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이 행복을 느끼는 순간에는 항상 셋 중 하나가 있었다. '다른' 존을 인정해 준 찰스, '다른' 존을 지지하는 알리시아, 그리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두할 수 있는 연구 과제. 세 가지는 행복의 조건이기도 하다. 진심을 나누는 '친구'와 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 마지막으로 능력을 발휘하고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까지.

 

조화의 조건

 

찰스의 존재와 영화의 메시지

 

존이 대학원 룸메이트로 만난 찰스. 그는 실재하지 않았다. 존의 상상 속에만 있었다. 찰스가 존의 훌륭한 친구였음은 분명하다. 비록 환각 상태에서지만, 찰스는 존에게 실제 친구처럼, 아니 그보다 더 좋은 동지였다. 찰스는 단순한 존의 정신분열증세로만 볼 수 없는,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그의 성향이 존과 '극과 극'에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여기서 영화가 던지는 중요한 두 개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한 인간의 내면에는 모든 성향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상반되는 성향의 두 개인이 서로에게 좋은 동지가 될 수 있다'는 것.

 

찰스를 만들어 낸 건 존이다. 즉 찰스는 존의 또다른 성향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정반대의 성향을 동시에 지닌다는 의미다. 영화 초·중반부에서 존의 극단적 성향은 찰스에 의해 여러 차례 조절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의 심리는 한쪽 성향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 반대쪽 성향이 이를 조절하는 기능을 담당한다는 뜻이다. 존은 그 '반대쪽 성향'을 자기 내면이 아닌 '바깥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인물'로 착각했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고민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결정은 단숨에 내린다. 그런가 하면 애매하다 싶을 경우, 결정을 내리기 전 잠시나마 고민에 빠진다. '' 안의 양쪽 성향이 상충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여러 가지 성향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 성향이 작용하는 정도에 따라 심리 유형을 나눈 것이 MBTI.

 

존은 왜 자기와 완전히 다른 성향의 찰스를 친구로 맞은 걸까? 찰스가 실제 존의 친구였다고 가정해 보자. 존은 훌륭한 동지 한 명을 얻게 된다. 물론 영화에서 그린 것처럼 이상적이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찰스는 실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수차례 존을 돕기는 했지만, 찰스가 존에게 직접 도움을 청하거나 존 스스로 찰스를 도울 만한 경우는 없었다. 실존하는 인물이었다면, 갈등이 불거지는 상황도 있었을지 모른다. 영화 중에도 잠깐이지만 존과 찰스는 갈등을 겪는다. 그나마도 결국에는 해피엔딩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존에게는 찰스 같은 친구가 필요했다. '실재하는 찰스'가 존의 곁에 있어 줬다면, 존은 굳이 상상 속에서 찰스를 만들어 낼 필요가 없었다. 그랬다면 존은 훗날 환각 중에 윌리엄을 만나지도, 심각한 정신분열증세를 보이지도 않았을 거다.

 

경험과 분석

 

찰스가, 존이 자신의 잠재력을 계발하고 능력을 발휘하는 데, 그리고 일상 생활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면, 같은 INTJ 역시 상상이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반대 성향으로부터 그에 준하는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존과 찰스의 반대 성향에 주목하는 이유다. INTJ로서 찰스와 꼭 닮은 ESFP 7년 간 좋은 친구로, 이후 7년 간 이상적인 부부로 지내고 있다. 직접 존과 찰스의 관계를 경험해 본 바에 따르면, 현실에서도 INTJ ESFP는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물론 개인의 사례는 일례에 불과하다. 핵심은, INTJ의 특성상 모든 현상에 이론을 대입 또는 도출한다는 거다. 부부 사이가 남다른 이유 역시 매 순간 분석한다. MBTI 심리 유형에 근거해, 따지고 또 따져 본다. 본능적으로.

 

'결혼'에 대해 심하게 부정적이었던 INTJ가 어떻게 훌륭한 결혼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지, 스스로도 의문이었다. 의문은 MBTI를 통해 풀 수 있었다. 몇 년 간 매 상황마다 INTJ ESFP 성향에 비추어 생각해 본 결과, 추천할 만한 조합이라는 결론이다. 인간 관계상 정답은 없다. 오답도 없다. 여러 가지 '다른' 관계가 있을 뿐이다. 둘의 조합이 정답은 아니라는 말이다. 심리 유형을 16가지로 나눌 뿐이지, 모든 인간을 16가지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유형이라도 개개인은 모두 다르다. 다만, 배우자를 선택하고 결혼을 결정하는 데 있어 누군가에게는 참고할 만한 좋은 자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건 및 예외

 

선후배나 사제 간, 부모 자녀 간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ESFP의 비논리적 전개는 INTJ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INTJ의 건조한 표현도 ESFP의 환심을 사기 어렵다. 상하 관계가 분명한 경우에는 ESFP '따뜻함' '비논리적'인 것으로, INTJ '냉철함' '냉정함'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앞뒤 안 맞는 얘기를 늘어놓는 선배, 두서없이 가르치는 선생, 옳고 그름만 따지는 부모. 어느 모로 보나 좋은 사이가 되기는 어렵다. 또래 친구, 또는 부부와 같이 대등한 관계일 때 INTJ ESFP의 조화는 빛을 발한다. 부부 사이라고 해도 둘의 나이차가 크다거나 양쪽 집안의 경제적 수준이 심하게 차이나는 등의 이유로 대등한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경우는 해당 사항이 없음을 밝힌다.

 

INTJ와 극과 극을 달리는 ESFP. 찰스의 ESFP다운 면모와 INTJ 존에게 어떤 식으로 좋은 동지가 되었는지 되짚어 봤다. 존과 찰스의 관계, INTJ ESFP의 부부 관계를 통해 '관계' 속 행복의 조건을 찾아보자.

 

INTJESFP'다름'의 효과

 

집중

 

찰스의 존재는 존이 스스로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강점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강점과 약점은 '타고난' 성향이다. 후천적인 노력, 또는 경험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노력에 의해 어느 정도 약점을 개선하거나 강점을 적당히 조절할 수는 있다. 처한 상황이나 맡은 직책에 따라 그 조절이 요구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노력에 비해 결과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 못된다. 억지로 약한 능력을 키우기보다는 가능하면 강한 능력이 더 강해질 수 있도록 계발하는 것. 이는 객관적인 '성취'와 주관적인 '성취감'을 높이는 길이다. 여러 심리학 연구가 이를 뒷받침한다. 찰스에게 이성(또는 동성)과 술은 참 좋은 친구, 이론과 학문은 참 따분한 녀석이다. 그런 찰스와의 대화를 통해, 존은 본인이 가진 능력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는 데 확신을 갖게 됐다. 찰스는 존에게 단연 'helpful'한 존재였던 거다.

 

존경

 

찰스의 사교 능력은 눈부시다. 분위기 및 상대의 기분을 직감적으로 알아챈다. 이를 해치는 일도 없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ESFP'사교' '능력'으로 보지 않는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에는 서툴지만 이론을 정립하는 데에는 뛰어난 INTJ야말로 진정한 능력자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INTJ는 모든 이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모든 이가 좋아하는 ESFP가 대단해 '보인다'. 부모님의 부부 싸움을 지켜보면서 잘잘못을 '따지고' 싸움의 원인을 '분석하는' 게 무슨 '능력'인가 싶다. INTJ ESFP의 사교력을, ESFP INTJ의 논리력을 높이 산다. 자기가 가지지 못한 능력, 그래서 더 갖고 싶은 능력을 지닌 상대는 존경스러운 존재다.

 

대화

 

ESFP의 훌륭한 사교 능력은 INTJ와의 대화에서도 순기능을 한다. 사교 능력이란 곧 대화 능력이다. 여기서 말하는 대화 능력은 논리적인 설득이나 근거를 바탕으로 한 주장과 같은 업무적 대화 능력이 아니다. 주거니 받거니 감정과 생각을 나누는 걸 의미한다. ESFP가 지닌 대화상의 핵심 능력은 '잘 들어 주는 데' 있다. 찰스는 유일하게 존의 이야기를 들어 주던 친구였다. 실제로도 ESFP '듣기'에 능하다. 늘 논리에 맞는지를 따지고 현상 하나하나를 분석하는 INTJ에게는 그 '생각' '표현'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인터넷이나 지면은 ''로 표현할 '공간'이 되고, 사람은 ''로 표현할 '대상'이 된다. INTJ ESFP의 대화가 순탄한 이유는 '주로 듣는 이' '주로 말하는 이'가 양극과 음극처럼 들어맞기 때문이다.

 

도깨비(INTJ, ESFP가 붙인 글쓴이의 별명)와 쥐방울(ESFP, INTJ가 붙인 글쓴이의 배우자 별명) 7년 간 친구로 지낼 당시, 둘은 '알고 지내는 정도'가 아니었다. 순식간에 '절친'이 됐고, 몇 년 간을 거의 매일 통화하며 지냈다. 동성과 이성을 통틀어 서로에게 넘버 원~투급의 친구였다. 도깨비는 매 순간 '생각'하지만, 그 생각을 즉시, 일일이 말로 내뱉지는 않는다. 'Introverted(내향성)'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이 정리되고 결론이 명백해졌을 때, 겉으로 표현한다. 그것도 신뢰하는 측근에게만. 항상 함께 거론되는 구구절절한 '원인' '결과', '이유' '현상'을 쥐방울은 참 잘도 들어 준다.

 

사실 ESFP는 누구의 이야기든 경청한다. 겉으로는 그렇다. 회사 흡연구역에서 마주치는, 얼굴만 아는 정도의 주책맞은 누군가가 쥐방울을 붙잡고 느닷없이 본인의 여자친구 얘기를 늘어놓는다. 그래도 쥐방울은 싫은 내색 하나 없이 그 얘길 다 들어 주고 있다. '주책'들은 대부분 눈치가 없다. 당연히 '겉으로만 열심히 듣는다'는 걸 절대 눈치채지 못한다. 쥐방울도 사람이다. 모든 얘기를 진심으로 경청할 순 없다. '길 위의 사이비 종교인'을 만났을 때, 쥐방울은 '듣기'의 대가로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도를 아십니까'로 시작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한참을 걸어 가며 들어 준다. 오히려 '안면이 있는 흡연구역 그분'의 이야기보다 더 주의 깊게 듣는다. 중간중간 반론도 제기한다. 그들과 '대화'를 하는 거다!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 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친구일 당시, 하루는 쥐방울이 딴청을 부리며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문제될 건 없었다. 연인이 아닌 친구였기 때문이다. '나에게 왜 집중하지 않냐'는 둥 '둘이 있는데 너무한 거 아니냐'는 둥 따질 이유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통화 상대는 이전에 도깨비가 주선한 '소개팅에서 만난 그녀'였다. 둘이 연인으로 발전하게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방해할 이유가 뭐가 있었겠나. 문제는 애먼 데서 터졌다. '계속하고 싶지 않은 통화도 끊자고는 말 못하고 딴짓하며 억지로 받고 있는' 쥐방울을 보면서, 순간 도깨비는 '내 전화도 지금까지 그렇게 받아 온 거 아닌가'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INTJ는 확신을 중시한다. 명백한 근거를 바탕으로 확고한 믿음을 갖는다. A 브랜드, B 친구, C 이론, 무엇에 대해서든 개인적으로 세운 확신을 따른다. 당시는 쥐방울의 태도, 도깨비와의 관계에 대한 확신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혼란스러워진 도깨비는 분위기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쥐방울은 그때 도깨비의 흥분을 이해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INTJ가 화를 내는 타이밍은 대개 사람들로부터 쉽게 이해 받지 못한다.

 

이후 둘은 몇 시간에 걸친 대화로 오해를 풀었다. ESFP가 한참 부족한 논리력을 있는 힘껏 끌어올려 INTJ를 설득한 덕분이다. INTJ ESFP의 노력이 가상했고, 진심을 알 수 있었다. 만약 ESFP가 감정에 호소했다면, INTJ ESFP를 이해하지도, 그의 진심을 수용하지도 않았을 거다. 추후에도 같은 일로 갈등을 겪었을 거다. 아니, 그대로 둘의 관계는 끝났을 거다. 도깨비는 계속 같은 이유로 싸우는 연인을 이해하지 못한다. 친구는 말할 것도 없다. 같은 이유로 싸우면서도 지속하는 관계는 피를 나눈 부모·형제면 족하다. 선택할 수 있는 관계에서마저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 필요는 없다. ESFP가 제시한 근거들로 보아 그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관계를 끊지도, 이후 같은 일이 반복되지도 않았다. ESFP는 필요한 순간에 자신의 대화법이 아닌 상대가 원하는 대화법을 택한다. 그리고 그 순간을 귀신같이 알아챈다.

 

인정

 

도깨비가 항상 논리적인 대화를 요구하는 건 아니다. 자신은 대부분의 경우 논리적으로 말하지만, 상대는 그의 방식대로 말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깨비는 상대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인정한다. 그리고 취하거나 버린다. '업무' ''로 얽힌 사이가 아니라면, '그런 사람'으로 파악되는 순간 가까이 하거나 아예 안 본다. 참아 주는 일 따윈 없다. 너무 소모적이다. 시간도 아깝다. 평소 도깨비와 쥐방울은 각자의 방식대로 말하고 대답한다. 쥐방울은 사실 말도 잘 못한다. 문장 완성이 어려운가 보다. 서술어는 도깨비가 맡는다. 그럼 쥐방울은 복창한다. '그래, 내가 하려던 말이 바로 그거야!'라는 뉘앙스로. 때때로, 시간이 갈수록 더 자주, 도깨비는 말 못하는 쥐방울이 웃기다. 신기하고 매력적이다. 쥐방울은 그걸 보고 웃는 도깨비가 밉지 않단다. 기분이 나쁘기는 커녕 같이 즐겁단다. 오히려 적절한 단어를 골라 줘서 고맙단다. 속이 다 시원하단다. 답답했는데.

 

도깨비와 쥐방울이 본인의 강·약점을 잘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람은 모든 면에서 강할 수 없음을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서로에게 '강점' '상대를 존경하는 이유'가 되고, '약점' '내가 필요한 이유'가 된다. 도깨비가 쥐방울을 존경하는 건 논리적이어서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호감을 받는, 누구에게도 미움 받지 않는 신비한 능력 때문이다. 쥐방울이 덜 논리적인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랬다면 둘의 대화는 '부부의 대화'가 아닌 '100분 토론'이 됐을 거다. 생각만 해도 별로다. 차라리 덜 논리적인 게 '내가 해 줄 게 있어' 기분 좋다. 쥐방울도 마찬가지다. 도깨비의 분명한 주관, 논리적으로 결과를 도출해 내는 능력이 신기하다. 때로는 비합리적인 사람들로부터 충격 받는 도깨비가 안타깝지만, 그 상처를 달래는 데 똑같이 비합리적인 자기가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둘은 서로의 약점을 지적하지 않는다. 강점에 대해서는 매일매일 몇 번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려 보인다. 상대가 본인의 약점을 자책할 때는 화제를 강점으로 돌린다. 도깨비는 쥐방울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다 널 좋아하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몰라도 암튼 그렇게들 좋아라 하는데, 거기에 논리력까지 갖추려고 하는 건 너무 큰 욕심 아니냐'. '말을 조리 있게 잘 하게 되는 순간, 널 좋아하는 사람은 손에 꼽아야 할 걸. 나처럼.' 약점을 개선하려 애쓰는 도깨비를 보면서 쥐방울은 딱한 마음에 이렇게 말한다. '우리 포기할 건 포기하자. 다 가지려는 건 욕심이지. 그건 너답지 않아. 거짓말로 팔아서 매출 올려 봤자 다시 다 환불 들어올 걸. 거짓말 연습할 시간에 디피 하나 더 바꾸는 게 훨씬 승산있어.' 도깨비와 쥐방울은 그렇게 서로를 일깨우고 칭찬한다. 그 정도면 괜찮다거나, 그렇게 심한 수준은 아니라거나, 노력하면 나아질 거라는 등의 형식적인 위로는 하지 않는다. 형식적인 위로는 약점에 대한 비관으로 강점마저 발휘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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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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