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범죄

 

최근 범상치 않은 한 범죄 유형이 극성이다. 아직 그 용어조차 낯선 이별범죄. 이별범죄란, 연인이나 부부 등 친밀한 사이에서 한쪽이 이별을 고할 때 다른 한쪽이 벌이는 극단적인 폭력, 협박, 살인 등의 범죄 행위를 말한다. 범행은 생각보다 잔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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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1 - 같이 죽자며 휘발유 뿌리고 불 질러

 

A 16, 이별살인 미수 피해자 B 31, 이별살인 미수 피의자 2011년 사건 전말

A 양과 B 씨는 인터넷 채팅으로 처음 만난다.

한 달 반 뒤, B 씨는 A 양의 실제 나이가 20살이 아닌 16살임을 알게 된다.

B 씨는 A 양이 미성년자라는 사실에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에 대한 애정을 이어간다.

4~5개월 동안 교제한다.

7 11, 낮부터 둘은 문자로 다투기 시작한다.

오후 4, A 양의 아버지가 집 근처에서 서성이는 B 씨를 목격한다.

딸에게 아는 사람인지 물었지만, A 양은 모른다고 답한다.

B 씨는 같이 죽자는 뜻을 전하고 편의점에서 지포 라이터 휘발유를 구입한다.

다음날 새벽, B 씨가 A 양에게 계속해서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am 03:20  술도 사왔고 진정 미친놈이 뭔지는 10분 후에 알게될 거다.

             am 03:58  그럼 같이 죽자. 됐지?

             am 04:09  나 두 개 샀어. 니 몸에 뿌리고 내 몸에 뿌리고. 그게 끝이야.

             am 04:12  딱 너랑 나 죽을 거밖에 안 사서.

             am 04:14  도착했어, 이미. 나와.

4 30분쯤 둘은 A 양 집 근처에서 만난다.

B 씨는 돌아서는 A 양의 등쪽 상반신에 휘발유를 뿌린다.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새벽 5시경 속옷만 걸친 A 양이 몸에 불이 붙은 채 집으로 달려와 가족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A 양은 세 차례 화상 수술을 받는다.

B 씨는 살인미수로 검거되지만, 폭력행위로 처리되어 징역 3개월만 살고 출소한다.

2년이 지난 지금, A 양은 자책감에 종종 자해를 일삼는다.

B 씨의 출소 소식에 A 양은 보복이 두려운 나머지 집이 아닌 외지에서 숨어 지낸다.

 

B 씨 曰

교제하는 동안 종종 다투긴 했지만, 협박이나 폭행이 있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우리는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애교가 많고 날 좋아하는 것 같아 끌렸다. 당시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를 켜긴 했지만, 겁만 주려고 했을 뿐이다. 불 지르는 시늉만 할 참이었다. 그런데 불을 보고 놀란 A가 라이터를 건드리는 바람에, 몸에 불이 붙어 버린 거다. 실수였다. 한창 자랄 어린 나이에 그런 일을 격게 해 정말 미안하다. 후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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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양 曰

새벽에 잠을 통 못 잔다. 그날 일이 떠올라 무섭다. 계속 생각이 난다. 그 사람이 병원까지 찾아와 이상한 짓을 할 것만 같다. 처음에는 친절하고 자상했다. 변하기 시작한 건 3달쯤 지나면서부터다. 만나지 말자고 했더니 그때부터 돌변했다. '너를 가지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다 할 거'라고 했다.

하루는 술병으로 나를 때리려 했다. 주위 사람들이 말려 손으로 맞았다. 칼과 인형을 들고 나타난 적도 있다. 눈으로는 나를 보고, 손으로는 칼로 곰 인형을 마구 찔러 댔다. '니가 나를 물로 보냐, 진정한 미친 짓이 뭔지 보여주겠다'고 했다. 때리는 그를 피해 도망치면 '빨리 안 오면 니네 집에 찾아가 불 지를 거'라며 협박했다.

아니다 싶어 관계를 정리하려고 했지만, 자기는 여전히 날 좋아한다며 이별을 받아들이지 않아 그때마다 다퉜다. 그날도 안 나오면 집에 불을 지른다고 해 어쩔 수 없이 나갔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만났다. 나갔더니 '내가 너한테 그 정도밖에 안 되냐, 억울해서 안 되겠다, 같이 죽자'고 했다.

 

사건 2 - '놀자'는 말은 '좀 맞아야겠다'는 말

 

C 38, 이별살인 피해자, 아내 D 63, 이별살인 피의자, 남편, 목사 2013년 사건 전말

C 씨가 12살이던 1988, 그녀가 다니던 교회에 D 씨가 새 담임목사로 부임한다.

당시 C 양에게 D 목사는 신과 같은 존재이자, 사춘기 첫사랑의 대상이 된다.

C 양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둘은 만나서 식사를 하는 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C 씨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둘은 완연한 연인으로 발전한다.

C 씨의 가족은 25년의 나이차, 이혼 경력,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세 자녀를 이유로 결혼을 반대한다.

22살이 되던 해, C 씨는 D 씨와 혼인신고를 감행한다.

2010 6, 결혼 12년 만에 C 씨는 이혼을 결심, 쌍둥이 두 딸과 함께 집을 나와 쉼터에서 지낸다.

D 씨는 아내의 이혼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내는 곳을 알고 있다며 아내를 협박하고, 보고 싶다며 회유하기를 반복한다.

합의해 주겠다는 남편의 말에 C 씨는 본인 명의의 재산도 포기하고 쉼터를 나와 월셋방에서 생활한다.

D 씨는 끝까지 이혼에 합의하지 않은 채 아내에게 또다시 폭력을 행사한다.

2012년 여름, C 씨는 다시 쉼터로 들어가 이혼소송을 제기한다.

2013 3 29, C 씨는 법원으로부터 '10회 상담 명령' 결정문을 받는다.

5 4, 이혼소송 판결을 5일 앞두고 D 씨는 이혼해 주겠다며 아내를 집으로 불러들인다.

C 씨는 두 딸과 함께 남편 집을 찾는다.

D 씨는 수면제를 C 씨에게 먹이고 본인도 복용한다.

D 씨는 C 씨를 방안에서 목 졸라 살해한 후 그 옆에 누워 잠든다.

6살짜리 쌍둥이 막내딸이 119에 신고, 도움을 요청한다.

C 씨는 끝내 숨지고 만다.

 

C 씨 曰

남편은 때릴 때마다 '놀자'는 표현을 쓴다. 피하거나 저항하면, 죽여버리기 전에 그냥 얌전히 맞으라며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찬다. 쌍둥이를 임신해 만삭이었을 때도, 사람들이 보는 길 한복판에서 주먹으로 머리, 어깨 등을 수차례 맞았다. 칼을 들고 '임신한 배는 칼로 찌르면 안 들어갈 줄 아냐'며 협박하기도 했다. - 2012년 이혼을 준비하며 작성한 진술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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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씨 曰

내가 정말 나쁜 사람이다. 아내는 좋은 사람이다. - 현재 교도소 수감 중

 

이별범죄의 심각성

 

측근들도 눈치 채지 못한다 

 

사건 2의 경우, 가해자와 피해자는 부부였다. 결혼 당시에는 가족들의 반대로 한동안 연락이 뜸했지만, 출산 후 둘은 가족들로부터 부부로서 인정 받게 된다. 친정에서 산후조리에 도움을 받는 등 여느 부부와 마찬가지 수준으로 관계가 회복된다. 하지만 부부의 속사정은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C 씨가 가족들에게까지 걱정을 끼치는 것이 싫어 의도적으로 숨긴 탓이다.

 

더 큰 이유는 D 씨의 행실이 가족들 보기에 훌륭했기 때문이라는 것. D 씨는 목사다. 성폭력, 가정폭력 상담사 자격증도 소지하고 있다. 가족들도 깜빡 속아넘어갈 만큼 겉으로는 인자하고 친절한, 목사다운 목사였다. 목소리와 말투까지도. 같이 교회를 다니며 D 씨를 지켜봐 온 가족들은 그를 마냥 인자하고 너그러운 목사라 생각했다. 김치를 담궈 가져다 줄 때마다 손수 반찬을 받아 나르며 친철한 모습으로 일관하던 D 씨였다. 가족들로선 가정 폭력이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주위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 

 

사건 2에 대해 가정문제연구소 김미영 소장은, '남편이 아내가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행동에 분노를 느낀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내가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했던 쉼터 입소가 남편의 분노를 폭발시킨 결정적 계기라는 말이다.

 

자그마치 12년을 맞고 살았다. 겨우 용기를 내 가정폭력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 줄 쉼터로 피신했다. 도움을 받고자 손을 내미는 것이 가해자의 분노를 사는 행위라면 피해자는 어디서 답을 찾아야 할까.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도 같은 해석을 내놓는다.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가 제삼자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시점부터 피의자의 폭력 수준이 극심해진다'고 한다.

 

가해자는 본인이 피해자라 망상한다 

 

C 씨가 쉼터에 입소한 후 남편과 나눈 대화 중에는 황당한 발언이 있다. 남편 D 씨는 아내 C 씨에게 '당신에게 고통을 준 걸 생각하면 내가 나쁘지만, 당신이 내게 주는 고통은 그 백 배, 천 배인 것을 아시나요?'라고 되묻는다. D 씨는 C 씨의 첫 번째 쉼터 입소 시까지 12년 간 본인의 폭력에 시달려 온 아내보다 오히려 본인이 피해자라는 망상에 빠져 있다.

 

사건 1의 경우에서도 가해자의 망상이 발견된다. '사귀면서 자주 싸우긴 했다. A 양이 다른 사람 말만 믿고 내 말은 아예 들으려고도 안 해서다.'라는 게 B 씨의 생각이다. 그들은 피해자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만 강조한다. 그 사랑에 대한 결과가 이별이라는 데 대해 서운하고 억울하다는, 따라서 진정한 피해자는 본인이라는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피해자가 또, , 또 피해를 당한다 

 

일반적으로 연인과 부부 사이의 범죄에 심각성을 부여하지 않는 데에는, '폭력 및 범죄 행위의 피해자가 그 동기를 제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작용한다. 한쪽이 평소에 심한 폭력을 행사했을 경우, 또는 상대의 인권을 짓밟는 행위를 일삼았을 경우, 끔찍한 범죄로 이어진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종국의 피해자가 종래의 가해자였을 거라고 지레짐작하면서, 가정 내 범죄에 대해 공권력 및 제삼자의 개입을 부정해 왔다. 이별범죄의 사건 전말을 살펴보면, 피해자를 갈등을 불러일으킨 원천적 가해자로 짐작하는 것이 얼마나 큰 오류인지 깨닫게 된다. 십수 년 간 폭행을 당한 것도 모자라 결국엔 살인까지 당하는 비극 중에 비극이다.

 

가해자의 피해자 망상은 종래의 피해자를 마지막 순간까지 피해자로 만든다는 점에서 이별범죄의 결정적 비극 요인이다.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생명을 위협할 만한 이별범죄의 폭력은 일종의 보복 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해를 입히는 경우 '보복'이라 표현한다.

 

그러나 이별범죄에서의 보복이란 가해자가 피해자를 상대로 행하는 폭력이다. 연인과 부부의 은밀한 일상이 드러나기 전에는, 제삼자가 개입해 이를 밝혀 내기 전에는, 계속해서 피해를 입어 온 측이 가해 측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되는 비극을 막을 수 없다.

 

인식 전환의 필요성

 

공권력 개입의 필요성

 

조인섭 변호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조정전치주의에 따라 이혼 등 가사 사건의 경우 판결을 내리기 전 조정을 거치도록 되어 있다. 조정 시 본인 출석 의무가 주어지기 때문에 당사자들은 서로 마주칠 수밖에 없다. 출석을 거부할 수는 있다. 하지만 출석 거부 시 상대의 입장에 초점이 맞춰진 채 판결이 내려지는 등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있다.'고 한다. 가해자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피해자가 단순히 집을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안전장치인 쉼터를 찾는 것만 봐도 피해자의 공포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 피해자에게 '1000만 원 이하의 벌금' 운운하며 만남을 강요하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법 체계다. '이혼 절차상 어느 정도 국가 개입이 필요하다면, 적합성에 대한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무조건적으로 중재에 나서고 숙려 기간을 둘 경우 그 기간 중 심화된 갈등이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공정식 교수(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의 의견에 지지를 보내는 이유다.

 

범죄에 대한 형벌 수준도 지나치게 모순된다. 엄격한 처벌을 시행하고 있는 미국, 영국에서의 사례를 보자. 김형진 변호사(미국 캘리포니아주) 2005년 전 여자친구를 스토킹하다 황산 테러를 범한 피의자에게 38년형, 올해 텍사스에서 전 여자친구를 대상으로 담뱃불로 화상을 입히고 괴롭힌 피의자에게 30년형이 선고된 사례를 들었다. '문화적, 전통적 차이가 있겠지만 피의자 및 가족의 병력은 참작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사건 1의 피의자 B 씨가 부모의 건강이 좋지 않은 관계로, 또 본인이 깊이 뉘우치고 있다는 이유로 징역 3개월형을 받았다는 사실은 피해자 A 양에게 제삼자마저 부끄럽게 만드는 처사다. A 양은 사건 이후 2년이 지난 지금도 출소한 B 씨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일반적 인식 전환의 필요성

 

양형기준은 더 높게 개정됐다고 한다. 우리가 해야 할 몫이 남았다. 이별범죄를 바라보는 일반적 풍토를 바꾸는 것이다. 이수정 교수(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같은 폭력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혼인관계에 놓여 있던 사람들 간에 발생한 폭력에 대해서는 별반 심각하다고 느끼지 않는 독특한 매커니즘이 발견된다. 이는 법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하면서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대학생 60명을 상대로, 다음과 같이 상황을 설정하고 적절한 형량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강간미수 및 살인사건>

① 피해자와 가해자와 관계: 모르는 사이

② 피해자와 가해자와의 관계: 연인 사이

③ 피해자와 가해자와의 관계: 부부 사이

 

'관계없는 사람에 대한 살인이 사회적으로 더 위험한 범죄라고 생각한다', '친밀한 관계에서 범죄가 일어났다면 피해자가 그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겠냐는 생각에 감형되어야 한다고 봤다'는 등의 근거가 제시됐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예상 밖이었다. 공정식 교수(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가까운 사이에서의 범죄들이 더 심각하고 잔인하다'고 했다. 이낙연 국회의원은 '해당 범죄는 살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다분하며, 피해자의 가족들에게도 큰 정신적, 심리적 상처를 남긴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에 따라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우리나라 성인 여성 사망 사건의 반 이상이 면식범, 특히 배우자나 전 남자친구에 의한 사건'이라는 이수정 교수(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의 조언도 이별범죄의 심각성이 일반적 인식에 비해 매우 심각함을 뒷받침한다

 

죽어야 헤어지는가, 이별살인 | 2013-06-08 | 그것이알고싶다 Link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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