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재능 - 나이와 긍지
못생겨서 서러운가? 단언컨대, 못생긴 젊은이보다 한눈에 봐도 고약해 보이는 늙은이가 갑절로 욕을 먹는다. 당연히 노력이 필요하다. 욕 먹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서다. 평생토록 성인군자 모양 대쪽같이 살라는 게 아니다. 지혜와 덕을 갖추려는 의지를 가지고 통찰력을 발휘하란 얘기다.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 준다. 우린 그저 흐뭇하게 그 과정을 만끽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해가 갈수록 쌓이는 연륜은 기쁨을 더할 것이고, 그 연륜을 허락하는 세월은 애석하기는 커녕 반갑고 감사하기만 할 것이다.
쟁점은 '많은 나이'가 아닌 '나이를 먹어 가는 과정'임을 이미 앞에서 지적한 바 있다. 연륜의 기쁨도 마찬가지다. 연륜이 어느 정도 깊어진 뒤에 그 깊이를 누리는 것보다 하루하루, 한 해 한 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매 순간을 즐기는 것이 연륜이 주는 기쁨을 제대로 만끽하는 방법이다. 시간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것, 여러 가지 경험을 쌓으면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거나 그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그 깨달음 자체를 즐기는 것이 핵심이다. 이게 바로 나이를 '잘' 그리고 '행복하게' 먹어 가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시간을 할애하고도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별 소득이 없을 때, 혹은 시간을 들이기 아까울 만큼 무가치한 일이라고 생각될 때 '시간이 아깝다' 혹은 '삽질'이란 표현을 쓴다.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일의 효용성에 대한 기대가 있고 없고에 따라 사용 가능한 표현이 달라지는 것이다. '시간이 아깝다'는 표현은 효용성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경우나 없는 경우에 둘 다 쓸 수 있지만, '삽질'은 다른 시점이나 다른 사람 생각에 그 기대가 깔려 있을 때라야만 적절한 표현이 된다. 즉 목적에 부합하는 일이라는 생각에 시작했지만 결국 목적과 상관없는 엉뚱한 일이었음을, 오해 또는 착각일 뿐이었음을 알아차렸을 때 '삽질했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두 표현의 미묘한 차이를 인생에 적용시켜 볼 때, 이 같은 논리가 가능하다. 사람의 인생에서 삽질은 있어도 시간이 아까운 일은 없다는 것. 합목적적인 일이라고 오해하거나 착각해서 엉뚱한 일에 진을 뺄 순 있지만, 무가치하고 무의미하기만 한, 필요 없는 일은 절대 없다는 뜻이다. 결과적으로 남는 게 없어 보이는 일에도, 기대 이하의 결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고 깨우칠 수 있는 진리가 있는 법이다. 때론 애초에 기대한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기대하지 않은, 뜻밖의 소득을 얻게 되기도 한다. 결국 마음만 먹으면 극적인 사건, 사소한 일상, 호인, 악인 등 모든 것, 모든 사람으로부터 지혜를 키우고 덕을 쌓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 깨달음의 과정을 즐기는 것이 바로 한 해 한 해 깊어 가는 연륜을 만끽하는 방법이다.
연륜을 쌓기 위해서는 세월이 흘러야 하고, 당연히 나이를 먹어야 한다. 나이와 연륜이란 따로 떼어 생각할 수도, 존재할 수도 없다. 아울러 연륜이란 그 사람이 가진 재능이기도 하다. 결국 나이가 곧 재능이 되는 셈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다.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그 사람이 쌓아 온 지혜와 덕을 대변한다. 나이는 많으면 많을수록 부끄러워할 치부가 아니라 자랑할 만한, 긍지를 가져도 될 만한 재능인 것이다. 더불어 오롯이 본인 소유이면서도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보물이기도 하다. 자긍심이 주는 쾌감이란 다른 즐거움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흐뭇한 것이다. 나이에 자긍심을 가질 수 있으려면, 살면서 깨닫는 세상의 이치를 소중히 여기고 그 진리를 깨닫기 위해 지혜를 발휘하기만 하면 된다. 두 가지만 마음에 새기면 나이를 먹는다는 게 얼마나 유쾌한 일인지, 세월이 흐른다는 게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많은 나이를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듯이 적은 나이 역시 한스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과거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두고 당시의 부족했던 연륜을 탓하며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이는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는 이기적인 자세다. 연륜에는 엄연히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이란 누구에게나 똑같이 공평하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세월을 뛰어넘는 월등한 연륜이란 섭리에 위배되는 것일 뿐이다. 책 등의 간접경험을 통해 쌓을 수 있는 연륜에는 한계가 있다. 좀 더 잦은 사색과 깊은 성찰로 간접경험 등을 통해 더 많은 지혜를 얻을 순 있지만, 오랜 세월 삶에서 얻게 되는 연륜을 뛰어넘을 순 없는 법이다. 과거지사에 마음 쓰고 후회할 필요가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시의 여건상, 그리고 그때까지 자신이 쌓아 온 연륜상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때는 왜 그렇게까지밖에 생각하지 못했을까, 어쩜 그리도 어리석었을까 하는 등의 회한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삽질이다. 전혀 득이 될 게 없는, 잘못된 생각인 것이다. 중요한 한 가지를 간과해서다. 부족하나마 당시의 가치관으로 판단하고 행동했기 때문에, 결정적이든 미세하게든 그 일이 삶 전반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보다 발전된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지난날에 대한 회고는 피드백 수준에서 그쳐야 한다.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얻는 데에만 활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이상의 후회나 자책은 무의미하다. 니체는 이렇게 묻고 있다. "벼가 익는 데 호우와 강한 햇살, 태풍과 천둥은 전혀 쓸모없는 것이었을까?
행복계발 시트콤 MONZ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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