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현
30쪽
나는 그것을 '일상적 파시즘'이라 부르겠다. ...... 그것은 사람들이 체제의 배후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 전통이라는 이름의 문화화적 타성들, 설명하기 힘든 본능과 충동들 속에 천연덕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 일상적 파시즘은 그러므로 잡식성이다.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민주정이든 전제정이든 무엇과도 손쉽게 짝을 이룬다.
일상적 파시즘은 보통 사람들의 일상 생활 속에 깊이 뿌리 박고 있는 전 사회적 현상이지만, 그것의 재생산 구조는 기본적으로 학교 교육에 있다. 근대 국가에서 의무 교육이 도입된 이래, 학교 교육은 사회 구성원을 권력의 요구에 따라 재생산하는 기제이다.
31쪽
체벌 금지를 전후해 나타난 '왕따' 현상은 이 점에서 주목된다. 그것은 명령적 복종 단계를 벗어나 근대화된 규율 권력이 학생들에게 강제하는 자발적 복종의 극단적 결과이다. '왕따'는 명령적 복종 단계에서 선생님의 문제아가 자발적 복종 단계에서 동료 급우들 사이의 문제아로 자태 전환한 것일 뿐이다.
34쪽
생활로부터 자유로운 대학에서 벗어나 사회인이 되었을 때, 상명하복 문화에 길들여진 이들은 체제의 충실한 파수꾼이 된다.
41쪽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민족에 속해 있다." 식민지와 분단이라는 역사적 경험은 이 명제를 정당화하기에 충분하다. '우리'라는 단일한 정체성을 요구하는 반제국주의 투쟁에서 파생된 이 명제는 이제 획일을 강조하는 강압적 동질성을 의미한다.
권혁범
57쪽
이러한 반공주의의 렌즈에서는 분홍색, 주황색, 빨간색의 구분이 없다. 모두 다 '빨갱이'인 것이다.
58쪽
신고와 자수를 권유하거나 강제하는 반공 구호가 과연 '간첩' 잡기만을 위한 것인가? 이러한 부담을 통해서 억제되는 것은 단순히 진짜 간첩의 첩보 활동만이 아니고 모든 형태의 수상하고 이탈적이고 진보적인 그리고 모든 영역에서의 기득권 세력에 대한 도전적 생각과 행위이다.
60쪽
반 세기 넘게 재생산된 반공주의 회로는 모든 불법적이고 부패한 현실을 코 앞에서 보면서도 그럭저럭 순응하고 사는 버릇("좋은 게 좋은 거지 뭐. 세상이 다 그런 거지"), 그것에 대한 도전이 도전자 개인에게 쓸모없는 고통과 번민을 안겨 줄 것이라는 공포("너 혼자 그래 봐야 너만 손해야. 세상이 바뀌겠냐"), 이것을 통해 유지되는 집단적 범죄 행위에 대한 동참과 인정("너나 나나 다 그렇게 뜯어먹으며 사는 거지. 도덕 군자라고 별 수 있냐?")의 정치 사회적 문화를 더욱 강화하는 데 결정적으로 이바지하였다.
우리 몸 안에 자리 잡은 이러한 반공주의 회로는 체제 순응성을 강제하는 정치 사회화 과정을 통해 불균형 발전과 사회 이익의 불균등 재분배로부터 오는 사회적 약자의 저항을 봉쇄하고 길들이는 역할을 수행한다. 반공주의는 이제 단순히 북한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이나 거부가 아니고 한국 사회의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질서를 정당화하고, 보호하고 그것을 재생산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생체 권력이 되어 버렸다.
62쪽
북한에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에 대한 논의가 완전히 제거된 반쪽 사회가, 남한에서는 사회주의와 좌파 사상에 대한 객관적 이해와 수용이 철저히 금기된 반쪽 사회가 형성되어 한번도 주민들의 의시과 행위를 비정상적으로 절단하고 옥죄어 왔다.
62쪽
...... 차이와 다양성을 묵살하는 사회, 적과 동지를 명확히 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 ......
박노자
92쪽
여기에서 나는 또 하나의 충격적인 발견을 할 수 있었다. 유럽 사회나 소련 지식인 그룹에서는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려면, 이 나라에서는 '운동권'이라는 일종의 반란자 대열에 속해야만 한다는 점이었다. 군대라는 것이 지배층의 이익을 위한 훈육 기관이라는, 우리로서는 일반적이고 당연한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 사람이 반란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다운 사고를 가지기 위해서는 꼭 반란을 일으켜야 할 현실!
94쪽
'나라'라는 상대적, 현실적 구조에 '비폭력'이라는 절대적, 도덕적 진리를 대립시켜 나라와 관련된 일체의 현실적 이해 관계를 포기할 자세를 갖추어야 비로소 '나'라는 형이상학적인 존재가 성립한다는 나의 주장은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하였다. 물론, 원칙적으로 폭력이 비도덕적이고 비폭력이 우월하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이 철학적인 문제를 놓고 '내'가 '국가'에 맞서야 한다는 생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국가'라는 존재가 위협적이고 전지전능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96쪽
우리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가 '신성한 맹종 학습의 의무'로 이미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군대가 양심 따위의 '불필요한 것들'로부터 '완전 해방된' '조직 사회형' 인간들을 양산함으로써 파시스트적인 국가의 최대 교육 기관 역할을 했음을 직시해야 하지 않을까?
98쪽
체제의 틈새에서 편하게 '놀기'를 갈망하는 심리가 그 체제의 수명을 연장시킬 뿐이다.
99쪽
내무반에서 병장에게 얻어맞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아첨을 떤 경험이 있는 사나이라면 재벌 주인이나 국가 관료에게 '말대꾸' 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상식으로 보인다.
...... 맹종 문화가 직장 생활마저 지배하는 한, 하급자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나 상급자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 거침없는 자기 권리 주장 등 자유 민주 사회의 직장 문화가 완전히 정착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은실
115쪽
서구를 모델로 하는 경제 개발 방식의 도입은 기존의 사회 관계에 하나의 위협이었는데, 한국 근대화 프로젝트에서는 이 문제를 물질과 정신의 분리, 동양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의 분리, 그리고 제도와 문화를 분리하여 새롭게 재조합하는 것으로 해결하고자 하였다. 즉 시공간과 성별의 분리적 결합을 근대화의 구성 요소인 물질과 정신이라는 두 개의 축과 결합시켜 물질/현대/서양/남성 그리고 정신/전통/동양/여성이라는 분리된 가치 구조를 구축했다. 근대화를 통해 물질적으로 부강해지는 사회는 지향하지만,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나 개인주의에 기반한 문화나 정신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물질적 서구화와 정신적 한국화를 지향하는 문화적 장치가 근대화 기획 속에서 구축되기에 이른다.
118쪽
근대화 과정에서 가치와 문화로서의 한국적 지향은 동일성의 논리로 한국인을 정체화시켜 왔다. 이러한 동일성의 논리는 내부의 차이를 억압하는 한편, 가장 중요한 집단 가치의 구현체로 사회/국가/민족을 구성해 냈다.
126쪽
가족 계획 사업을 통해 공적인 영역으로 나온 여성의 성과 출산력의 정치화는 국가에 의한 정치화였다. 개별적 여성이 갖던 재생산 능력과 성적 능력은 국가에 의해 사회적 몸으로 변형되면서 도구화되고 탈개별화되어 버렸다. 개별적 여성들의 몸의 능력은 이제 발전, 경제, 국가의 맥락으로 들어가 사회를 위한 기능으로서 그 규범성과 정상성이 평가 받게 된 것이다.
권인숙
136쪽
작년부터 올 봄에 걸쳐 약 서른 명 정도의 1980년대 여성 학생 운동가를 만났습니다. ...... 하나같이 전달되어 오는 것은, 그들이 경험한 것이 차선과 다름을 허락하지 않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문화였다는 것, 개인이라는 단위가 전혀 이해되지 않은 구조였다는 것이었습니다.
142쪽
그런 점에서 우리는 아주 적절한 주체들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민주주의를 상상하고 염원하지만 민주주의를 모르기에 싸움을 위한 조직체에 적합한 인간상들이었습니다.
143쪽
우리는 적에 대한 적개심을 곧추세우고, 그것을 표현하고 싸우는 문화 코드에 익숙한 채로 살았습니다. 공통의 적을 위해서, 집단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을 죽이도록 훈련 받은 세대였습니다. 우리가 성장한 사회가 개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조금이라도 있는, 아니 국가와 사회, 도덕이 지향하는 인간상에서 일탈한 사람에 대한 약간의 존중심이라도 있던 곳이었습니까?
148쪽
우리는 정말 우리가 누구인지를 많이 생각해야 하는 세대입니다.
유명기
153쪽
순수주의는 이처럼 이물(異物)의 존재를 배제하면서 내부의 동질성을 강화한다.
155쪽
닫힌 민족 의식은 항상 외부의 이물을 경쟁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그리고 우리와 힘을 비교해서 서열과 차별을 만들어 나간다. 인종의 차별도 이런 맥락에서 생성된다.
168쪽
빈부의 격차, 민족과 인종의 차이가 차이 그대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서열로서 재정렬되는 것이다.
...... 차이를 찾아 그것을 서열화하는 관행이 의식화된 곳에선, 보다 미세한 균열의 차이라도 그것을 찾아 확대함으로써 차별을 확대 재생산하는 경향이 있다.
...... 이처럼 지배자들의 차별 가치로 무장한 피차별자들이 서로를 차별함으로써 복합 차별의 구조는 존속한다.
김근
180쪽
이 우스개를 듣고 웃는 사람들은 웃음의 이면에서 나도 틀리게 읽으면 조롱거리가 되겠지 하는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두려움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언어가 규정해 놓은 표준적 체계라는 전체 안에 편입되어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는 생각 때문이리라. 다시 말해서 앞에서 말한 상징 체계가 만들어 내는 전체주의 윤리관이 죄의식을 생성시키는 것이다.
187쪽
우리말은 인척간의 관계와 서열을 의미화하여 만든 호칭이 특별히 발달하였다. 이 호칭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려면 기하학적으로 만든 수형도(tree diagram)를 그려야 할 만큼 복잡하다. 이러한 기하학적 공간에서 만들어진 복잡한 호칭으로 자신과 타자를 인식하도록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을 인식할 때 좌표적 인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짙다. 그래서 인척 관계가 전혀 없는 남하고도 이런 인상에 의거해서 관계를 맺으려 한다.
188쪽
이 매개가 지시하는 직접적인 기호 내용은 관계와 숫자이기 때문에 자연히 서열을 관념화한다. 따라서 '나'의 정체성은 개인의 이름보다는 호칭과 촌수 사이에서 분열되고 또 부유한다. 우리가 누구를 지칭할 때 이름으로 가리키기보다는 형, 누나, 언니, 동생, 조카, 외삼촌, 그리고 더 나아가 남을 부를 때에도 선생님, 선배님, 사장님 등으로 부르는 것이 더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이러한 구조의 언어를 사용하는 한 우리는 전체주의 윤리의 지배에서 벗어나기가 매우 힘들다. 누구를 비난할 때 처음에는 개인의 잘못을 집중 성토하다가 상대가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논리로 저항하면 으레껏 ...... "너는 애비 에미도 없느냐?" 등과 같이 상대가 속해 있는 체계 텍스트를 들먹이는 경우를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즉 논리가 먹히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상대방의 논리를 무화시키고 논리성의 피안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 초논리적 논리가 바로 전체주의 윤리인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전체에 누를 끼치는 것은 전체주의 윤리에서 중죄로 분류된다. 윤리를 범한 자는 체계의 낙원에서 따돌려질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므로 누구든지 체계 텍스트를 들먹이면 긴장하게 되는 것이다.
190쪽
여기서 이데올로기적 효과란 개인의 성정을 억압하는 가운데 메시지의 내용을 강박적으로 수행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한약은 정성이다"라는 말이다.
...... 따라서 이 말 한 마디로 약을 먹을 환자는 약을 태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덜 수 있고, 약을 조제한 사람은 약효가 없다고 환불해 달라는 불평을 들을 필요가 없어진다. ...... 이 말 한 마디야말로 한 사람의 희생으로 전체 다수가 무거운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훌륭한 기제인 셈이다.
한약의 약효를 어떻게 '정성' 하나로 규정하거나 차별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한약의 성격을 '은(는)'의 형태를 사용한 문장 구조를 써서 배타적으로 표상함으로써 '정성'의 여부에 관심을 묶어 둔다. 따라서 어떤 형태의 말이 발화될 때에 그 말이 일으키는 긴장과 수행성, 그리고 더 나아가 그 긴장 속에서 희생되고 배제되는 것이 무엇이고 또 누구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192쪽
...... 언어의 한계이기 때문에, ...... 문화적 유산에 속하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이 부조리를 피할 도리가 없다. 문제는 언어의 한계와 부조리를 알고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192쪽
어느 나라의 언어를 배우면 그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가 역사적으로 형성해 놓은 우주관, 윤리관, 가치관 등이 함께 관념 속으로 딸려 들어오게 마련이다.
전진삼
227쪽
시민의 자의식이 출발하는 가장 근본적인 경계는 자기가 사는 집의 내부를 감싸고 있는 집의 외부에 관심을 갖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 다음은 가로로, 나아가 도시 전체로 확산되는 것이다.
문부식
240쪽
야만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광기에 의한 육체의 말살이라는 한정된 것에 그친다면, 그러한 야만의 역사는 어느 시점에서 끝났다고 단정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야만의 지배를 광기에 의한 정신의 지배, 즉 인간의 영혼을 노예로 만들고 그 육체마저 거짓된 구호와 허위의 가치에 종속시켜 소진되게 하는 총체적 악의 지배라 이해할 때, 지금 우리가 지닌 희망은 너무 부실하고 위태로운 것이 된다. 조금도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 전두환·노태우와 5·6공 부역자들, 그들에게 열심히 추파를 던지는 과거의 야당이자 현재의 집권자들, 언제부턴가 그들의 옆과 뒤에 서 있기 시작한 과거의 재야 투사들, 매일매일 드러나는 그들 사이의 공모와 부패, 그러나 선거 때만 되면 그들에게 표를 던지는 유권자들, 내가 아는 한 이러한 지극히 한국적인 현실의 모순된 상황에 대해 우리의 정치학은 아직 시원스러운 설명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
241쪽
권력은 지지하는 군중이 존재함으로써 성립하고 보존된다. 권력 없는 군중은 현실에서 있어 본 적이 없지만, 군중 없는 권력은 가설로도 불가능하다.
243쪽
국가는 추상적이고 권력은 구체적이다. 권력은 추상적 주체인 국가를 통해 자신을 정당화시킨다. 이것이 바로 국가주의다. 국가주의란 국가의 정당성을 움직일 수 없는 진리로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는 이념이다. 1980년 5월 전두환의 폭력을 묵인하였다는 것은 우리가 그의 권력을 국가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244쪽
남과 북을 막론하고 한반도에서 국가란 엄청난 신화다.
245쪽
우리의 내면은 이렇듯 오래전부터 국가주의의 강력한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광주 학살이 그토록 무자비한 야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침묵시키고 야만의 권력이 국민적 지지를 그렇게 광범위하게 받을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인이다.
248쪽
국가주의를 지탱해 주는 기본 단위는 개인이 아니라 가족(주의)이다. 가족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서라는 동인이 없다면 개인은 국가주의에 일상적으로 동원될 의지를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 도구적 인간의 정신적 갈등을 해소시켜 주는 곳은 바로 이 '무도덕적 가족주의' 이다. ...... 국가주의는 모든 가정을 평범하게 만든다. 우리는 자신이 지은 죄를 가정에 돌아가 씻는다. 그것을 반복하면서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악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250쪽
내가 집단적 참회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은 1980년 5월에 나타났던 이 야만의 실체를 직시함으로써 그것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작용했던 국가주의의 주술로부터 벗어나 국가 권력에 의해 희생된 시민적 자유와 이성을 회복하는 길을 함께 찾아 나서자는 제안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네이버 책] 우리 안의 파시즘 - 임지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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