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무루


19쪽
우리는 서로가 더 많이 아는 것을 가지고 상대를 몰아세운다. ...... 무지하다는 겸손을 상실한 인간의 오만이란 얼마나 폭력적인가. ...... 어른의 충고란 늘 위계 속에 있어서 권위적이고 무례했다. 나는 그들의 말보다 그들의 말투와 그 말투 속에 깃든 확신이 끔찍했다. 

21쪽
아이를 단속하는 어른의 말들 대부분은 불안에서 기인한다. 아이의 인생에 내재된 불행의 가능성은 부모의 가장 큰 약점이기 때문이다. ...... 아이들은 금지된 세계에 매료되고 불가능한 꿈을 꾼다. ...... 기어이 혼자 가겠다면 돌아오는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아이를 만났을 때 함께 웃거나 울어줄 수 있을 것이다. 엄마도 아빠도 아닌 이모의 일이란 아마도 그 정도의 일일 테다. 

29쪽
무릇 삽질이란 구덩이가 연못도 함정도 되지 않아야 하는 법. ......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경험, 결과를 담보하지 않는 순수한 몰입, 외부의 반응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이것이 삽질의 조건이다. 실컷 빠져들 만큼 재밌다는 점이 놀이하고도 닮았다. 이게 얼마나 재미있는지는 직접 해봐야 안다. 

36쪽
내가 선택하지 않은 세계에서도 누군가는 자신의 본성대로 아름답고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응원하는 마음, 그것은 나에게 일종의 동지애였다. 

39쪽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은 인간이 각각 물리적 압박과 열망이라는 두 가지 힘에 의해 움직인다고 설명한다. ...... 무엇보다 익숙한 힘의 관성은 종종 의지보다 더 큰 힘으로 한 사람의 인생에 작용한다. 

51쪽
세상 끝은 어딜까. 지도상의 가장 먼 곳은 아닐 것이다. 세상 끝에는 타인들이 있다. 타인의 마음에 닿는 일이야말로 어쩌면 세상 가장 먼 곳까지 가보는 일이다. 우리가 문학을 통해 느끼는 감동의 기저에는 언제나 하나의 질문이 있다. "나는 너를 이해할 수 있는가?" 

52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이고, 몸의 고립이 마음의 고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불안이며 삶에서 아름답고 소중한 순간들은 관성 밖에 존재했다는 지난 경험의 되새김이다. 

59쪽
그런데 혼자 저만치 앉아 한가롭게 눈을 감고 볕을 쬐고 있는 애가 있다. ...... 프레드릭은 당당하게 말한다. 자신도 일을 하고 있고, 지금 빛과 햇살과 이야기를 모으는 중이라고 말이다. ...... 많은 작가들이 예술의 쓸모는 쓸모없음의 쓸모를 인정하는 방식으로만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 다른 것을 배척하지 않고, 낯선 것을 포용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 속에 어떤 소중하고 아름다운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는 마음이 좋다. 

73쪽
노력의 방향이, 모두가 정상에 속하게 만들기보다는 누구도 어디에도 속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쪽으로 움직였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84쪽
나는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고 싶다. ...... 세상의 언저리에서도 재미나게 잘 살아가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 쉽게 이해받기보다는 오해받아도 좋다는 쪽을 선택하는 종류의 모험가. 

106쪽
끊어진 풍경들을 잇기 위해 이야기를 끼워 넣는다. 이것은 보편적인 인간의 사고 체계일지도 모르겠다. 자연과학이 생기기 이전의 인간이 신화에 기대어 세계를 이해하려 했듯이, 이야기는 각각의 세계를 해석하는 언어이자 도구인 것이 아닐지. 

108쪽
때때로 도시에 출현하는 야생동물들이 뉴스에 등장한다. 사람들은 질겁을 하고 해결해야 할 큰 문제가 일어났다고 말하면서 동물을 사살하거나 포획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땅에 살고 있었다. 우리가 그들의 몫까지 남김없이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차지해 버렸을 뿐이다. 

123쪽
모든 것을 다 가지고도 가출한 개가 찾는 또 다른 것의 이름은 '경험'이다. ...... 제니는 샌닥의 곁을 진짜로 떠났다. 사랑하는 개를 떠나보낸 슬픔 속에서 샌닥은 제니에게 마지막으로 모험을 선물했다. 

135쪽

고양이가 누운 도로 위로 차들은 멈추지 않고 달린다. 그리고 밤이 온다. 차도 사람도 모두 사라진 깊은 밤, 숨어 있던 어미가 나타난다. 차갑게 굳은 새끼를 입에 물고 어미는 멈춘 바퀴들 속으로 사라진다. <콰앙!>의 슬픔은 어린 고양이가 차에 치여 죽는 순간이 아니다. 새끼가 죽어가도 숨어서 밤이 되기를 기다려야 하는 어미의 마음에 있다. 

142쪽
존 브라운이 고양이 따위는 없다고 자꾸만 외면하자 할머니는 앓아누워 버렸다. 그 바람에 존 브라운도 굶고 할머니도 굶고 고양이도 굶는다. 존 브라운은 할머니의 분홍색 털 슬리퍼를 끌어안고 곰곰이 생각한다. ...... "고양이를 데려오면 나을 것 같아요?" ...... 바로 공감이다. 사랑하는 이의 슬픔을 이해하고 낯선 이의 삶을 들여다보는 마음이 이 장면 속에 있다. 

170쪽
신기하게도 낯선 사람들 앞에서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알았다. 대화의 깊이는 관계의 거리가 아니라 경청하는 태도에 있다는 것을. 가까운 사람들, 나를 조금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질문은 종종 무례했다. 

174쪽
정말 둘이 함께여야 하는가. 혼자서는, 부족한 채로는 행복할 수 없는가. ...... 어떤 삶은 빈틈에서 완성된다. 누군가에게 함께란 각자의 속도로 나란히 굴러가는 일이다. 

174쪽
책을 읽는다는 건 작가의 세계 위에 내 세계를 겹쳐보는 일이다. 어떤 이야기도 읽는 이의 세계를 넘어서지는 못 한다. 내가 읽은 모든 이야기는 언제나 그때의 나만큼만 읽혔다. 그래서 하나의 이야기는 동시에 읽는 수만큼의 이야기다. 

175쪽
가보지 않고 장담할 수 있는 길은 없다고, 걷는 것보다 중요한 건 어쩌면 걸음걸이라고. ...... 그러니 언제나 최선은 자신을 믿고 매 순간 가장 나다운 걸음걸이로 걷는 일일 뿐.

179쪽
그에게 배운 ...... 가장 소중한 것은 시작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시작하는 마음만큼이나 중요한 마음 하나를 때마침 ...... 배울 수 있었는데, 바로 포기하는 마음이다. ...... 내 손에서 모든 식물이 다 잘 자랄 수 없다는 현실과 아파트 베란다라는 한계를 인정하고 나서 나는 이전보다 더 많은 식물을 더 잘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열매도 좀처럼 맺지 못하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살아서 꽤 우거진 정원이 되었고 어떤 밤에는 그림책을 읽다가 문득 나에게 말을 거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189쪽
먹는 일은 너무 자주 반복되어서 그 행위 안에서 나를 배제하기가 힘들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에 대해 생각할 때 식생활은 분리할 수가 없다. 

192쪽
자칫 금욕적으로 보이는 이들의 삶은 사실은 아주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욕망이 실현되는 과정이었다. 많이 버는 대신 많은 시간을 가지는 삶, 돈을 재화와 서비스를 사는 대신 스스로 만들고 고치는 기술을 익혀 나가는 삶 말이다. ...... 필요한 것의 수는 줄이고 할 수 있는 기술의 수를 늘리려 애쓰는 이고, 무인도에 가져가야 할 세 가지 혹은 노년의 삶에 필요한 세 가지가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몸에 새겨진 것이기를 바라는 이다. 

195쪽
"당신은 어떤 노인이 되고 싶은가?" 우선은 좋은 습관을 지닌 노인이 되고 싶다. 기술이나 재능이 아니라 습관인 것은 성과보다 반복되는 리듬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반복해 나가는 것은 내가 그 일을 잘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사람으로 살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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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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