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는 다음날 아침 숙취를 부르기도 하지만 보다 빈번히, 욕구를 부른다. 매일 새벽 나는, 식욕에 휩싸인다. 라면이 어디 있더라?
면발을 대고 오려 만든 듯한 앙증맞은 라면용 냄비를 꺼내려는데 어제의 흔적이 눈에 들어온다. 떡볶이 양념이 잔뜩 묻은 프라이팬. 떡 하나, 오뎅 하나 남김 없이 먹어 치울 만큼 꽤나 맛있었던 것 같은데 취기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쉽다. 설거지도 줄일 겸, 아쉬움도 달랠 겸 그 팬에 물을 끓인다. 엄연히 양념이 추가됐지만 스프를 살짝 남기는 양심적인 짓 따윈 하지 않는다. 기대 이상의 맛과 자극을 누린다. 일명 떡볶이 묻은 라면. 결정은 탁월했다.
섞기를 꺼릴 때가 많다. 새롭고, 깨끗하고, 순도 높은 것을 원해서다. 오늘, 각성한다. 섞었을 때의 맛이 더 훌륭하기도 하다는 것. 뭐 좀 묻은 게 나무라기만 할 일은 아니라는 것. 닿고, 묻고, 섞이고, 녹고, 변하여 맛깔스러운 무언가가 탄생하기도 한다는 것. 그렇게 다양성은 무르익는다는 것.
결벽은 결코 고차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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