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콤비 - 결혼의 목적 - 수단과 목적

 

그는 옷을 허물처럼 벗어 놓는다. 정리가 습관화돼 있는 나와는 정반대다. 많은 부부들이 이렇게 다른 생활 습관을 두고 언성을 높인다. 우리 부부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상대를 내 식대로 바꾸려 하지 않는다. 각자의 방식을 존중한다. 애써 화를 억누르는 것도 아니다. 신비로운 능력이라며 오히려 박수를 보낸다. 절대적인 강점과 약점이란 없다는 걸 알고 있어서다. 옷을 아무 데나 벗어 놓는 그의 습관은 종류별, 용도별로 구분해 수납해 두는 내 방식과 다를 뿐이다. 일반적으로 정리는 강점, 무작위는 약점이라고 생각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무작위가 정리에 비해 우월한 능력이 되기도 한다.

 

정리를 잘하는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개인 공간에서는 본인이 이를 통제할 수 있다. 일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혹은 좀 더 마음 편히 쉬기 위해서 공간을 정리할지 말지를 정할 수 있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쓰는 공간, 함께 쓰는 물건이다. 의류 매장에서 일하던 당시 뼈저리게 느낀 점이다. 매장 내에는 창고 겸 사무실이 있다. 일명 백(back). 단순히 판매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매장별로 매출, 재고, 비용, 주문 등을 관리하기 때문에 백에서 보는 사무도 많았다. 백에는 고객의 주문 상품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 둔 게시판이 있었다. 한동안 이것 때문에 상당히 애를 먹었다. 주문 날짜와 생산 공장별로 영역이 나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구잡이로 주문 스티커를 붙여 놓는 일부 상사들 때문이었다. 뒤섞인 스티커는 도무지 한눈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처음에는 일에 서투른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주문 상품을 외고 있을 만큼 훤해졌는데도 엉망인 게시판을 보면 오히려 더 헷갈린다는 걸 발견하고 그제서야 알았다. 정돈되어 있지 않은 정보를 읽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을. 나를 불편하게 했던 상사들 중에 정리가 습관처럼 몸에 밴 이는 없었다. 정리, 정돈은 일반적으로 강점으로 여겨지지만, 이를 잘하면 잘할수록 정돈되지 않은 공간에서는 일의 능률이 크게 떨어진다거나 마구잡이로 섞여 있는 정보를 활용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내가 억지로 그에게 정리를 강요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정리에 능하지 않은 대신 어지러운 공간에서도 편히 쉴 수 있는 여유, 뒤섞인 정보 가운데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고 이를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정리의 달인인 나에게는 아주 어려운 일이 그에겐 너무나도 쉬운 것이다. 약점을 또 다른 강점의 근간이라고 생각하면 개선해야 할 대상이 아닌, 놀랍고 신비로운 재능임을 깨닫게 된다. 옷을 허물 벗듯 벗어 두는 것도 그가 가진 능력이다. 보통 정리는 아무나 잘할 수 없고 어지르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어지르기 역시 아무나 할 수 없는 재능이다. 같이 사는 사람 중에 청소나 정리로 스트레스를 주는 이가 있다면, 그에게 어지르는 것도 타고난 재능임을 일깨워 주자. 방법은 간단하다. 방을 어질러 놓으라고 한번 시켜 보면 된다. 그게 무슨 능력이냐며 코웃음 치고 한껏 어질러 보일 순 있지만, 이내 다시 정리하고 말 것이다. 어질러 놓은 상태를 못 견디는 것이다. 이것이 정리 정돈의 달인이 가진 한계다.

 

제멋대로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약점과 쌍을 이루는 상대적인 강점에 초점을 맞추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지지하게 된다. 내가 가지지 못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실로 대단해 보이는 법이다. 사소한 습관까지도 모두 강점과 연결선상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목적도 잊어선 안 된다. 나는 남편과 깨끗한 집을 꾸미기 위해, 집을 청결하게 유지하기 위해 결혼한 것이 아니다. 행복하기 위해 결혼했다. 그는 내가 사는 집을 정리 정돈하는 수단이 아니다. 본래 그가 가진 습관, 사고방식 등을 그대로 유지해도 나에게는 만족스러운 배우자다. 그가 행복하다면 굳이 내 식대로 그를 바꿀 필요가 없다. 나와 다른 습관을 두고 싸울 필요도 없다. 각자의 행복이 최우선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몽자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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