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쪽
정보를, 사람을, 마을을 연결하는 기회를 만들어내는 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람들 사이의 다양한 역동을 자연스레 북돋우는 일. 그동안 우리가 함께 또 따로 해왔던 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기획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온라인이 아닌 현실 공간에서 하겠다는 것이었다. 공간을 매개로 하니 모두가 하나의 조직으로 묶일 필요도 없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릴 필요도 없다. 카페라는 공간은 그 자유로움과 유연함을 담기에 괜찮은 그릇으로 보였다.
18쪽
그리고 깨달았다. 처음부터 하나의 그림이란 존재하지 않고, 사람들이 움직이는 동기는 저마다 다르며, 그럼에도 모든 이야기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31쪽
이처럼 성과를 하나의 그릇에 담으려 들지 않고, 일을 만들고 참여하는 사람들의 동기와 과정을 중시하는 태도가 그간 지리산이음이 지켜온 소중한 역량이다. 사람과 마을, 마을과 세계를 연결한다는 조직의 사명에 걸맞은 방식이기도 하다.
71쪽
때로 실패하거나 멈추는가 싶은 일이 생겨도 서둘러 봉합하기보다는 천천히 숙성되기를 기다린다. 이것은 개인의 의지만이 아니라 신뢰를 쌓은 동료들이 가까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어떤 주의나 주장, 성과를 위해 모든 것을 쓸어 넣는 방식을 경계하고, 무슨 일이든 작게, 새롭게 시도하면서 일과 관계를 동시에 성장시키기.
133쪽
"한동안 아팠어요. 마침 음식물 쓰레기 분리 수거를 시작하던 때였는데, 하루는 집에 와서 보니 무섭더라고요. 이게 다 어디로 갈까 싶어서. 이전까지는 눈에 안 보여서 몰랐다면, 직접 보고 나니 외면할 수가 없었어요. 저걸 땅에다 버리는 곳으로 가야겠다 생각했죠." ...... 내가 먹은 게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다니, "이게 사는 거지!"라고 외치며 호미와 고무장갑으로 무장하고 동네를 날아다녔다.
137쪽
2016년 열린 '지리산에서 글 쓰는 여자들' 컨퍼런스에서 <지글스> 편집장 달리는 '여성의 글쓰기'가 갖는 힘을 이렇게 설명했다. "글쓰기는 자기와 가장 내밀하게 만날 수 있는 작업입니다. 욕구를 발견하고, 자기 발화를 실천하고, 그로 인해서 치유를 얻고, 더 많은 새로운 상상을 자기 삶에 끌어오는 것, 그리고 실천하는 것. 이것이 여성으로서 글을 씀으로써 얻는 것이라 생각합니다."(비영리 미디어 컨퍼런스 체인지온@공룡)
164쪽
인큐베이팅incubating은 새가 알을 품는 행위, 그리고 그 기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인터뷰 내내, 홍리는 알을 품는 새가 지닐 법한 인내심과 애틋함, 조심스러움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날 돌아와서야 난생 처음 영한사전에서 이 단어의 원뜻을 찾아보았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개념을 사전으로 재확인할 때면 항상 놀란다. 평소 얼마나 손쉽고 편리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살고 있었는지 말이다.
179쪽
그런데 나중에 그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되게 충격을 받았어요. 아, 이렇게 반자본적, 반사회적 투쟁을 했는데 그 성과는 결국은 두리반이라는 칼국수집을 다시 자본주의 속으로 온전히 옮겨놓는 거였구나, 하고.
183쪽
최근에는 1인 활동가 또는 독립 활동가의 느슨한 네트워크가 조명을 받곤 한다. 자율성과 자발성, 창조성을 바탕으로 무엇이든지 시도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활동이어서다. 정보 통신이 크게 발달한 덕에 일하는 공간도 특정한 사무실이나 책상으로 고정할 필요 없이 자유롭게 옮겨 다니는 디지털 노마드적 생활 방식을 추구할 수도 있다.
184쪽
조직은 특정한 목표를 추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양한 존재가 깃들이고 서로 만나고 때로 대립하면서 자기 세계를 천천히 만들어갈 수 있는 울타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도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다.
186쪽
하나의 전략이나 구조에 모든 것을 쓸어 담는 게 아니라, 빈 구석과 모호한 지점 사이에서 가끔 반짝 나타나는 변화에 주목할 수 있는 집중력과 유연함이 필요하다.
187쪽
천천히, 자기가 선 곳에서 주위와 다르게 이어져가기를.
[다음책] 사람 마을 세계를 잇다 - 장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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