖어 성공적인 연구 성과를 거두는 데 실패했을지 모른다. '올바른 가르침'은 전달하는 '내용'뿐만 아니라, 전달하는 '대상'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음을 말해 준다. '가르치는 방식''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배우는' 사람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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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의의

 

영화 <호킹>에는 바흐의 곡 「푸가의 기법」이 등장한다. 「푸가의 기법」을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한 바흐. 호킹의 물리학 동료 로저 펜로즈(Roser Penrose, 1931~) '비록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완벽한 곡'이라 말한다. '끝나지 않은 듯, 음악이 멈춘 후에도 들린다'고 표현한다. '미완성의 대작이 남기는 여운'을 상징한다. "Can you hear? Can you hear?" '완성' 여부와 상관없이 '일정 부분까지의 성공'이 그 자체로 의미 있을 뿐 아니라, 훌륭한 업적이 될 수 있음을 뜻한다. 순간 호킹은 '가능성'을 믿고 연구에 매진할 '희망'을 품는다. 이후 호킹은 '빅뱅 우주론'을 증명하면서 샤머로부터 '아인슈타인을 아름답게 했다'는 평을 듣는다. 물리·천문학상의 기록할 만한 성과를 거둔 것이다. 루게릭 병을 진단한 의사가 호킹에게 선고한 2년이라는 시간이 끝나갈 즈음의 일이다.

 

펜로즈와 호킹은 종종 샤머 교수의 집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식사도 하고, 연구에도 참여했다. 하루는 펜로즈가 '모차르트' 이야기를 꺼낸다.

"모차르트가 잠에서 깼는데, 한 교향곡이 통째로 머리에서 맴돌더랍니다. 근데 언제 그런 걸 생각했는지 자기도 전혀 모르겠다고 했답니다. 그냥 머릿속에 떠올랐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악상이 그냥 떠오르다니! 어떻게 교향곡 전체가 한순가에 떠오를 수 있는 거죠?"

"음악이란 게 언어를 뛰어넘는 생각의 방식인지도 모르지. 한순간에 모든 걸 생각할 수 있는..."

샤머 교수의 생각에 그의 부인도 한마디 거든다.

"그런 게 바로 물리학자에게 필요한 능력 아닐까요?"

넷은 그렇게 물리학과 이론에 대한 의견을 나누곤 했다. 이론에 관한 보고서를 완성한 호킹. 그는 샤머 교수의 호출을 받고 집으로 향한다. 샤머가 문을 열자마자, 호킹은 '다짜고짜' 이론을 입증하기 시작한다. 호킹을 맞은 샤머는 흥분한 그를 진정시키는 대신, 그의 논리를 새겨듣는다. 논문 검토 후 다시 모인 샤머와 펜로즈, 그리고 호킹. 샤머가 운을 뗀다. "1장부터 3장까지에는 별로 새로울 게 없더군. 4장은..." 펜로즈가 잇는다. "모차르트야!" '사실적인 사고(Realistic)'과 대립하는 INTJ '추상적인 사고(Abstract)'가 이룬 쾌거를 극찬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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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적 판단 

 

흔히 '내조' 또는 '외조'란 한 사람의 배우자로서 상대가 자기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크고 작은 일상사를 알아서 처리하고 해결하는 것, 금전적·시간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다. ()조의 힘은 생각보다 고차원적인 것일 수 있다. '자신을 지지하는 평생의 동지가 뿜는 위력'이다. 자신 못지 않게 자신의 능력을 믿어 주는 사람,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를 진심으로 희망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이는 그 어떤 물질적·업무적 지원보다도 개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행사한다. 존과 호킹에겐 그런 지지자가 있었다. 제인은 1년 반이 지나고서야 호킹의 병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개의치 않았고, 호킹의 청혼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청혼은 그가 빅뱅 우주론을 '스스로' 증명해 낸 이후에 행해졌다. INTJ '자신이 세운 기준'에 따라 사람과 사물을 판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차르트가 교향곡 전체를 한순간에 떠올린 것처럼, 호킹의 머릿속에서 빅뱅 우주론은 한순간에 증명됐다. 보고서를 작성하고 교수로부터 인정 받기 전, 이미 호킹은 제인에게 청혼한 뒤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증명해 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들자 그 기쁨과 자신감에 차, '검증을 거치기도 전'에 연인에게 프로포즈한 것이다. 거동이 불편한 호킹은 카이우스 기숙사 담당자에게 '편의를 봐줄 것'을 요청한다. 담당자는 '예외는 없다'며 호킹의 말을 자른다. 함께 간 제인은 똑 부러지게 그를 압도한다. "저기,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이 사람은 계단을 오르기가 힘들어요. 병을 앓고 있다구요. 상태는 더 악화될 거에요. '출입이 쉬운' 방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못하시겠다면, 각오하셔야 할 거에요. 각 신문에 대문짝 만하게 실릴 테니까. 이 대학의 기숙사가 용기 있고, 똑똑하고, 위대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을 얼마나 하찮은 이 대하듯 했는지. 이해하시겠어요? 이 사람은 제 남편이 될 사람이거든요!" '예외적 편의'를 요구하며 버벅거리던 호킹도, 덩달아 기세등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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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n You Hear Me?

 

'스티븐 호킹'을 그린 영화 <호킹>은 극장 개봉작이 아닌 TV 방영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극찬을 받는 데는 '호킹'을 연기한 '베네딕트 컴버배치(Benedict Cumberbatch)'의 공이 크다. 포털 사이트 영화평만 보더라도, 그의 연기는 호평 일색이다. 개인적으로는 <뷰티풀 마인드>에서 '존 내쉬'를 연기한 '러셀 크로우(Russell Crowe)'에 비해 '소름 끼칠 만한'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호킹>은 스티븐 호킹의 일생 중 '3'만을 짧게 그렸다. 루게릭 병 진단 이후 호킹의 행보와 연구에 대한 열정만을 담고 있다. <뷰티풀 마인드>는 학자로서 치명적인 정신분열증을 겪는 등 수십 년에 걸친 존의 일생을 다뤘다. 그에 비해 <호킹>은 주인공의 인간적인 특성과 이를 표상하는 사소한 일상에는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영화의 줄거리상 갈등 및 시련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 또한 아쉬움을 남기는 이유다. 베네딕트의 '루게릭 병 증세' 연기만큼은 단연 으뜸이다. 수도꼭지마저 양손을 함께 동원해야만 돌릴 수 있는 상황, 섬세한 움직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호킹은 호흡근 강화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걸음걸이와 표정, 안경과 지팡이를 집어드는 모습도 꽤 실감난다. 베네딕트의 연기는 분명 당시의 호킹을 짐작케 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장애 또는 병을 딛고 훌륭한 일을 해낸 이들의 곁에는 그에 못지 않은 어진 동반자가 있다. 호킹에게 제인은 지혜롭고 믿을 만한 동반자였다. 호킹의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마냥 장애인으로 취급하지도, 마냥 보살펴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도 않았다. 둘이 게임을 할 때면 정정당당히 겨뤘고, 가능하면 그를 혼자 있게 함으로써 '생각'할 시간을 주었다. 호킹은 제인에게 '특별 보호 대상자', '24시간 간호가 필요한 환자'도 아니었다. '우주와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능력 있고 열정 넘치는 학자'이자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였다. 영화의 마지막 씬에서 호킹은 제인에게 앞으로의 연구 방향을 암시한다. '거시적'인 것에서 '미시적'인 것으로 눈을 돌려, '양자역학'을 파헤칠 계획을 털어놓는다. '얼마나 걸리는지'를 묻는 제인. 호킹의 '20년쯤'이라는 대답에 '꽤 빠르다'며 그의 계획을 지지한다. "정말 빠르지!?" 호킹의 맞장구다. 슬프지만 진실된, 우습지만 진한 감동이 배어나는 장면이다. 호킹은 '자신의 건재함' '끝이 아닌 시작임'을 되뇐다. "Can you hear 'me'?" "Can you hea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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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 12 10, 아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은 1965년의 '빅뱅의 잔여 우주 배경 복사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 많은 업적을 남긴 프레드 호일경은 2001년 사망했다. 그는 끝까지 '우주의 시작'을 인정하지 않았다. | 로저 펜로즈는 과학에 기여한 공로로 1994년 나이트(국가에 대한 공로를 인정 받아 왕으로부터 받는 훈위) 작위를 수여 받았다. 그의 '붕괴하는 항성에 대한 특이점 이론' '블랙홀의 발견'으로 증명된 바 있다. | 스티븐과 제인 호킹 부부는 결혼 후 슬하에 세 자녀를 두고 25년을 함께했다. 스티븐은 운동 신경 질환을 진단 받은 뒤 40년 만에 아이작 뉴턴이 맡았던 케임브리지 대학의 루카스 수학 석좌 교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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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풀 마인드> 주인공 내쉬」로 INTJ 엿보기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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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의 불편한 진실, 과학기자가읽는과학책-스티븐호킹 | 2012-02-25 | 더사이언스 Link

 

 

사운드 오브 심리 MONZAQ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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