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결혼의 유일한 이유였다면, 사랑이 식는 순간 결혼도 위기
당신도 아는 것처럼 라스베이거스는 도박과 공연, 관광과 호텔의 도시다. 그리고 라스베이거스는 사랑과 결혼의 도시이기도 하다. 거리 곳곳에 결혼식을 올리기 위한 웨딩채플들이 늘어서 있다. 통계 상의 인구가 겨우 60만 명인 이 도시에서 한 해 15만 쌍이나 결혼을 한단다. 물론 대부분 타지역에서 온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은 결혼을 하기 위해 라스베이거스에 오고, 어떤 사람은 라스베이거스에 왔기 때문에 결혼을 한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몇 십 달러의 돈만 있으면 언제든 결혼을 할 수 있다. 양가 상견례도, 예식 준비도 필요 없다. 결혼을 결심하기만 하면 1시간 안에 식장 예약에서부터 혼인신고까지 모든 걸 할 수 있다. 라스베이거스에 오면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 결혼하는 일처럼 여겨진다. 새벽이건 한밤중이건, 라스베이거스엔 언제나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라스베이거스에서의 결혼엔 오직 사랑만이 중요하다. 사랑에 빠진 남녀는 상대의 집안이나 재산, 학력 등을 따지지 않는다. 오직 사랑을 전제로 한 결혼만이 숭고하며 아름답다고 믿는다. 하지만 사랑이 결혼의 전제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서구 사회에서 연애 결혼이 각광을 받기 시작한 건 19세기부터였단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정략 결혼 대신 사랑하는 남자인 앨버트 공과 결혼을 했고, 평생을 좋은 동반자로 살았다. 이 무렵부터 사람들은 연애 결혼이야 말로 이상적인 결혼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을 전제로 한 결혼이 유행할수록 이혼율 또한 높아졌다. 사랑과 결혼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는 이혼율이 가장 높은 도시이기도 하다. 사랑이 결혼의 유일한 이유였던 만큼, 사랑이 식는 순간 결혼도 위기를 맞는 거다.
빅토리아와 앨버트의 연애 결혼
빅토리아 여왕 Alexandrina Victoria Hanover, 1819-05-24~1901-01-22
만 18세가 되던 해인 1837년 즉위, 즉위 후 혼사 문제가 거론되다.
어린 시절부터 따랐던 레오폴드 벨기에 국왕이 주선 차 독일계 왕족 앨버트와 함께 영국을 방문하다.
만 스무 살이던 빅토리아, 동갑내기 외사촌 앨버트를 만나다.
앨버트를 보자마자 그의 외모와 성품에 홀려 사랑에 빠지다.
이듬해 결혼하다.
결혼 후 4남 5녀를 두다.
남편을 잃은 슬픔으로 아들 에드워드 왕자(에드워드 7세)를 오랫동안 미워하다.
이후 40년 간 홀로 지내며 평생 검은 옷을 입고 미망인을 자처하다.
앨버트 왕자 Prince Albert of Saxe-Coburg and Gotha, 1819-08-26~1861-12-24
빅토리아에게 군주의 도를 깨닫게 하며 정치적으로 편협했던 시각을 확장시키다.
초기에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영국 국민들로부터 외면 당하다.
이후 왕실 인물답지 않은 청교도적이고 성실한 태도로 국민들로부터 신임을 얻다.
장남 에드워드 훈계 차 케임브리지에 다녀오다 병에 걸려 결혼 21년 만에 사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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