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26쪽
술을 마시면 더욱 솔직하고 진실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얘기인데, 나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 그런 식으로 밝히는 마음이 더 '진실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야기를 꺼내기 주저하는 마음도 어쨌든 진심이다. 그 마음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26쪽
술에 취한다는 건 결국 그냥 좀 멍청해지는 것이다. ...... 취하는 것은 단지 멍청해지는 것일 뿐이긴 해도, 어쨌든 내가 좀 멍청해지는 그 순간이 즐거운 것도 사실이니까. 

58쪽
내가 정의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란 밖으로부터 오는 자극과 안으로부터 솟는 의지, 이 두 가지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 그런 상태가 되면 내 안에 있는 것이든 밖에 있는 것이든, 그 무엇과도 교류하지 않게 된다. ...... 그래서인지, 나는 아무것도 안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버릇을 갖게 됐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든지 아무것도 안 해야 '된다'고 생각하면 상황은 점점 불리해진다. ......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는, 흙탕물이 서서히 흙과 물로 분리되듯 시끄러운 생각들이 점차 가라앉고 하고 싶은 바가 뚜렷해진다. 

67쪽
꼭 아이를 키우는 일이 아니더라도, 삶이라는 것은 대체로 어찌어찌 되어 갈 뿐이다. 하지만 뭐랄까, 아이가 없는 지금은 그 어찌어찌 흘러가는 물결 속에서 어푸어푸 헤엄이라도 쳐볼 수 있는 반면, 아이를 낳게 되면 집채만한 파도에 가만히 몸을 내맡겨 휩쓸려가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을 것만 같다. 

120쪽
하지만 뭐랄까, 나는 삶이란 늘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라고 생각한다. 지금보다 더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더 외로워질 것도 각오해야 한다. 

135쪽
달리기라는 운동의 가장 큰 장점은 단순함이다. 복잡한 규칙도 값비싼 장비도 필요 없다. 나 자신과 달리기 좋은 길, 이 두 가지만 있으면 준비 완료다. 누군가와 의사소통을 하고 약속을 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순간 그 단순함은 깨져버릴 수밖에 없다. 

155쪽
적어도 아직까지는 내 일상의 일부를 콘텐츠로 만들고 싶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상이 콘텐츠가 되는 순간, 그것은 더이상 일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 카메라로 찍어도, 인스타그램에 올려도, 유튜브 콘텐츠로 만들어도, 삶은 결국 증발한다. 

167쪽
다만, 가사는 마음의 표현이지 않나. 마음이 말이 되고, 말이 음악이 되고, 그 음악이 다시 마음에 가닿는다. ...... 나의 마음을 말로 표현해서 다른 이의 마음에 감응을 일으키는 것이 더 큰 목표인 경우라면, 그리고 우리말로 가사를 쓸 생각이라면, 역시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표현들을 사용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213쪽
딱 두 번 해봤을 뿐이긴 하지만, 나는 서핑을 좋아한다. 그 어떤 스포츠보다도 정확히 삶을 유비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다 위에서 서퍼가 할 수 있는 일, 딱 그 정도가 세상에서 한 사람이 가진 몫이 아닐까. 서퍼는 바다의 입장에서 보면 먼지에 불과하다. 부표나 지푸라기와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서퍼는 바다 위에서 즐겁다. 바다에 의해 좌지우지되면서도, 작게나마 나름의 역할을 하며 재미를 찾는다. ...... 나는 다시 한번 망망대해 위의 서퍼를 떠올린다. 대단한 항해를 계획하지 않아도 파도는 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파도를 맞이하고 그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전부다. 

* 유비: 맞대어 비교하다


[네이버 책] 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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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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