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 사이토 고헤이

27쪽
제국적 생활양식이란 간단히 말해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의 대량 생산, 대량 소비 사회를 가리키는 것이다. 제국적 생활양식은 선진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풍요로운 생활을 실현해주기 때문에 보통 바람직하고 매력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글로벌 사우스의 사회집단과 지역에서 벌어지는 수탈, 나아가 우리가 누리는 풍요로운 생활의 대가를 글로벌 사우스에 떠넘기는 구조가 존재한다.

49쪽
그런데 칠레에서는 가뭄 탓에 귀해진 물이 코로나 전염 방지를 위한 손 씻기가 아니라 수출용 아보카도 재배에 쓰인다고 한다. 상수도가 민영화되었기 때문이다. ...... 중심부가 계속 승리하기 위해서는 주변부가 계속 패배해야 하는 것이다.

78쪽
이를테면 텔레비전은 갈수록 전력 소모가 적은 제품이 출시되고 있지만, 사람들이 더 큰 텔레비전을 구입하는 탓에 전체적인 전력 소비량은 외려 증가하고 있다. ...... 가령 가정용 태양광 패널이 저렴해져서 아낀 돈으로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갈지도 모른다.

81쪽
전 세계의 상위 10퍼센트 부유층이 전체 이상화탄소 배출량 중 절반을 차지한다는 놀라운 데이터도 있다. 특히 자가용 비행기와 고급 스포츠카를 굴리며 대저택을 몇 채씩 소유한 상위 0.1퍼센트의 부유층은 환경에 매우 심각한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

84쪽
선진국이 벌이는 기후 변화 대책이란 석유 대신 다른 한정된 자원을 글로벌 사우스에서 한층 격하게 채굴, 수탈하는 것에 불과하다.

91쪽
지금까지 고찰한 내용에서 알 수 있듯, 녹색 기술이라 칭송받는 것도 생산 공정까지 고려해보면 그다지 친환경적이지 않다.

108쪽
식량에 관해 살펴보면 전 세계 식량 공급의 1퍼센트만 있어도 8억 5000만 명을 기아 상태에서 구할 수 있다. 현재 세계에서 전력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약 13억 명이라고 하는데, 그들 모두에게 전력을 공급해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퍼센트 증가할 뿐이다 ....... 경제 성장을 하지 않아도 기존 자원을 잘 분배함으로써 사회를 지금보다 번영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117쪽
자본은 경제 성장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기후 변화 등 환경 위기가 심각해지는데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그조차 이윤 획득의 기회로 여긴다. 산불이 늘어나면 화재보험을 판다. 메뚜기가 늘어나면 농약을 판다. ...... 이것이 이른바 '재난편승형 자본주의'다.

144쪽
최근 들어 이뤄지는 마르크스 재해석의 핵심 개념 중 하나는 '커먼common', 혹은 '공'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커먼'이란 사회적으로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관리되어야 하는 부를 가리킨다.

149쪽
복지국가의 특징은 국가에 의한 수직적 관리인데, 이 역시 수평적인 '커먼'과 어울리지 않는다. 단순하게 사람들의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방법이 아니라 지구를 자본의 상품화로부터 되찾아 지속 가능한 '커먼'으로 삼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160쪽
자본은 본질적으로 가능한 단시간에 더욱 많은 가치를 획득하려 한다. 그런 자본의 특징이 인간과 자연의 물질대사를 크게 교란한 것이다. 노동자들이 오랫동안 가혹한 노동에 시달린 끝에 신체적 정신적 질환에 걸리는 것은 교란의 결과이며, 천연자원의 고갈과 생태계 파괴 역시 마찬가지다.

184쪽
게르만족은 토지를 공유물로 관리했다. 그들에게 토지는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었다. 그래서 자연의 은혜를 일부 사람들만 입지 않도록 평등하게 토지를 배정했다. 부의 독점을 방지해서 구성원 사이에 지배종속 관계가 생겨나지 않도록 조심한 것이다.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었기 때문에 토지는 소유자의 무분별한 남용에서 지켜질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토지의 지속 가능성도 유지되었던 것이다. 마르크협동체의 토지 공동 소유에서 보이듯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평등'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190쪽
그처럼 자본주의를 비판한 마르크스가 추구했던 것은 무한한 경제 성장이 아니라 대지, 즉 지구를 '커먼'으로 삼아 지속 가능하게 관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리비히와 프라스가 원했던 더욱 '합리적'인 경제 시스템이다.

192쪽
공동체에서는 전통에 기초하여 비슷한 수준의 생산을 반복한다. 즉, 경제 성장을 하지 않는, 순환형 정상형 경제다. 공동체가 '미개'하고 '무지'했기 때문에 생산력이 낮고 빈곤에 허덕였던 것이 아니다. 공동체는 오히려 더 오래 일하고 더 생산력을 올릴 여지가 있어도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권력 관계가 생겨나 지배 종속 관계로 변화하는 것을 막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경제 성장을 하지 않는 공동체 사회가 지속 가능하며 평등한 인간과 자연의 물질대사를 안정적으로 가능하게 한다고 마르크스가 인식했다는 것이다.

218쪽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2020년 6월 21일 엘리자베트 보른 환경장관에게 제출한 프랑스 시민의회의 결론이다. 추첨으로 뽑힌 시민 150명은 기후 변화 방지를 위해 대략 150가지 대책안을 제출했다. 그중에는 2025년부터 비행장 신설 금지, 항공기 국내선 폐지, 자동차 광고 금지, 기후 변화 대책용 부유세 도입 등이 있었다.

221쪽
현대인 대부분은 동물을 사육하고 생선을 낚아서 그것들을 먹을거리로 손질하는 능력이 없다. 옛날 사람들은 그러기 위한 도구까지도 직접 만들었는데,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자본주의에 빠져들어 생물로서 무력해졌다. 우리는 상품의 힘을 매개로 삼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한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술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변부를 약탈하지 않고서는 도시의 생활을 해나가지 못한다. 
한때 유행했던 '로하스LOHAS' 역시 무력한 상태를 극복하려 하지 않고 소비만으로 지속 가능성을 목표하다가 결국 실패했다. 소비자 의식이 변하는 정도로는 성장을 목표하는 상품경제에 너무나 간단히 잡아먹히는 것이다.
이처럼 잡아먹히고 빠져드는 것을 마르크스의 개념을 사용해 다른 말로 바꾸면, '포섭'이라고 한다. 우리의 생활은 자본에 '포섭'되어 무력해지고 있다.
* 로하스는 '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를 줄인 말로 공동체의 더욱 나은 삶을 위해 건강과 환경, 지속 가능한 발전 등을 우선하는 소비자의 생활양식을 뜻한다.

222쪽
자본의 포섭이 완성됨으로써 자율성과 살아가기 위한 기술을 빼앗긴 우리는 상품과 화폐의 힘에 기대지 않으면 생존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생활의 쾌적함에 익숙해진 나머지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힘까지 잃고 말았다.

222쪽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 해리 브레이버만의 말을 빌리면, 사회 전체가 자본에 포섭된 결과 '구상'과 '실행'의 통일이 해체된 것이다. ...... 작업이 효율화하면 사회 전체의 생산력은 현저하게 상승한다. 그에 비해 개개인의 생산 능력은 점점 저하된다. 현대의 노동자는 더 이상 오래전의 직공처럼 혼자 완성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텔레비전과 컴퓨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텔레비전과 컴퓨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른다.

229쪽
다르게 표현하면 세계적 위기를 앞둔 상황에서 전혀 다른 생활 양식을 만들어내어 탈탄소 사회로 이행할 가능성을 억압하고 배제하는 것이 바로 기술이라는 말이다.

239쪽
그렇지만 공유지는 자본주의와 함께 존재할 수 없었다. 모두가 생활에 필요한 것을 스스로 조달한다면 시장에서 상품이 전혀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도 굳이 상품을 구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클로저로 커먼즈를 철저히 해체하고 배타적인 사적 소유로 전환해야 했다.

245쪽
'공공의 부'는 만인에게 해당하는 공유재이기에 희소성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런데 '개인의 재산'은 증가하기 위해 반드시 희소성이 늘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공공의 부'를 해체하여 의도적으로 희소하게 만들어야 '개인의 재산'이 증가한다. 즉, 희소성의 증가가 '개인의 재산'을 늘린다.

257쪽
악순환의 원인은 희소성이다. 그러니 자본주의의 인공적 희소성에 저항하여 풍요로운 사회를 창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마르크스의 탈성장 코뮤니즘이다.

262쪽
자본의 포섭을 받아들인 노동조합과 대조적으로 노동자협동조합은 생산 관계의 변화를 꾀한다. 노동자들이 노동 현장에 민주주의를 끌어들여서 경쟁을 억제하고, 개발과 교육과 직무 전환에 관련한 의사결정을 스스로 한다. 사업을 계속하기 위해 이윤 획득을 목표하되, 시장에서 이뤄지는 단기적 이윤 최대화나 투기 활동에 투자가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역점은 '나답게 일하는 것'이다. 노동자협동조합의 목적은 직업 훈련과 사업 운영을 통해서 지역사회로 환원하는 '사회연대경제'를 촉진하는 것이다. 노동을 통해서 지역이 장기적으로 번영하길 중시하며 투자를 계획하는 것이다. 이는 생산 영역 자체를 '커먼'으로 삼는 것이며, 바로 경제 민주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289쪽
<자본>에 담긴 물질대사론에 의하면, 인간과 자연은 노동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때문에 자연환경을 구하기 위해서는 노동의 양상을 바꾸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일부러 도발적으로 말한다면, 분배와 소비를 변혁하거나 정치제도와 대중의 가치관을 바꾸는 것은 마르크스에게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과 생산의 변혁이다. ...... 실제로 기존의 탈성장파는 주로 소비 차원에서 이뤄지는 '자발적 억제'에 초점을 맞춘다. 절수 절전을 하고, 육식을 그만두고, 중고품을 사고, 물건을 공유한느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소유, 재분배, 가치관 변화 등에만 주목하여 노동을 근본적으로 바꾸려 하지 않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맞서지 못하는 것이다.

297쪽
그 진정한 구상은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사용가치 경제로 전환', '노동 시간 단축', '획일적인 분업 폐지', '생산 과정 민주화', '필수 노동 중시'.

304쪽
마르크스는 노동을 기피해야 한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이 매력적인 노동이기 위한, 다르게 표현해 개인의 자기실현이기 위한 주체적 객관적 조건들"을 획득하여 창조성과 자기실현의 계기로 삼는 것을 지향했다. 여가를 위한 자유 시간을 늘릴 뿐 아니라 노동 시간에서도 고통과 무의미함을 없애자는 뜻이다. 그러면 노동을 더욱 창조적인 자기실현 활동으로 바꿀 수 있다. ...... 인간다운 노동을 되찾기 위해 획일적인 분업을 그만두면, 경제 성장을 추구하는 효율화는 더 이상 최우선 사항이 아니게 된다. 이익보다 보람과 상호부조를 우선하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활동하는 폭을 넓히고. 평등한 작업 부담 분담과 지역사회 공헌 등을 중시하면, 역시 경제 활동의 속도가 늦춰질 것이다. 이는 바람직한 변화다.

307쪽
생산 과정의 민주화란 '어소시에이션'에 의한 생산수단의 공동 관리를 뜻한다. 즉,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지 민주적인 의사결정으로 정하는 것을 목표한다. 당연하지만 의견이 갈릴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는 강제적인 힘이 없기에 의견을 조율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사회적 소유'가 일으킬 결정적인 변화란 의사결정 과정의 감속인 것이다. ...... 소련은 경제 활동이 느려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관료가 주도하는 독재국가가 되어버렸다.

311쪽
이렇듯 기계화가 어렵다는 이유로 오늘날 노동집약적인 돌봄 노동 부문은 생산성이 '낮고' 비용이 많이 든다고 여겨지고 있다. ...... 자본주의사회에서 필수 노동에 가해지는 압박의 이면에는 '가치'와 '사용가치'의 극단적인 괴리라는 문제가 숨어 있다. ​

330쪽
기후 변화 문제를 매개로 수많은 운동들이 연대하면 경제, 문화, 사회를 아우르는 더욱 커다란 시스템 변혁을 추구할 수 있다. 이런 연대의 목표는 바로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인공적 희소성을 '커먼'의 '근본적 풍요'로 바꾸는 것이다.

343쪽
인권, 기후, 젠더, 그리고 자본주의. 모든 문제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네이버 책]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 사이토 고헤이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 네이버 도서

네이버 도서 상세정보를 제공합니다.

search.shopping.naver.com

 

Posted by 몽자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