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새 정치'에 대한 친절한 설명
1. 약자 우선 - 강자가 아닌 약자, 기득권층이 아닌 서민의 눈높이에 맞춘다
일본의 역사 왜곡과 침략 부정을 규탄하는 국회 결의안에 참석해 의결하는 게 더 중요한가, 지역구에 가서 당선 인사하는 게 더 중요한가? 한 논설위원이 묻는다. 질문 잘했다. 물론 둘 다 중요하다. 하지만 안철수에게 중요한 건 출석과 인사를 떠나, 약속이다. 약속한 걸 우선시하는 게 도리라 생각한다. 그게 안철수의 새 정치다. 가뜩이나 왕따시키는 국회 분위기에 그라고 고분고분 따르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는가마는, 약속 어기기, 말 바꾸기가 체질적으로 안 되는데, 그리고 그 구호 하나로 주민들의 지지를 얻었는데, 이제 와 어떻게 딴 소리를 하라는 건가.
유치원생들도 '새'자는 지금까지와 다른 것에 붙이는 말이란 걸 안다. 누군가는 눈칫밥 먹을까 지레 겁먹고, 다른 의원들에게 잘 보이는 게 주민들과의 약속보다 중요하니까 국회로 향했을지 모른다. 안철수의 이날 일정은 기득권자들로부터 비난 받을 만한, 그들로선 이해되지 않는, 하지만 서민들은 반색할 만한 행보였다. 낮은 자리에서 정치하겠다는 것은, 다른 국회의원들보다 낮은 자리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국민보다 낮은 자리, 서민의 눈높이에서 하겠다는 뜻이다. 안철수의 새 정치는 이미 시작됐다.
70여 명만 참석해 결의한을 상정하지도 못했다고 하는데, 안철수를 제외한 나머지 229명은 대체 불참 이유가 뭐였을까? 안철수처럼 서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다른 일정이 있었던 걸까? 꼬집을 대상을 정하려거든 출석 여부와 함께 그 이유와 마음가짐까지 같이 따져 보기 바란다.
2. 초심 유지 -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불의와 타협하진 않는다
약속을 지킨다는 것, 진심과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것, 그것이 안철수가 말하는 새 정치다. 안철수는 약속을 중시한다. 작년 대선 당시 그가 그리도 폭삭 늙어 버린 건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한 괴로움 떄문이다. 그렇다. 그는 다소 약속을 못 지켰다. 보수는 이를 두고 안철수의 허상이라 지적한다. 과연 그럴까. 정치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함께 하는 작업이다. 안철수가 아무리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도 견제 세력이 이미 A, B 둘 다 국민과의 약속에 어긋나는 상황으로 만들어 버렸다면 안철수는 어떻게 했어야 옳을까?
고심하던 안철수는 결국 C를 택했다. 둘 다 그만둔 것이다. A와 B 중 최대한 덜 어긋나는 쪽으로 잠시 발걸음을 옮겨 봤지만 역시나 이건 아니었다. 그렇게 안철수는 여러 지지자들의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여러 견제 세력들의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온 몸으로 맞으며 미국으로 떠났다. 부러질지언정 굽히지는 않겠다는 결정에 나는, 박수를 보낸다. 꼼수를 써서라도 자리를 얻기 위해, 이기기 위해, 적당히 타협을 보지 그랬냐는 말을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신은 안철수를 지지할 자격이 없다. 새 정치를 기대할 자격에도 미달이다. 지금까지의 정치가 그 나물에 그 밥이었던 건, 정치인 개인의 이익과 국민의 이익 사이에서 적당한 타협점을 찾는 데서 비롯됐다.
3. 나눔 실천 - 인생 철학이 곧 기업 철학이었고 기업 철학이 곧 정치 철학이 될 것이다
2008년 우린 새로운 대통령을 맞았었다. 어땠나. 참 성공한 기업가 출신답게 추진력과 비상한 계략으로 원하는, 물론 모두 본인이 원한 것이었지만, 많은 것을 이뤄 냈다. 역시 아무나 성공하는 게 아니었다. 바르게 살면 뒤쳐진다, 청렴결백해선 돈 못 번다, 거짓과 술수도 능력이다, 연신 부르짖는 기업가다운 모습을 참 잘도 보여 줬다. 안철수 역시 엄밀히 말하면 기업가 출신이다. 의사와 과학자를 거쳐 기업가에서 정치인으로 입문했다. 그러나 분명 차이점이 있다. 이는 그들이 이끌었던 기업에있다. 두말할 필요없이 현대는 안랩보다 훨씬 으리으리하다. 하지만 안랩과 현대를 비교하면 누가 더 기분 나빠 할까?
더 큰 부를 축적하고 더 높은 서열에 오른 현대일지라도 안랩에게는 현대와의 비교가 기분 상할 일이다. 안랩의 목표는 처음부터 으리으리해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악덕 해커들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기업의 궁극적 목적은 이윤 추구라고 하지만, 안랩은 이처럼 공익을 우선시한다. 강자에게는 '궁금하면 500원!'을 외쳤지만 약자에게는 '궁금하면 공짜!'를 외쳤다.
그가 백신 사업에 뛰어들게 된 동기 역시 새 정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의과대학에 진학한 안철수는 동료들이 컴퓨터 바이러스 때문에 골치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백신 연구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들의 고충을 해소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 새 분야에 뛰어들고, 그 결과물을 다수의 개인들과 공유하면서, 이익은 기업으로부터만 챙겼을 뿐이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백신 연구를 시작했다면, 백신 연구가 돈 좀 되겠다 싶어 의대를 그만두고 진로를 변경했다면, 10원이든 1000원이든 모든 수요자들로부터 돈을 받아 냈을 거다.
바보 소리를 들으면서도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은 안철수. 그의 가치관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대목이 또 있을까? 안철수의 새 정치는 안철수의 가치관, '약자 배려, 나눔 실천, 초심 유지'로 하는 정치다.
그래도 모르겠다는 이들에게
보수 질환을 앓고 계시는군요
안철수의 새 정치 하면 떠오르는 것이 솔직히 뭐가 있냐고 묻는다. 없지, 없지, 다그치며 그러니까 허상이다, 결론 짓는다. 미국에서 발표된 보수주의자들에 대한 연구 결과에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보수주의가 심리학적 노이로제와 같은 질병의 일종이어서, 보수주의자들은 모호함을 직면했을 때 이를 견디지 못하고 일정한 증세를 보인다는 것이다. 참 보수는 애매한 걸 못 참는다. 1번부터 10번까지 새 정치가 뭔지 나열해 줘야 이해하겠다는 걸까? 이렇게 조목조목 밝히라고 압박하고는 나중엔 문서 하나 들고 나와 이렇게 말할 게 분명하다. 1번 안 했고, 2번 새누리당이랑 똑같은 얘기고, 3번 민주당이랑 같은 얘기고, 4번 안 했고, 5번 하나 했네. 그리고는 안철수 정치 점수 20점, 못을 박겠지.
물론 몇 가지 구체적인 계획을 공개하는 것은 국민들 역시 바라는 바다. 그러나, 구체적인 항목 나열보다 안철수에게 기대하는 더 바람은 일단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새 정치에 국민들이 반길 만한, 언론의 칭찬을 받을 만한 문구를 못 갖다붙여서 그렇게 애매하다는 비난을 듣고만 있겠나. 생각하는 바가 있지만 여러 가지 정치적 상황 및 타 정치인들에 의해 좌초될 수 있기 때문에, 말부터 내뱉지 말고 진심과 초심으로 하나하나 이뤄가자는 의지를 다지는 중이란 생각을 왜 못 하나.
명쾌함은 사실 보수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좋아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몇 % 경제 성장 이루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열광했다. 구체적인 수치와 세부적인 내용은 환영 받기 쉽다. 자리에 오르는 것이 목적이라면 환영 받을 일을 해야 하지만, 진정한 대국민 봉사가 목적이라면 다소 비판을 받을지라도 신중해야 한다. GDP 몇 퍼센트 상승이 목표였던 지난 정권 시절, 국민들과 대통령 사이에는 괴리가 컸다. 국민들이 열광한 경제 성장은 대기업의 눈부신 발전이 아니었다. 그런 식의 성장이라면 더 큰 성장을 기록했다 해도 국민들은 전혀 반기지 않는다. 명쾌함으로 표를 얻었지만 불쾌감만 남겼다.
명쾌하다면 더욱 좋겠지만, 중요한 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수치적 결과가 아니라 임하는 자세다. 가치관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GDP 성장률이 0%였대도 서민 경제를 위해 힘써 줬다면 국민들의 평가는 달라졌을 것이다. 자꾸 얕은 수로 국민의 혼동만 일으키지 말고, 국민들이 진정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듣고,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어떤 것을 얼마나 이뤘느냐를 퍼센테이지와 개수로 평가할 게 아니라 얼마나 국민들의 진심을 헤아렸는지부터 따져 봐야 한다.
100분 토론을 보고
우리가 좋아하는 꼴이 그렇게 보기 싫으니?
한 보수 논설위원은 이런 해석을 늘어놓는다. 노원 병에서 안철수가 얻은 득표율은 아직 국민들이 새 정치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큰 의미는 없단다. 그 이유는 재보선이라는 작은 지역구 선거였기 때문이란다. 대통령 선거도 아니고 서울시장 선거도 아니기 때문이란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민주주의에서 선거를 왜 치르나. 국민의 뜻을 받아들이고 국민의 참여를 통해 한 나라를 꾸려 가겠다는 취지다. 작은 선거라고 그 정도 국민의 마음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게 말이 되나? 그는 낮은 정치인의 자세에 대해 논할 자격을 박탈 당해도 싸다.
노원 병에서의 안철수 의원 당선은 딱 그만큼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말로 바꾸어야 옳다. 부풀려 해석해서도, 저평가되어서도 안 된다. 많은 이들이 안철수 의원의 당선에 흐뭇해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작년 대선 선거로 수많은 여론의 비판을 받았던 안철수 후보가 작은 지역구일지라도 높은 득표율을 얻었기 때문이고, 비단 노원 병 주민들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안철수의 당선, 국회 입성에 수많은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지자들이 충분히 기뻐할 만한 일 아닌가. 안철수의 지역 재보선 당선을 마치 대통령이 된 것처럼 생각해 기뻐하는 사람은 없다. 무슨 과장이 있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
국민에게 희망을 버리라는 꼴
안철수 현상이 존재한다는 데 대해 부정하는 이는 없다. 다만 그 의미를 조금씩 다르게 볼 뿐이다. 한 보수파 논설위원은 이렇게 표현했다. 작년 대통령 선거에 안철수가 아닌 김철수, 박철수가 나와 새 정치를 외쳤다면 김철수 현상, 박철수 현상이 됐을 거라고. 안철수가 뛰어나서 그가 주창한 새 정치가 주목 받고 안철수 현상이 나타난 게 아니라, 그저 헌 정치에 대한 반감 현상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참 답답한 발언이다. 이게 어디 핏대 세우며 부르짖을 얘긴가? 너무도 당연한 얘기 아닌가. 참 핵심 못 짚는다. 문제는, 그런데 왜 김철수 현상이 아닌 안철수 현상이었냐는 거다.
김철수도 아닌, 박철수도 아닌, 안철수 현상이 왜 나타났는지 보자는 말이다. 이유가 뭐겠나. 간단하다. 다름 아닌 안철수라는 사람이 새 정치를 외쳤기 때문이다. 김철수와 박철수는 없었다. 김철수 현상을 일으키고 싶었으면 김철수란 사람이 나와서 외치면 그만이었으나, 이를 외치는 김철수는 없었다는 거다. 사실 새 정치에 대한 국민의 바램은 물론, 선거철 후보자들의 주창은 이번이 처음도 아닐 뿐더러 안철수만 뱉은 말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철수의 새 정치가 연일 거론되고 안철수 현상을 일으킨 것은 안철수에게 거는 기대감 때문이다. 안철수가 훌륭하다는 게 아니라 안철수가 훌륭할 것이라는 기대감 말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알고 있다. 이명박 때 절실히 깨달았다. 안철수 의원이 실망시키면 그러지 말래도, 그를 지지했던 국민들이 배신감에 더 치를 떨 거다. 그런 걱정을 왜 하나. 말귀를 똑바로 알아듣기 바란다. 훌륭해서 지지하는 게 아니라, 훌륭할 것 같으니까 지지하는 거다. 왜 미리부터 기대를 접어야 하나.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 행보를 지켜본 후, 심판은 국민들 스스로가 할 일이다. 안철수에게 새 정치에 대한 방법론을 굳이 물을 필요도 없다. 10개든 100개든 구체적인 안들을 적은 '계획서'보다, 국민을 위한 봉사자로서의 '마음가짐'이 그의 새 정치를 더 잘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 거물들의 귀환 | 2013-04-30 | 100분 토론 Link
가치관에 대하여 MONZA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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