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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FP의 자유와 INTJ의 독립

 

각자의 공간

 

<땜질과 쌍벽>에서 '가사 분담'을 짚어 봤다. 남편(ESFP) '요리', (INTJ) '청결'을 맡고 있다. 청소며 빨래며, 식사 준비는 결혼하지 않은 이들에게 흔한 '고민되는 가사 분담'거리에 속한다. '굵직굵직한 가사'란 얘기다. 사실 부부싸움이란 사소한 것에서 비롯된다. 실제 '조화' '분쟁'을 일으키는 요인은 사사로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주로 하는 '청결' 관련 일은 일종의 '준비'. 새로 빤 옷을 입게 준비해 두고, 언제든 요리를 할 수 있게 그릇을 씻어 둔다. 집 안 동선을 살펴 가구를 배치하고, 필요한 물건을 찾아 쓰기 쉽게 정리한다. '준비'INTJ의 강점이다. 사소한 역할 분담에도 강점과 약점을 살려 보자. 자연스럽게 배역이 결정되고, 잡음 없이 집안이 굴러간다.

 

대개 부부는 '청소를 하라', '마라', '니가 해라'를 두고 싸우지 않는다. '어지르지 마라', '상관 마라', '기껏 청소했더니 또 저러고 있다'를 두고 싸운다. 강점과 약점에 초점을 맞추고 보면, '다름'은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지 않는다. 남편은 나에게 '청소'를 요구한 적이 없다. '카테고리별 정리'에 능한 내가 어지러운 집구석을 참지 못해 자처할 뿐이다. 당연히 남편에게 '유세'를 부릴 순 없다. 자기가 좋아서 한 일로 유세를 부리는 건 '비논리적'인 일이다. INTJ인 나는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사람을 혐오한다. '논리'를 따지면서 '비논리'적인 행위를 해선 안 된다고 믿는다. 유세를 떨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남편에겐 '청소'가 별 의미가 없다. '자유와 쾌락'을 추구하는 ESFP는 청소를 했는지 안 했는지도 잘 모른다. 그쪽에는 영 주의가 기울여지지 않는 거다. 이런 남편에게 나의 청소는 '스스로 좋아서 한 일'일 뿐이다.

 

강점에 기초한 역할 분담이라 해도, 공정한 역할 분담상 맡은 집안일이라고 해도, 사람은 누구나 '하기 싫을 때'가 있다. 그 일이 '의무'가 되었을 땐 더욱 그렇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남편은 청소의 필요성을 거의 못 느낀다. 청소를 '의무화'하지도 않는다. 나는 '본인의 필요성'에 따라 청소를 할 수도, 말 수도 있다. 아무도 이를 시키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청소'에 있어 트러블이 생기지 않는 건, 둘이 명확하게 공간을 구분해 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달랑 두 칸인 방은 남편 방과 내 방으로 쓴다. 철저하게 독립적인 공간이다. 남편에겐 '주관식'이 어렵다. 각자의 방을 꾸밀 때도 남편은 객관식으로 푼다. 내가 채우고 남은 가구를 남편 방에 두면 된다. 나도 편하고, 남편도 편하다. INTJ '공정성'을 중시한다. 이기적으로만 가구를 차지하진 않는다. 남편의 불만을 살 만한 '독점'은 시켜도 못 한다. 방을 꾸미는 데 있어 '상식'은 중요하지 않다. '본인에게 편한'게 우선이다. 상대가 방을 어떻게 꾸미든 상관할 바 아니다. INTJ '독립' ESFP '자유'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대목이다.

 

공유 공간

 

흔히 부부는 집 안 대부분의 공간을 공유한다. 우리 부부가 공유하는 공간은 많지 않다. 그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도 길지 않다. 공유하는 공간은 내 마음대로 구성한다. 그러면서도, 이를 전혀 문제 삼지 않는 남편이 고맙다. 남편은 오히려 주도적으로 공간을 채우는 내가 고맙단다. 3년 전 이삿짐을 풀면서 주방 식기 정리는 남편이 맡았다. 아무리 정리에 약한 ESFP라지만, '요리' 담당에게 '주방 정리'는 즐거운 법이다. 이때도 나는 '자유'를 준다. 괜히 나섰다가 '불편해서 요리를 못 하겠다'는 둥 그의 도발을 살 우려가 있다. 그런 짓은 하는 게 아니다.

 

나의 '청소 본능' INTJ답게 독립적이다. '공유'하는 공간은 '적당히', '' 공간만 '열심히' 치운다. 남편만의 공간은? 내버려 둔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남편만의 공간을 깨끗이 하는 건 '위험한 짓'이다. 하루면 금새 도로 아미타불이 된다. 내가 남편 방을 청소할 때는 '어지러운 공간을 견디지 못해서', '알아서' 하는 게 아니다. '의무'로 하거나 '보상'을 위해 한다. 이는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남편은 자기 방 청소를 원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상을 할 리 없다. '서운함'은 싸움으로 번진다. 억지로, '의무감' 때문에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괜한 트집'이나 '깨끗이 쓰라' '간섭'을 부른다. '원하지도 않은' 걸 해 주고 '보상'을 바라는 어리석은 부부들. 의외로 많다. 간단한 문제만 바로잡으면 되는데도.

 

기발한 감사

 

'돈 관리'는 내가 맡았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존(러셀 크로우) '공과금'을 담당한다고 생각해 보자. 참 안 어울린다. 더 안 어울리는 건 찰스가 맡는 거다. 우리 집에선 '비교적' 잘할 법한 내가 공과금 담당이다. 예상대로, 역할을 '훌륭히' 소화하진 못한다. 무언가에 집중하다 보면, 까먹고 빼먹는다. 남편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구박'하는 법은 없다. '본인은 더 못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다. 오히려 꼬박꼬박 해 낼 때가 신기하다. 흔히 '본인도 잘 못하는' '상대는 잘해 내길' 바라곤 한다. '형평성'에 어긋난다. '잘할 때'를 당연시하지 말자. '못하는' 게 당연한 거다. 본인은 더 못하지 않나. 이렇게 생각하면, 못하면 '괜찮다', 잘하면 '잘했다'고 박수쳐 줄 수 있다.

 

강점과 약점에 기반한 역할 분담의 좋은 점을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들어 볼까 한다. 우리는 '정수(淨水)'에서 '()'로 바꿔 마시고 있다. '맹물'보다 '○○'가 맛있어서다. 보리, 민들레, 자스민 등 '○○'은 항상 내 맘대로 고른다. 끓이는 건 나다. 그 정도 권한은 '끓이는' 쪽에 주어져야 마땅하다. 마음에 안 들면 자기 물은 자기가 끓여 마시면 된다. 간단하다. 물 끓이기 역시 '준비'. '준비'는 내 강점이다. 남편은 '떨어지지 않는 식수'를 신기해 하고, '그걸 잘하는 나'에게 고마워한다. 극히 사소한 일이지만 본인의 약점을 분명히 알고 있다. '떨어지지 않게 식수 끓여 두기' ESFP에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강점과 약점을 떠올리면, '사소한 집안일'도 감사하고 칭찬할 만한 일이 된다.  

 

ESFP의 유희와 INTJ 의의

 

동지의 자격

 

'동지'. '목적이나 뜻이 서로 같은 사람'을 뜻한다. '부부' '동지'. '행복'이라는 같은 목적을 가졌다. '같은 목적'이지만 거기에 이르는 길은 '각자의 방식'을 따른다. '삶의 방식'이 같아서 부부의 연을 맺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목적'이 같아서 맺어진 부부다. '방식'은 굳이 똑같을 필요가 없다. 목적이 '행복'임을 잊지 않는 건 중요하다. 대부분의 부부는 '목적'을 잊고 '과정'에 집착해서, '목적'을 망쳐 버리곤 한다. 모든 것을 함께 나눠야만, 비밀을 싹 다 털어놓아야만 진정한 '동지'일까? 아니라고 본다. 공개하고 싶지 않은, 또는 공개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굳이 캐묻지 않는 게 진정한 동지다. '개인적인 호기심'보다 '동지의 입장'에 무게를 두고 처신하자.

 

<뷰티풀 마인드>의 찰스. 찰스는 존의 훌륭한 동지였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무슨 일을 하는지도 말하지 않겠다는 존. 찰스는 하버드대 작가 연구회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본인 얘길 벌써 다 해 버렸다. 공평하지 못하다고, 궁금하다고 보챌 수도 있었다. 하지만 찰스는 달랐다. 기막힌 재치를 발휘한다. "새로운 일을 맡았는데, 공개하긴 좀 곤란해." "뭐야, 일급 비밀이라도 되는 거야? 비밀 공작원, 뭐 그런 거야?" 찰스가 서운해 하진 않을까 신경 쓰는 존을 배려해, 오히려 과장된 반응으로 웃음을 유발한다. '아님 말구'. 존이 찰스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토 하나 달지 않고 순순히 넘어가 주는 것.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믿어 주는 것. 서로의 행복이 최우선 목적임을 잊지 않는 것. '진정한 동지의 자격'이다.

 

대리만족

 

ESFP가 추구하는 인생의 최대 가치는 '자유' '유희'에 있다. 이는 INTJ'소홀히'하고, 그렇기 때문에 '못하는' 영역이기도 하다. INTJESFP로부터 '유희'의 방법을 배우고 '유희'의 효과를 깨닫는다. <뷰티풀 마인드>에서 해당 장면을 찾아 본다. '존이 자신의 무능함을 비관하며 자해할 때'. "그래, 차라리 머리 박고 죽어! 그냥 자살해 버려!" 찰스는 존의 자괴감을 극한으로 몰다가 그 정점에서 '니 탓도 내 탓도 아니'라고, '그 사람들이 문제'라고 말한다. '해답은 바깥 세상에 있다'고 일러 준다. 그리고 존의 책상을 창밖으로 밀어 박살낸다. 과격하고 우발적이지만, 상징적인 찰스의 행동. 이를 통해 존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비로소 자괴감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릴 수 있다. 무엇보다, 되게 웃기다. 같이 박장대소한다. 남들이 보기에 둘은 미친 것 같다. 뭐가 문젠가. 둘은 웃겨 죽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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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부터 찰스는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전날 마신 술이 채 깨지도 않은 채 방에 들어선 찰스는 책상머리에서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존에게 술부터 권한다. 그날은 학교에서 파티가 있던 날이다. 존도 마다하지 않고 찰스와 '첫 대화'를 나눈다. '흐트러진' 채 모습을 드러낸 찰스는, '정돈된' 웨이터 차림의 존과 대비된다. 그날 찰스의 등장은 존의 또다른 심리적 욕구의 표현이다. 실제 자신은 파티 중에 기숙사로 돌아와 책을 파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찰스처럼 '자유롭게 유희를 즐기고 싶어 한다'는 의미다. '지성' '의의'에 따라 행동하면서도 동시에 '자유' '유희'를 갈망하고 있다. 한 쪽 성향이 너무 강해서 다른 쪽 성향이 제대로 표출되지 않았을 뿐이다. 결국 비정상적인 형태로, '상상 속의 찰스'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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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남편도 ''로 가까워질 수 있었다. 노는 법에 서툰 나는 그나마 술이 있어야 논다. 술이 들어가지 않은 ''는 잠도 자지 않고 일만 생각한다. 끝없이 떠올리고 분석하고 습득한다. 20대 초반. 인생에서 '노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할 때였다. 이렇게도 놀아 보고 저렇게도 놀아 보고, 남들 노는 곳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누볐던 때. 술자리에서 처음 만난 ESFP는 신기루 같았다. 참 생각 없어 보이는 게, 이상하게 '한심한' 게 아니라 '신비로워' 보였다. 근심 걱정 하나 없는,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같았다. 해당 은행 현금지급기를 통하지 않아 1,200원의 수수료만 떼여도 한 시간을 자책하던 나였다. ''을 가까이 해야겠다 생각했다. '전략적'으로 가깝게 지내서 그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체득하는 거다! '친구'는 닮기 마련이다. 나는 나의 근심 걱정을 '별 거 아닌 것'으로 웃어넘길 수 있는 '배포'를 목적으로 놈과 어울렸다.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 게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낙천적인 그가 한심해 보이기는 커녕 여전히 존경스럽다는 것. 다른 하나는, 아무리 그를 가까이 해도, 14년을 알고 지내도, 7년을 같이 동고동락해도, 도무지 나는 '낙천적'이 되지 않는다는 것. 한동안 전략은 유효했다. 몇 년이 흐르고서야 깨달았다. 서로를 닮아 보려 아무리 애를 써도, 한 치의 노력도 않는 상대의 발끝조차 따라가기 어렵다는 걸. '심리 유형 개조'가 얼마나 소모적인 것인지를 안 이후, '배움''땜질'로 방향을 틀었다.

 

욕심을 내려놓는 법, 마음을 비우는 법, 쉬는 법, 나는 아무리 배워도 남편처럼 잘하지 못한다. 중요한 건 '그만큼 잘하는 것'이 아니다. '때때로 그런 기회를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남편만큼' 호감형이 되기 위해 노력하진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의도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린다.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다. 존과 같은 비극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다. 존처럼 강점은 살리되, 실존하는 찰스를 곁에 두고 찰스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거나 찰스와 '함께 밖으로' 나간다. 너저분하게 어지러진 남편 방을 보면서 희열을 느낄 때가 있다. 모든 것이 정해진 자리에 박혀 있는 내 방에선 느낄 수 없는 무언가가 그의 방엔 있다. 내 방을 일부러 그의 방처럼 방치해 본 적도 있다. 자유로워 보이긴 했지만, 나에게 그보다 중요한 건 '최대한 일이 잘되도록 공간을 꾸미는 것'이었기에 이내 '따라하기'를 접었다. 대신 그가 '허물처럼 벗어 놓은 옷'을 보면서 '재미'를 느끼고, 그에 대한 '애정'을 키운다.

 

"방탕한 룸메이트가 돌아왔다!" 몇 년 만에 다시 나타난 찰스가 뱉은 '첫마디'. 존이라면, 먼저 전화나 편지로 안부를 묻고 약속한 날짜에 재회를 시도했을 게 분명하다. 찰스는 존에게 뚱딴지 같은 녀석이다. '뚱딴지 같은 찰스'는 존의 일상에 '유쾌한 활력소'가 된다. INTJ'목적'에 따라 일정을 '계획'하고, 계획은 여간해서는 차질 없이 '진행'된다. INTJ가 잘하는 '준비'는 상황에 따라 약점으로 작용한다. 계획이 틀어질 때 INTJ는 분노, 또는 좌절한다. 철저하게 준비한 일일수록 그 정도는 심각해진다. 반면, 그때그때 상황 및 기분에 따라 움직이는 ESFP는 예상 밖의 일이 닥쳐도 흔들림이 없다. '이럴 줄 알고 준비하지 않았다'는 기막힌 발언을 덧붙인다. 그런 '뻔뻔함'ESFP'매력'이다. 결혼할 당시 아는 신혼부부들은 하나같이 빚을 내서라도 아파트를 장만했다. 우린 아니었다. 몇 년 전부터 집값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남편은 말했다. "그래서 내가 집을 안 산 거야. 큰 일 날 뻔했지 뭐야!?" 기발한 재치에 존경을 표한다. 그와 함께 있으면, 웬만한 건 다 '별 거 아닌' 게 된다. 그저 '웃긴 것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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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의 능력을 지지하고 격려하던 찰스. 존의 보고서가 교수의 인정을 받는 순간 찰스는 그 누구보다도 기뻐한다. 그리고 기쁜 심정을 '미친놈'처럼 표현한다. '선비' 같은 존은 찰스의 감정 표현 방식에 대리 만족을 느낀다. 존이 여자를 만나는 중이라고 하자 찰스는 이렇게 되묻는다. "사람이야? 두 발로 걸어?" 존의 서투른 '작업' 능력을 익히 알고 있어서다. '액체를 교환하자'며 데이트를 청하던 존이었다. 찰스의 본심이 비꼬는 것이든 아니든, 듣는 존에겐 '아니'. 남다른 존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잘하는 걸 더 잘하게 도와주던 유일한 친구였기 때문이다. 찰스의 반응에 존은 입이 찢어진다. '다른' 찰스에게 칭찬 받고 축하 받는 것이 참 좋다. 남편은 '준비하지 않은 것'에 대한 '뻔뻔함'을 보고 '신기한 듯 좋아라' 하는 나를 이해하진 못해도, 덩달아 기분이 좋긴 하다. 그는 '준비하고 또 준비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본인의 '철두철미한 계산'이 깔린 거라 자부한다. 그런 '말도 안되는 자부심'을 자랑하는 남편은 '논리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나에게 일종의 '해방감'을 준다. '인간적'이고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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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포스팅에 계속 

 

사운드 오브 심리 MONZAQ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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